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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빨래는 내게 편지다."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부인 이윤영(61)씨가 말하는 '내조'다.

 

손학규 후보가 지난해 6월 경기도지사 퇴임 후 '100 민심대장정'을 위해 전국을 돌 때 , 이씨는 남편의 속옷을 전해주기 위해 직접 밤샘 운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17일 오후 '대한민국, 손학규를 발견하다' 출판기념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63빌딩 대연회장 앞. 행사장에 들어서는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있는 손학규 후보의 뒷편에서 이윤영씨의 '내조'는 계속되고 있었다.

 

행사장 안쪽에 서 있던 이씨는 손 후보와 악수를 하고 들어오는 참석자 뿐만 아니라 미처 악수를 하지 못하고 들어오는 참석자까지 놓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정동영의 부인 민혜경, 손학규의 부인 이윤영

 

행사가 막 시작되기 직전, '주말 4연전'에서 1위를 차지한 정동영 후보측 박영선 의원이 급히 도착했다. 박 의원의 옆에는 정 후보의 부인 민혜경(51)씨가 서 있었다. 박 의원이 손 후보에게 "정 후보는 제주도 수해현장 방문 때문에 오지 못했다"고 설명했고, 손 후보는 정 후보 대신 참석한 민혜경씨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손 후보와 인사를 마친 두 사람이 행사장 안으로 들어서다가 이윤영씨와 마주쳤다. 박영선 의원과 인사를 나눈 이윤영씨가 환하게 웃으며 민혜경씨의 손을 꼭 잡았다. 남편과 그를 돕는 의원들이 조직·동원 경선 문제를 둘러싸고 정면으로 충돌하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조우여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정동영 후보가 당 대변인과 의장직을 맡으며 중앙정치 무대에서 활동할 때, 지역구 행사나 경조사는 민혜경씨 몫이었다. 민씨는 "내가 생각하는 내조는 남편이 할 수 없는 일을 메우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 날도 남편이 오지 못하는 행사에 대신 참석한 것이다.

 

그러나 남편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 참석한 민혜경씨를 바라보는 이윤영씨의 심사가 편할 리 없다. 손 후보가 충북·강원 지역 경선은 물론 울산에서도 '꼴찌'를 하면서 '대세론'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손학규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꼴찌'를 했을 때, 이윤영씨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정가의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이씨는 '또 꼴찌하던 날'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밤늦은 남편의 귀가를 바라본 소회를 담담하고 솔직하게 적어내려갔다.

 

"밤 늦게 그 좋은 웃음의 얼굴로 들어온다. '오늘 문화일보 읽었느냐'고 하니까, '아니, 뭔데?' 칭찬이라도 써있는 줄 아나보다.

 

'여론조사 꼴찐데요.' 좀 가여워서 낮은 소리로 '속상하지요?' 했더니, 더 환하게 웃으면서 '아니, 별걸 다. 나한테는 이제 올라가는 일 밖에 안 남았어. 밥줘, 나 오늘 밥 안먹었거든.' 배는 제법 빵빵하다."

 

이윤영씨는 또 "이 사람 바보아냐? 밥보, 밥통, 밥의 지존 손학규. 바보 손학규"라며 손 후보를 향해 "바~보"라고 말하고는 글을 맺었다.

 

"광주"를 힘주어 부른 우상호

 

손학규 후보의 지지자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상호 대변인의 사회로 출판기념회가 시작됐다. '대한민국, 손학규를 발견하다'는 손 후보가 직접 쓴 책이 아니라, 손 후보의 지인 35명을 인터뷰한 내용과 기고한 원고를 바탕으로 편집한 책이다. 

 

이날 출판기념회에서는 오는 29일 광주전남 지역 경선에 사활을 걸고 있는 손학규 캠프의 의지가 곳곳에서 읽혔다. 앞서 손학규 후보는 이날 오전 캠프에서 열린 선거대책본부 회의에서 "단 한 점의 후회도 남지 않도록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역량을 총집결해 광주·전남 선거에서 승리하자"고 전의를 다지기도 했다.

 

내빈을 소개하던 우상호 의원이 김재균 전 광주북구청장을 소개하면서 다른 때보다 목소리를 높인 뒤, "제가 '광주'에 힘을 줘서 부른 이유를 여러분은 알 것"이라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린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오충일 당 대표, 정대철 전 의원, 박형규 목사 등에 이어 네번째 축사에 나선 김지하 시인은 마음먹고 손학규 후보의 '광주 공략'을 위한 조언을 쏟아냈다. 손 후보가 "광주정신은 광주를 털어버리고 대한민국, 세계를 향해 뻗어갈 때 더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가, 상대후보들로부터 정체성 공격을 받았던 것을 염두에 둔 조언이었다.

 

김지하 시인은 "손학규 후보가 '전라도 컴플렉스를 벗어나자'고 말해서 여러사람이 욕하고 때렸다"며 "내가 손학규씨 친구인데다, 전라도 사람으로서 거기에 대한 얘기 한마디 하면 부끄러운 일은 아니겠구나, 생각하고 이 자리에 나왔다"고 운을 뗐다.

 

"손학규 후보가 '광주항쟁은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우리가 자꾸 잊어버리는 게 아니냐'고 해서,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도청을 점령하고 있던 시간, 아주머니들이 김밥·주먹밥 싸오고, 김치 가져오고…. 광주시 전체가 한 가족처럼 따뜻하게 서로 껴안았던, 형제사이가 됐던 그 일주일'이라고 하더라."

 

김 시인은 이어 "손 후보가 '광주정신을 털어버리고 앞으로 성큼 나가자'고 했던 말은 '그 일주일이 우리의 민중사상으로 상승하면서 광주항쟁의 정신을 얘기해야 한다'는 것으로 들렸다"며 "손 후보가 광주에 가서 얼지 말고, '그 일주일간 아름다웠고 따뜻했던 사랑을 기억하자'고 한 마디만 하면 전라도 사람들이 박수를 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학규 후보는 인사말에서 "지금 나는 대통령을 하려고 한다. 또 대통령을 하고 싶다"며 "그리고 문제는 이것인데, 대통령이 될 것 같다"고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손 후보는 또 "손학규가 대통령이 되면 사람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달라"며 "여러분의 기대와 믿음에 맞춰서, 꼭 대통령이 되어서 정말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꼴찌 손학규' 사랑해줘서 '고맙습니다'? 

 

행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 손학규 후보가 "오늘 책의 저자 중 빠진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기고문을) 썼으면 책이 아마 엉망이 됐을 것"이라며 부인 이윤영씨를 소개한 뒤, 연단으로 불러세웠다.

 

손 후보가 "책에 못쓴 얘기를 해보라"고 마이크를 넘기자, 이씨는 "손학규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꼭 대통령이 되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사람이 최고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으니까, 꼭 지켜달라"고 말했다.

 

이윤영씨가 책에 아무 것도 안 쓴 것은 아니다. 출판기념회가 끝나고 사인을 받기 위해 몰려드는 지지자들에게 이윤영씨는 똑같이 "고맙습니다"라고 적어줬다. 무엇이 고마웠을까? 혹시 '꼴찌 손학규'를 사랑해줘서?


태그:#이윤영, #손학규, #민혜경, #정동영, #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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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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