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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선 진보세력이 긴축과 금리인상을 주장하는 것은 금기시되지만, 국제 기름값 급등과 같은 외부충격을 흡수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선 금리를 올리는 등의 일정한 긴축정책이 필요하죠."

 

14일 유종일 KDI(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유 교수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 주최로 열린 '한국경제의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해법 모색' 토론회에 참석, 현 정부의 경제정책과 방향을 특유의 어법으로 실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특히 향후 대안 모색을 두고, "(나 스스로) 금리인상을 주장하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토로하면서 "긴축으로 경기가 위축되면 노동자와 서민이 타격을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재의 상황을 무시하고 경기부양책을 쓰면 향후 더 큰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경기위축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구조조정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며 "이것이 매우 고통스럽지만 불가피하고, 고통을 흡수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교육 훈련 확대와 퇴출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종일 "고성장정책 실패와 시장 불화로 경제팀 신뢰 상실"

 

개혁적 시장주의자로 지난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브레인 역할을 했던 유 교수가 바라보는 현 경제위기의 원인은 간단했다.

 

국제 기름값이나 원자재값 급등과 같은 외부충격으로 한국경제가 비틀거리고 있는데, 오로지 성장 지상주의에 매몰돼 시장에 정반대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물가를 정부 관리방식으로 잡겠다는 구시대적 '관치(官治)' 발상으로 시장과 불화를 겪었다. 또 친기업적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마구잡이식 규제완화를 추진해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경쟁질서도 흐트러졌다는 것이 유 교수의 진단이다.

 

유 교수는 정부의 하반기 경제운용 내용을 설명하면서, "엠비노믹스(MBnomics,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의 핵심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성장"이라며 "성장지상주의와 물가관리에서 보듯이 조급한 성과주의로 시장에 거칠고, 직접적으로 개입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의 대안 마련이 더 큰 문제"라면서, 금리 인상 등을 통한 긴축 정책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긴축정책으로 노동자·서민 피해 우려되지만 적극 대응해야

 

현재와 같이 정부와 한국은행이 무리하게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잡기 보다는 금리 인상을 통해 환율의 하향 안정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현재 대기업 위주로 돼 있는 수출과 내수 부문 사이에 거대한 격차가 있고, 명목 임금도 상대적으로 정체돼 있다"면서 "(금리 인상은) 오히려 긍정적인 분배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금리 인상이 경기 위축을 초래하고,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신 이같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구조조정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과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공공행정, 교육, 보건의료, 복지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를 공공부문 주도로 창출할 필요가 있다"면서 "고용보험 가입대상과 급여수준을 확대하고, 퇴출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특히 민생안정을 위해 주택가격 안정과 교육비 부담 완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중장기 대책으로 현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완화정책을 중단하고, 공정한 경쟁과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함께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개혁,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에너지와 식량, 환경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 경제학자들 "시장 신뢰회복 위해선 강만수 장관 교체를"

 

유 교수의 발제에 이어 토론자로 나선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들은 현 정부의 대기업-수출산업 중심의 성장 정책을 수정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한, 경제 불안과 서민들의 위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대부분의 학자들은 경기회복과 민심을 되돌리려고 한다면 우선 강만수 장관 등 현 경제팀을 교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이명박 정부가 현재의 경제 어려움은 환경 탓으로 돌리고 기존의 정책기조와 경제팀을 고수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면서 "이는 불안한 외부환경에, 내부의 구조적 문제와 정책적 판단 오류로 인해 경제위기를 더욱 심화시킬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 경제팀의 고환율 정책이 수출 대기업에 보조금을 주기 위해 자영업자 위주의 서민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는 결과를 낳았다"면서 "환율정책을 넘어 현 정부의 성장중심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의영 군산대 교수(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는 자동차 운전의 비유를 들면서, "노무현정부는 좌측 깜박이를 켜놓고, 우회전을 하면서 사고를 쳤지만, 이명박 정부는 고속주행하겠다고 해놓고, 출발하자마자 고속후진해서 대형사고를 내고 있다"면서 "건전한 시장경제 질서를 위해선 특혜와 독점이익을 추구하는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도 경제정책 변화를 통한 신뢰회복을 주문했다. 이를 위해 강만수 장관 경질과 금리인상, 금융감독 기능의 강화를 꼽았다.

 

전 교수는 특히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 기업, 가계 등의 고통 분담의 형평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고통분담으로 노동자에게는 임금 인상 자제를 통한 실질임금 감소, 기업에겐 해고 자제를 통한 고용 안정 등이 될 수 있다"면서 "하지만 기업에서 정부에게 법인세 인하 등의 조건을 걸고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식으로 한다면, 다른 계층의 고통 분담을 요구하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현재 경제주체들이 정부당국의 안정화 의지에 대한 신뢰가 별로 없다"면서 "경제팀의 교체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향후 정책추진과정에서의 비용을 훨씬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장상환 경상대 교수(사회과학연구원장)는 급격한 금리 인상을 통한 긴축 운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경기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금리 인상 등을 통해 시중 유동성 관리를 강화하면 금융 경색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장 교수는 "현재와 같이 양극화 구조가 심각한 상황에서 금리 인상의 폐해는 노동자와 서민에게 직접 돌아올 것"이라며 "금리 동결 등 금리를 중립적으로 유지하고, 비정규직 축소,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태그:#한국경제, #금리인상, #긴축정책, #유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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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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