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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하우스
내가 교육방송에서 <지식채널e>를 처음 본 것은 축구선수 박지성을 다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지성' 편으로 기억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한 시골학교의 축구부원이 세계적인 축구선수로 거듭나기까지 겪어야 했던 무수한 노력과 집념의 시간들을 그린 내용이었다. 감동 어린 성우의 내레이션도 없었고 웅장한 배경음악 등은 없었지만 흑백대비를 보여주듯 강렬한 인상을 주는 문구와 영상이 굉장히 오래도록 가슴에 남은 작품이었다.

그 후로 <지식채널e>라는 프로그램을 눈여겨 보았다. 시간도 짧아서 좋거니와 강한 인상을 남겨주는 독특한 구성의 이 프로그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본 작품들은 다수 된다. 청계천 상가 주민들의 주거권, 축구공의 경제학, 황우석 저널리즘 등 내가 본 그것들은 어떠한 다큐멘터리나 시사 칼럼보다 더 웅장했고 감동적이었으며 아름다웠다. 단 5분 안에 시청자들의 마음 한구석에 뜨거운 열기를 지필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이번에 <지식채널e>의 내용을 묶은 책 <지식ⓔ>(북하우스)가 출간되었다. <지식채널e>의 특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영화보다 더 감동적인' 영상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 좀 아쉽긴 하지만 '시보다 더 깊고 아름다운' 문구로 독자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시기도 하고 때로는 뜨겁게 달구기도 한다.

이 책은 총 4부로 나뉘어 있다. 1부 '구분하기'에서는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금도 지구촌에서 차별과 수모를 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기서 '자신'은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해당된다.

2부 '밀어내기' 역시 힘없는 소수를 위한 항변이다.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힘이 없고 소외된 자들, 즉 무명화가, 시각 장애인, 입양아들, 매 맞는 여성, 혼혈아들, 철거민들… 우리 사회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난쟁이'들에 관한 기록이다.

3부 '기억하기'는 지난 역사 속 부끄럽고 치욕스런 사건 속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의 투쟁, 5.18광주민주화운동, 대추리 주민들의 한 맺힘, 나치의 손에 죽어간 무수한 집시들, 유럽강대국의 성적 노예로 전락한 '사트 바트만'이라는 남아공의 여인, 멕시코 혁명의 주인공이자 민초의 희망이었던 '판초 비야', 베트남의 진정한 혁명가 '호치민'의 이야기다.

힘없고 소외된 우리 시대 '난쟁이'에 관한 항변

4부 '돌아보기'는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통해 현대인의 초상을 비춰보고자 하는 자리다. 황우석 저널리즘 사건, 쇼핑 중독과 비타민 중독에 시달리는 현대인들, TV의 노예로 사는 현대의 생활 패턴, 낙태, 환경파괴, 동물 학대 등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지식채널e>가 강렬한 인상과 문구로 시청자들에게 의문부호와 느낌표를 던졌다면 이 책은 거기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는 친절함으로 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들의 알권리와 배울 권리에 대해 다룬 '여섯 개의 점'이라는 단락을 보면 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압축하는 문구와 구절이 먼저 소개된 뒤 이어서 뒤편에는 이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대다수 사람들을 위해 점자의 역사와 체계, 오늘날 보급 현황, 한국의 점자체계 등을 상세히 설명해놓았다. 따라서 점자에 대해 전혀 무지했던 사람이라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다른 대목도 마찬가지다. 이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인물 등 우리 사회를 보다 더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안목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단락마다 참고도서를 소개해놓아 보다 전문적으로 깊이 알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 책에는 담겨있다. 그것은 바로 알음 알이 너머로 가슴에 와닿는 뜨거운 그 무엇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은 엄격히 구분 짓는 잣대가 아니라 경계를 넘나드는 이해입니다. 말하는 쪽의 입이 아니라 듣는 쪽의 귀입니다. 책 속의 깨알 같은 글씨가 아니라 책을 쥔 손에 맺힌 작은 땀방울입니다. 머리를 높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낮게 하는 것입니다'(책 머리말 중)

이 프로그램의 제목에 'e'가 붙은 이유는 방송사의 이니셜(EBS)를 딴 것이기도 하고 지식(Knowldge)의 e를 딴 것이기도 하다. 단락마다 그 성격을 구분짓는 영어 단어에 e 음절이 공통적인 키워드로 포함되어있는 것도 재미있다. scince, natur, tru, lif, pople, litrature 등.

책 내용 전반은 암울하지만 그래도 <지식e>와 같은 존재가 있어 이 세상은 아직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희망(hop)을 갖게 한다. 세계 곳곳에 정의(justic)가 실현되는 그날을 위해 작지만 꾸준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세상을 향한 '작은 창' 하나 만들고 싶었다"
EBS <지식채널e>는 어떤 프로그램?

'누구나 살면서 문득 뒤돌아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걷다가 잠깐 멈춰 설 때도 있으며 이유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도 있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매우 짧은 시간동안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거짓없이 느끼기도 한다.

5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그 시간은 삶에 있어서 매우 소중한 시간일 수 있다. 그 순간을 TV라는 매체에서 그려보고자 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 순간 자체가 아니라 그저 그 순간을 바라볼 수 있는 '작은 창' 하나를 만들고 싶었다.' -<지식채널e> 담당 프로듀서 에필로그 중-


2005년 9월에 기획, 편성된 프로그램으로 일주일에 세 편씩 방영되며 'e'를 키워드로 한 자연(nature) 과학(science) 사회(society) 인물(people)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룬다.

'5분' 동안 전해지는 강렬한 메시지와 영상은 시청자들에게 당대의 예민한 시사쟁점을 제시함과 동시에 생각할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매주 월~금 밤 8시 50분/ 10시 40분/ 11시 40분 방영(www.ebs.co.kr)

덧붙이는 글 | <지식e> EBS 지식채널e 지음. 도서출판 북하우스. 1만2800원


태그:#지식E, #지식채널E, #EBS, #교육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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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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