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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두천 시민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동두천 시내까지 행진하며 시민들에게 또 하나의 미군범죄를 알렸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지난 6월 30일로 벌써 42일째. 불타버린 동두천의 한 조그마한 미용실엔 먼지가 쌓여가고 있었다.

미용실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은 극심한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당장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용실에 불을 붙인 미군의 소식은 들을 수 없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현실. 여느 미군범죄와 다를 것 없는 이른바 '동두천 미용실 방화사건' 해결을 위해 6월 30일 동두천 시민들이 모였다.

'동두천 미용실 방화사건'은 5월 19일 새벽 3시 50분경, 미 2사단 소속 더스틴 티모시 이병이 동두천 광암동의 로열헤어숍에 침입해 불을 지른 사건이다. 티모시 이병의 모습은 CCTV에 찍혔고, 현장 근처에 숨어있던 티모시 이병은 주민들에게 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40여 일이 지난 지금 티모시 이병은 현행범이 아니라는 이유로 미군에 신병이 인도됐고, 한국 경찰의 수사는 아무런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미군에 신병인도 혈역검사도 필적확인도 없어

6월 30일 오후 5시 반, 동두천시 보산동 미 2사단 캠프 케이시 앞. 동두천 시민과 시민단체 회원 등 100여 명이 모여 "미용실 방화사건 주한미군 구속하라"라고 외치고 있었다. 지난달 9일과 16일에 이은 세 번째 범시민대회였다.

"약물 중독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혈액 검사는 미군이 거부했다. 또한 한국 경찰은 중요한 증거일 수 있는, 미용실에 남아있는 필적을 확인하지 않았다. 도대체 누굴 믿어야 하느냐!"

이들은 이곳에서 동두천 시내까지 행진하며 시민들에게 또 하나의 미군범죄를 알렸다. 많은 시민들이 이들의 행진을 지켜봤다. 어떤 이는 "안타깝다"는 말을 연발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행진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행진 대열의 맨 앞에는 피해자 가족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현재 어떻게 생활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피해자의 동생 이모(51)씨는 "굉장히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고 운을 뗐다.

이씨는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언니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다음은 이씨와 한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이다.

"정신과 병동에 입원시킬 예정이에요"

▲ 피해자의 동생인 이모(51)씨는 "굉장히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 미용실이 불탔는데 어디서 생활하세요?
"미용실 2층에 살림집이 있거든요. 거기서 생활하고 있어요. 미용실은 아직까지 40여 일 전 불탄 상태 그대로 있어요. 돈이 없어서 보수 공사를 못하고 있고요."

- 수입이 전혀 없는 상황인데, 생활이 힘들지 않나요?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보름이 넘었잖아요, 어려운 점이 너무 많아요. 언니한테 아들이 셋이 있는데 아들 둘은 직장을 잃었어요. 아들 하나가 벌어서 세 가족이 먹고 살죠."

- 어렵게 마련한 미용실이라고 들었는데요.
"27~28년 동안 셋방살이 하다가 몇 년 전에 은행에서 융자받아 집을 지었어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무렵, 7~8년 간 형부가 암으로 고생하다가 작년 11월에 돌아가셨어요. 집을 팔아도 빚 청산을 못할 정도예요.

빚도 많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더 힘들잖아요. 이 일이 빨리 해결이 되서 안정을 되찾아야 하는데.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잖아요? 환경이 이러다보니 심한 우울증에 걸리고, 자식들까지 그래요."

- 피해자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요?
"언니는 우울증 때문에 사고 이후 한 20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어요. 요새 밤에 잠도 못자고 소리를 지르면서 일어나곤 해요. (의사가) 월요일에 정신과 병동에 입원하라고 했어요. 입원시킬 예정이에요."

- 세 아들도 힘든 상황이라고 들었는데요.
"아들이 다 처자식이 있는데 굉장히 어렵고 힘든 상황이에요. 막내아들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렇잖아도 힘든 상황에서 또 길바닥에 나앉을 상황이니까. 서울(한강)에 가서 뛰어내린다고 하고, 시위한다고도 하고. 정신착란까지 올 정도로 너무 힘들어하고 있어요. 옆에서 보고 있자니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워요."

- 미군 쪽은 어떤 반응인가요?
"미군 쪽은 반응이 전혀 없어요.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어요. 제가 생각할 때 아직까지 어떤 대책도 없는 것 같아요. 미군 사과와 보상 문제가 해결되면 정신적으로 덜 고통 받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촛불은 동두천에서 먼저 타올랐다

▲ 불탄 미용실의 내부 모습.
ⓒ 오마이뉴스 전관석
과연 이씨의 바람대로 미군의 사과와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피해자 가족들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보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미군이 법의 심판을 받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집회는 촛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마지막 발언을 한 송영주 민주노동당 경기도의원은 "효순이, 미선이가 미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때 전국의 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 가족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촛불일지도 모를 일이다. 촛불은 이날 동두천에서 먼저 타올랐다.

태그:#동두천, #미용실, #방화사건, #주한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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