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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수박 꽃과 박넝쿨을 이고 있는 초가집
 하늘수박 꽃과 박넝쿨을 이고 있는 초가집
ⓒ 맛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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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들은 박을 애용했다. 여물기 전에는 박나물을 무쳐먹고 잘 익은 박을 타서는 바가지를 만들었다. 바가지에 금이라도 가면 실과 헝겊으로 덧대 쓰기도 했다. 시간이 빠르다 보니 벌써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다. 박은 가난의 상징이다. 물질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은 박은 더욱 초라한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갔던 박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그런데 박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플라스틱에게 빼앗긴 자리가 아니라 먹을거리로서 바람을 타고 있다. 박의 순수 담박한 요리가 자극을 멀리하는 요즘 트렌드와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몸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성인병 예방 식품으로서 그만이라니 멀리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어쩌면 흥부네 박에서 나온 금은보화는 박 속에 들어 있는 항노화 물질 등 이로운 성분이 아니었을까? 건강만큼 소중한 게 없으니 말이다.

다양한 박요리

박나물
 박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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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 나물로 먹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음식으로 거듭나고 있다. 박속밀국낙지탕, 박고지김밥, 박수제비, 박칼국수, 박잎전, 박버섯불고기, 박만두 등. 그중에 특히 충남 서산에서 맛 본 박속밀국낙지탕의 시원한 맛은 생각만으로도 입맛을 돋운다.

박잎전
 박잎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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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익는 계절이다. 마침 지인이 박잎과 박 한 통을 보내왔다. 정성껏 조리해 먹는 걸로 고마운 말을 대신해야겠다. 박잎으로는 전을 부쳤다. 밀가루 반죽에 잘게 썬 양파, 당근 등을 넣고 박잎에 옷을 입혀 부쳤다. 첫잎에 쩍 들어 안기는 맛은 아니지만 먹을수록 입맛을 끌어 당긴다. 혀가 낙지의 움직임과 같은 부드러움을 알아챈다.

박나물에서는 아련함이랄까? 어떤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아마도 입에 풀칠 걱정해야 하는 서민의 음식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먹을 것 없던 그 시절, 박 한통으로 찬을 낸 소박한 밥상을 대했던 가족에 대한 연민일 수도 있겠다.

박나물은 조리에 교를 부리지 않아야 한다. 소금과 참기름만으로 만들어 먹었던 선인들의 조리법이 온갖 꾸밈이 난무하는 요즘 음식에 시사하는 건 무엇일까?

박속수제비가 끓고 있다
▲ 박속수제비 박속수제비가 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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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수제비
 박속수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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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갯살과 박속을 넣고 끓인 수제비
 조갯살과 박속을 넣고 끓인 수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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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을 만들고 남은 박으로는 수제비를 끓였다. 조개로 맛을 낸 국물에 박속을 나박썰기 해서 넣고 수제비도 떴다. 채 썬 파를 넣고 소금 간을 한 후에 한소끔 더 끓여 담아냈다. 풍요롭고 입을 즐겁게 하는 맛은 아니다. 하지만 음식이라는 게 어디 맛이 전부이던가? 음식이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면 입이 즐거운 음식보다 한 수 위라고 볼 수도 있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박, #박나물, #박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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