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유월의 하늘은 맑아서 금방이라도 구름을 타고 하늘 끝까지 갈 것 같은 마음입니다. 너무 오랜만이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설레는 마음을 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긴 여정의 터널을 걸어온 제 이야기는 다음에 차차 하기로 하고 오늘은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몰래 데이트를 시작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힘든 시간을 겪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지난 5월 중순,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사 갈까 생각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던 터라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학기 중이라 딸아이의 전학문제도 걸렸고,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이곳을 막상 정리하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찹찹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때였습니다.

그 한 통의 전화는 가뭄 끝에 내리는 비처럼 아주 시원한 그리고 고마운 것이었지요. 전화의 내용은 시골의 한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제게 근무하기를 원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한번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던 곳이었지만 그땐 사실 제 모교여서 거절을 했지요. 아는 선생님들도 너무 많고 근무하면서 부담스러운 일들이 많을 것 같아 거절을 했었지요.

생각해 보겠노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전 다시 전화를 하고 출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학교도서관에서 근무하는 게 바람이었다면 그랬습니다. 그래서 채용공모에도 이력을 올려놓기도 하고 그랬던 터라 모교면 오히려 더 열심히 일을 할 것 같았습니다. 해이해진 제 마음을 다시 추스르는 시간을 갖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급하게 서류를 챙기고, 업무를 인수받고, 5월 말부터 출근을 했습니다. 출근을 하면서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한 분은 바로 고향에 계신 어머니였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일을 다닌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기뻐하셨습니다. 요즘은 여자들도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모교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하자 어머니는 이것저것 물어보시며 축하해주셨지요.

저 역시 어머니의 축하가 제일 반갑고 행복했습니다. 어머니는 배운 공부를 제대로 활용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이른 아침에도 늦은 저녁에도 전화를 하셨습니다. 이유는 노란버스만 보면 제가 타고 지나가는 것 같아서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노라고.

출근하고 일주일이 되는 날 아침이었습니다. 여러 번의 어머니 전화였습니다. 퇴근길에 집에 들러 보따리를 들고 가라는 것이었지요. 전해줄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하면 들르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행여나 잘 챙겨 먹지 않을까 밑반찬부터 여름 푸성귀까지 준비를 하신 모양이었습니다.

그날 퇴근을 하고 급하게 고향집에 들렀습니다. 부엌에선 어머니의 바쁜 손놀림이 저를 반겼습니다. 김치며 상추, 콩잎 절인 것, 갓 잘라온 부추, 나물 등이 부엌 바닥에 널려 있고 몇 개 안 되는 고추를 내보이며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벌써 고추가 열렸는데 몇 개 안 된다고, 올해 처음 수확한 고추니 맛있게 먹어보라고 말입니다.

한 보따리를 챙겼습니다. 한 손 가득 보따리를 들고 어머니와 함께 논으로 향했습니다. 어머니는 논에 가시는 길, 전 그 가까운 곳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타고 가려고 모녀는 함께 들녘 길을 걸었습니다.

버스는 항상 어머니의 논 옆으로 지나갑니다. 둑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어머니가 논에서 풀을 뽑는지, 밭에서 마늘을 캐는지 한눈에 다 보입니다.

헤어지는 갈래 길에 서서 어머니는 당부를 하십니다. 밥 잘 챙겨 먹고, 늦으면 집에 들러 자고 가고, 그저 조심해서 다니라고 말입니다. 아직도 어머니는 제가 결혼 안 한 막내딸로 착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논으로 향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뒤로 하고 한참 후, 기다리던 버스를 탔습니다. 그런데 그 버스 안에는 학교에서 매일 보던 학생들이 여러 있었습니다. 저는 그 학생들 얼굴을 일일이 모르지만 학생들은 저의 얼굴을 잘 알겠지요. 인사를 하는 학생들을 뒤로 하고 얼른 빈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손에 든 보따리를 숨겼습니다.

행여나 냄새가 날까 집으로 오는 내내 걱정이 되었습니다. 순간, 보따리를 든 제 손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한참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습니다. 이 보따리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건 어머니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으로 채워진 보따리 속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어머니와 저만의 비밀스런 보물인 것을 말입니다.

요즘 아침저녁 매일 어머니와 비밀 데이트를 즐깁니다. 전 버스 안에서 허리 숙여 일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봅니다. 그렇게 지나치려는 찰나 어머니는 허리를 펴십니다. 그러곤 한참을 버스가 지나가는 꽁무니를 쳐다보시지요. 역시 어머니와 전 통하는 그 무언가가 있나 봅니다. 그래서 즐거운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7일)은 보리타작을 하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왔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번 주 휴일엔 나머지 일을 하고 와야겠습니다.

태그:#어머니, #비밀데이트, #허리, #노란버스, #사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