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주버님! 기사 잘 봤어요. 잘 쓰셨던데요."

수화기를 타고 오는 목소리에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 나의 열혈팬(?)의 전화가 온 것이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리면 유일하게 전화하는 독자이다. 미숙하고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언제나 칭찬이다. 그 독자가 바로 내 동생의 아내인 제수씨이다.

나에게는 기사를 묵묵히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는가 하면, 호된 질책성 댓글을 올려주는 독자도 있다. 그리고 잘못된 기사를 친절히 정정해 주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비방의 글을 올리는 독자도 있다. 그나마 댓글이 1개 이상인 글은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밖에 안 되니 비방도 관심이라 감사하기는 마찬가지이다.

▲ 글을 쓴다는 것은 무한책임을 지는 일이기에, 대중을 상대로 나의 이야기를 쓰면서 두려움이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 최종술
그중에서도 제수씨는 언제나 칭찬해주는 독자로 유일하다. 덕분에 어깨가 으쓱거려지기도 한다.

그런 제수씨가 최근엔 전화를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다. 눈이 많이 아프기 때문이다.

올 설 때였다. '딩동대∼ㅇ' 누군가의 휴대폰에서 착신음이 울렸다.

"아주버님, 뭐라고 왔어요?"

제수씨의 휴대폰이었나 보다. 제수씨가 휴대폰을 나에게 내밀며 내용을 읽어 달라고 한다. 눈앞의 휴대폰 글씨를 읽지 못한다는 말인가?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순간 당황스러워 묘한 기분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재빨리 마음을 정리하고 문자 내용을 읽어 주었다.

잠시 뒤 동생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요즘 제수씨의 눈이 더 악화되어 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전에도 사실은 잘 보지 못했었다고 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제수씨의 눈이 정상은 아니라는 이야기는 들어왔었다. 다만 홍채에 이상이 있어서 밖에 나가면 햇살에 많이 눈부셔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제수씨는 가까운 사물도 잘 볼 수 없게 된 지가 오래된단다. 그래서 인터넷도 잘 볼 수 없어서 인터넷을 볼 때는 최대한 글씨를 확대해서 읽는다고 한다. 나의 글이 실리면 화면을 최대한 확대하여 얼굴을 화면에 대고 한 자 한 자 읽고는 나에게 전화를 주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엇이 울컥 머리끝까지 솟아올랐다. 이 안타까움을 어찌해야 할까? 감사한 마음과 안타까움이 마구 뒤섞였다.

동생의 딸도 눈이 아프다. 그래서 병원 신세도 많이 졌다. 수술이 방법이긴 하지만 위험도 그만큼 더 크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어리기 때문에 수술을 더 꺼린다. 아직 눈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란다.

동생 가족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였으니 그 걱정이 쌓인 높이는 측정이 불가능할 것이다.

어느 날 동생의 딸이 기분이 무척 좋았던 날이 있었단다. 침대에 뛰어 놀기를 좋아하던 터라 그날도 침대에서 뛰기 위해 침대로 달려들었는데 창틀을 보지 못하여 그대로 안면을 부딪치고 말았다. 곧 얼굴이 퉁퉁 부어 눈도 뜰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의 안타까운 심정이 어찌 부모의 마음에 비할 수 있으랴! 그동안은 딸의 수술 때문에 고민하다가 최근에 제수씨 눈이 더 악화 되는 바람에 걱정이 더해졌다.

설 연휴가 끝나고 동생 가족은 다시 서울로 떠났다. 그로부터 얼마 후,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에 다시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형! 수술하기로 했다."
"소영이 수술 날짜가 잡혔나?"

"아니. 소영이 엄마."
"소영이 엄마부터 먼저 하려나 보지?"

"응."


제수씨의 상태가 점점 나빠져서 수술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인공 홍채를 넣는 수술이다. 의사선생님은 좋아질 가능성이 50%밖에 안 된다고 하는 수술이다. 잘못되면 실명까지도 된단다.

1%의 잘못될 가능성에도 당사자나 보호자는 가슴 졸인다. 그런데 50%의 확률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큰 도박이다. 재산을 놓고 하는 도박도 망설임이 엄청날 텐데, 문제는 '눈'이니 말해 무엇하랴!

동생의 망설임과 고뇌는 피를 말리는 것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민을 말이다. 형으로서, 아주버님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어떤 조언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드디어 병원의 스케줄을 잡아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은 한쪽 눈만 했다. 그만큼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수술 후 첫날부터 어지럼증과 구토증세로 사람을 다시 고생시키기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식사도 한다고 한다. 수술은 다행히 잘 되었나 보다.

이런 과정을 또 겪어야만 한다. 한쪽 눈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수씨의 더 큰 걱정은 따로 있다. 소영이 때문이다. 그 심정,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제수씨는 자신이 흘린 눈물을 딸만은 흘리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나의 유일한 열혈팬인 제수씨가 빨리 회복되어 전날처럼 환하게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해줄 날을 기다려 본다.

태그:#글을 쓴다는 것, #제수씨, #열혈팬, #독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은 것을 사랑합니다. 그 영롱함을 사랑합니다. 잡초 위에 맺힌 작은 물방울이 아침이면 얼마나 아름다운 빛의 향연을 벌이는 지 아십니까? 이 잡초는 하루 종일 고단함을 까만 맘에 뉘여 버리고 찬연히 빛나는 나만의 영광인 작은 물방울의 빛의 향연의축복을 받고 다시 귀한 하루에 감사하며, 눈을 뜹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어느 작은 여행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