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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야단스레 이글거리는 한낮이면 선뜻 밖으로 나서기가 쉽지 않다. 차가운 물 한 잔, 시원한 팥빙수 한 그릇, 입에서 살살 녹는 달콤한 아이스크림, 얼음 동동 띄운 수박화채 등 에어컨 바람 시원한 거실에서 차디찬 음식을 찾게 된다. 이는 무더운 여름에 어쩔 수 없는 생리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른 아침 밖으로 나서보라.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아침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다.

오늘(10일) 이른 아침에 카메라 둘러메고 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아니 그냥 걸었다기보다는 길가에 '알콩달콩' 피어있는 꽃에 반해 이끌려 다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길가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달개비꽃
▲ 달개비꽃 길가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달개비꽃
ⓒ 이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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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여름에 피어나는 꽃들이 떠오른 것은 창밖으로 펼쳐진 맑은 하늘을 보고나서다. 아침 하늘이 이렇게 맑은 날은 드물었던 요즘, 뭔가 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포장된 도로를 따라 풀섶을 살펴보니 파란 달개비꽃이 반겨준다. 혼자서 고민하고 앉아 있는 꽃이 있는가 하면, 두 자매가 고개를 높이 쳐들고 세상구경 하느라 여념이 없는 꽃이 있다. 또 한쪽에서는 다른 풀에 기댄 채 사색에 잠겨 있는 달개비꽃도 보인다. 달개비꽃을 자세히 살펴보면 파란 하늘에 낮달이 떠 있는 모습이랄까?

길가에 핀 풀도 꽃처럼 아름답다.
▲ 풀 길가에 핀 풀도 꽃처럼 아름답다.
ⓒ 이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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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아침 햇살을 받은 달개비꽃의 모습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산뜻한 그 느낌이 좋다. 그 옆에는 이름 모를 들꽃이 수줍게 웃고 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자 이번에는 흔히 시골에서 강아지풀이라 불리는 풀꽃이 수런수런 이야기 보따리 펼쳐 놓는다. 이슬처럼 영롱한 모습이다.

그렇게 길을 따라 걷다보니 이웃집 대문 앞에 이르렀다. 담장을 타고 넘어와 하늘을 향해 기상나팔을 불고 있는 나팔꽃이 투명하게 빛나는 아침, 요염하게 앉아 있는 나팔꽃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다. 사진에 눈이 어둔 내게 풀밭은 이미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풀숲에 쪼그리고 앉아 담 높이에서 넝쿨째 하늘을 보고 있는 나팔꽃의 요염한 자태를 카메라에 담으며 만족한 웃음을 지어본다.

이른 아침 이웃집 담장에서 본 나팔꽃의 모습
▲ 나팔꽃 이른 아침 이웃집 담장에서 본 나팔꽃의 모습
ⓒ 이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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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 화단에 핀 참나리꽃
▲ 참나리꽃 길가 화단에 핀 참나리꽃
ⓒ 이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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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능소화 곁으로 다가갔다. 오늘 따라 파란 하늘이 능소화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얕게 걸쳐 있는 하늘을 향해 능소화의 뛰어난 미모를 담았다. 생각처럼 쉽지 않지만 그런대로 능소화의 아름다움을 그릴 수 있었다. 능소화는 오랫동안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여름을 보낸다.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나 뭔가 모를 귀티가 난다.

주변을 둘러보다 이웃집 화단에 핀 참나리꽃의 유혹을 받았다. 그 유혹에 풍덩 빠져버린 나, 그 꽃을 이리 찍고, 저리 찍고, 옆으로 찍고, 세워서 찍고 한참을 그렇게 실경이 하다 보니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다. 땀을 훔치며 밖으로 나오려는데 튼실하게 생긴 토종닭이 살금살금 눈치를 보며 걸어간다.

"어, 너 잘 만났다. 건강한 네 모습을 찍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는데 이리 찾아와 주니 고맙기도 하지."

혼자 말로 중얼거리며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달음박질로 도망친다. 깜짝 놀라 무작정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흔들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하는 상황, 도망친 닭이 오늘따라 야속하기만 하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지.

아침 햇빛을 받은 시냇물의 신비한 모습
▲ 시냇물 아침 햇빛을 받은 시냇물의 신비한 모습
ⓒ 이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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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다. 햇빛을 받은 물빛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 시냇물 둑방에 호박이 넝쿨째 뒹굴고 벌들이 커다란 호박꽃에 얼굴을 묻고 연신 발길질이다. 꿀을 따는 모습이 참 재미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호박꽃에서 나온 벌의 모습이 밀가루를 뒤집어 쓴 모습 같아 우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농촌의 꽃들을 찍으며 걷다보니 이번에는 해바라기가 반겨준다. 서로 꿀을 따겠다고 으르렁대는 벌들에게 해바라기는 말없이 자신을 내어주고 바라만 본다. 그 너그러움이 자신의 얼굴만큼이나 크게 다가온다. 키가 큰 만큼 마음 또한 넓은 해바라기의 모습이 언니의 모습처럼 다정하다.

그 밑에 핀 빨간 봉숭아에 개미가 미끄럼을 타고 있다. 봉숭아를 보면 그 옛날 고향의 장독대 생각이 난다. 장독대 주변에는 봉숭아, 채송화, 맨드라미가 활짝 피어나 편안함을 전해주곤 했다. 친구들과 봉숭아물을 들인다고 그 꽃과 잎을 따서, 백반을 넣고 돌멩이로 찧어 손톱에 얹고 비닐을 덮어 실로 꽁꽁 묶던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자고 나면 한두 개는 어디로 도망을 갔는지 옅은 흔적만 남아있다.

난생 처음 본 미나리꽃
▲ 미나리꽃 난생 처음 본 미나리꽃
ⓒ 이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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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 걷다 보니 이런 횡재를 다 하고 기분 좋은 아침이다. 사방에 여름 꽃들이 지천이다. 비록 흔한 풀꽃이라지만 그들의 삶에도 희망과 기쁨, 슬픔과 고독이 왜 없겠는가. 여름 한철 살다가 가는 꽃들에게서 강인한 생명력과 절망하지 않는 용기를 배운다. 우리네 인생 또한 돌고 도는 세상에서 들꽃처럼 피어나 한줄기 빛으로 살다가는 것을.

덧붙이는 글 | 충남 연기군에서 촬영.

유포터 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여름꽃,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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