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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갤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찾은 들녘의 모습
ⓒ 임재만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오랜만에 창가에 빛이 들었다. 맑은 빛이 커튼사이로 들어와 모처럼 방안이 환해졌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는데 열린 구름 사이로 햇빛이 쏟아진다. 금방이라도 먹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이 금세 열릴 것 같은 느낌이다. 어젯밤 뉴스에 오늘(8일) 중부지방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금방은 큰 비가 내리지 않을 것 같았다.

아침에 차를 몰고 시골길을 달려가는데, 먼 산에 안개가 자욱이 퍼지는 듯 하더니 금세 산 전체가 부옇게 변했다. 곧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빗방울이 거세게 몰아친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한치 앞을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다. 달리던 길을 잠시 멈추고 무섭게 내리는 비 오는 풍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 강한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
ⓒ 임재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제법 큰 하천이 흐르고 있는 공주시 정안면의 어느 시골이었는데, 하천 둑에 큰 미루나무가 서 있었다. 갑자기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미루나무는 몹시 당황하여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나 비가 많이 내리던지 금세 하천물이 불어나 하천 둑이 넘쳐 물바다가 될 지경이다.

▲ 들판에 서 있는 소나무 숲
ⓒ 임재만
들판 한 가운데에는 특이하게 소나무 숲이 있었는데, 이 소나무 숲은 이상하게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조용히 비를 맞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하천 둑에 서 있는 미루나무는 혼자라서인지 거친 비바람에 몹시 힘들어하고 있었다. 허허 벌판에서 유난히 커 보이는 미루나무는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휘청거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시골의 강둑이나 논두렁에서 미루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미루나무는 마냥 즐거운 듯 온몸을 흔들곤 하였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날에 미루나무를 쳐다만 보아도 시원한 느낌이 들곤 했다. 훤칠한 키에 미풍에도 신이 나서 춤을 추는 미루나무는 초등학생들의 그림 속에 빠질 수 없는 주인공이었다. 논둑에 말없이 서있는 미루나무에는 매미가 유난히 많이 살았다, 시끄러운 매미소리와 시원하게 몸을 흔들어 대는 미루나무는 여름풍경의 대명사였다.

▲ 하천 제방둑에 우뚝 선 미루나무
ⓒ 임재만
요즘은 미루나무를 시골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아마 쓰임새가 별로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넓은 들판이나 강둑에 서있는 미루나무는 다른 나무가 대신할 수 없을 만큼 운치가 있었다. 미루나무는 키가 매우 커서 온갖 새들과 곤충들의 안전한 쉼터요 어린이들의 동심을 키워주는 마음 좋은 키다리 아저씨였다.

오늘 동심에 젖게 한 미루나무가 거친 비바람에 힘겹게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혹시 비바람에 부러지지나 않을까 자못 걱정스럽다. 점점 날씨는 어두워지고,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장대비가 퍼붓는다. 하천을 날던 새들도 어디로 피신했는지 전혀 기척이 없고, 자동차 천장으로 쏟아지는 비 소리만 요란하다. 미루나무가 비바람에 휘청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창문을 열어젖히자 기다렸다는 듯 소낙비가 차안으로 쳐들어왔다. 하마터면 카메라에 물이 들어 갈 뻔 하였다.

비가 잠시 주춤한 틈을 타서 미루나무 근처로 우산을 쓰고 가 보았다. 미루나무 근처에는 이미 하천 둑이 무너져 복구한 흔적이 있다. 다행히 미루나무는 커다란 가지가 없고, 몸뚱이 가까이에 붙어 있는 잔가지가 대부분이다. 잠시 후 미친 듯이 불어 대던 비바람이 멈추었다.

▲ 금새 불어난 흙탕물로 하천이 위험스럽다.
ⓒ 임재만
하천은 어느새 물이 많이 불어났고 흙탕물은 하천다리 사이를 비집고 무섭게 흐르고 있다. 흙탕물은 하천을 집어 삼킬 듯 억새풀들을 마구 짓밝으며 흐르고 있다. 넓은 들녘도 비바람으로 파도를 치는가 싶더니 이제는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 그 위를 잠자리가 떼 지어 날며 날씨를 살피고 있다. 농부들도 오토바이를 타고 숨 가쁘게 들에 나와 물고를 살피는 중이다.

▲ 폭풍우 속에 서 있는 미루나무
ⓒ 임재만
미루나무 꼭대기가 다시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다시 열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먹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이제는 정말로 하늘이 깜깜해졌다. 바람은 전처럼 불지 않는데 빗방울이 커졌다. 이렇게 몇 시간 정신없이 쏟아지면 물난리가 일어날 것 같아 걱정스럽다. 미루나무가 또 다급해 졌다. 있는 힘을 다해 버티고 서 있는 느낌이다. 빨리 이 소낙비가 그치고 모두가 평화로운 하늘이 열렸으면 좋겠다.

▲ 들판에 홀로 선 미루나무를 만나다.
ⓒ 임재만
예전의 소낙비는 무더운 여름에 이따금씩 시원하게 내려 모두가 휴식하는 즐거움도 있었는데, 요즘의 소낙비는 장마를 닮았는지 지루하게 내린다.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소낙비인지 오락가락 한다. 지구의 온난화로 기상이변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강원도에 있었던 물난리는 장마가 끝난 팔월에 모두 일어났다. 언제 또 폭우로 인하여 수해가 생길지 모른다. 예고 없는 큰비로 인하여 수해를 입지 않도록 모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태그:#충남 공주시, #정안면 보물리, #미루나무, #동심,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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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다니며 만나고 느껴지는 숨결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가족여행을 즐겨 하며 앞으로 독자들과 공감하는 기사를 작성하여 기고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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