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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천수를 처음 퍼올린 감격에 겨워 고무대야에 세수하는 장면
ⓒ 하동칠
화왕산 줄기의 경남 창녕군 부곡면 거문리의 어느 논밭 근처에 샘이 하나 있었는데 한겨울에도 물이 따뜻하여 아낙네들이 여기서 빨래를 하였고, 근처 논밭은 눈이 오더라도 바로 녹을 정도로 지표온도가 높았다. 10여년 동안 지명에 부(釜)나 온(溫) 자(字)가 들어간 곳을 뒤지며 자연온천을 찾아 헤매던 고 신현택씨가 이곳을 답사하고는 1972년 6월부터 샘물 근처에 굴착기를 설치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1973년 1월 10일 드디어 지하 63m 지점에서 78℃의 뜨거운 물이 솟아올랐다. 굴착을 하던 사람들은 너무 기쁘고 흥분해서 뿜어져 나온 온천물을 고무 대야에 담아 세수를 하였다.

최고 78℃의 유황온천물을 하루 6천t씩 채수할 수 있었던 부곡온천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고 신현택씨의 장남인 신계철씨는 "아버지가 부곡온천 물을 발견하기 전 꿈에 어떤 할아버지가 나타나 온천수를 발견한 그 장소를 가리키며 여기를 파라고 현몽했다"고 전한다.

위 사진을 보면 처음 온천수를 발견한 그 순간의 감격과 흥분이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두 사람은 기쁨에 겨워 온천물을 얼굴에 끼얹으며 즐거워하고 있고 뒤쪽에 있는 남자는 신이 난 듯 열심히 펌프질을 하며 물을 퍼올리고 있다. 세수하는 두 사람의 앞쪽에 웅덩이가 보이는데 이게 겨울에도 따듯한 물이 솟아 나왔던 그 샘이 아닌가 생각된다.

▲ 할머니들이 신기한 듯 온천물을 찍어 맛보거나 눈에 비벼보기도 한다.
ⓒ 하동칠
동국통감의 고려기에 "영산온정"이 기록되어 있고 동국여지승람의 영산현조에도 "온천이 현의 동남쪽 17리에 있더니 지금은 폐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볼 적에 이미 오래전부터 부곡에 온천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부곡온천은 옛날부터 가마솥처럼 생겼다고 부곡이라 불렀고, 온정리에는 겨울에도 뜨거운 물이 솟아나는 우물이 있다는 소문이 전국에 전해져 옴 환자들과 나병 환자 등 피부질환자들이 떼 지어 몰렸다고 한다.

위 사진은 굴착작업이 끝난 후 소문을 듣고 달려온 인근 동네 할머니들이 신기한 듯 온천물을 손에 담아 어린 손자에게 먹여 보고 가물거리는 눈이라도 혹 좋아질까 봐 눈에도 물을 찍어 비벼 보는 모습을 담았다. 아기를 엎은 할머니 옆 오른쪽에 서 있는 남자가 부곡온천수를 지하에서 처음 퍼올린 신현택씨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신씨는 여기에 '원탕'을 만들어 본격적인 부곡온천시대를 열었다.

34년간 모아 온 소중한 사진들을 공개하면서
창녕군청 전속 사진작가 하동칠씨

▲ 환하게 웃는 하동칠 작가
ⓒ조우성
창녕군 문화공보가 사진담당 하동칠씨. 학창시절에 산과 들이 좋아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풍경을 사진에 담다가 1973년 2월에 창녕군청 전속 사진기사의 길로 들어섰다. 역사의 현장을 여과없이 진솔하게 필름에 담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생활이 올해로 벌써 34년째다.

한국환경사진 작가와 월간사진 초대작가로도 활동하면서 화보집 '우포늪', '동강', '낙동강' 을 출판하였고 올해는 기억 속에서만 아스라이 남아있던 민초들의 삶의 현장과 사연들을 사진에 담아 '내고장 창녕'을 출간하였다.

작품 하나하나에 삶의 애환이 흠뻑 젖어 있어 무관심 속에 사라져 버렸을 지난날의 희로애락의 순간들을 우리들 눈앞에 다시 생생하게 되살려놓았다. 이것은 작가의 열정과 민초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결과물이다.

하동칠씨는 주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숨 쉬었던 격동의 순간들이 이제는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안타까워 자신이 34년 동안 모아 온 소중한 사진들을 기꺼이 우리들 앞에 내놓았다. 한 장 사진의 순간포착을 통해 잊혀진 지난날을 재생해 주기를 바라면서. / 조우성

덧붙이는 글 | 34년간 모아 온 하동칠씨의 귀중한 사진들이 연속으로 나갑니다.


태그:#하동칠, #창녕군청, #부곡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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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tracking photographer. 문화, 예술, 역사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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