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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 사무실에서 날아든 우편물
ⓒ 하승창
미국에 와서 새롭게 겪은 것 중의 하나가 변호사 광고다. 여기서 TV를 보고 있으면 "나는 어떤 문제가 전문인 변호사다, 내게 오라"는 식의 광고를 자주 보게 된다. 특히 케이블 방송에 자주 등장한다. 한국에 있을 때 접하지 못했던 것이어서 신기하기도 했지만, 직접 광고할 일은 없었기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 집으로 변호사 사무실에서 우편물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한 10여통 정도의 우편물이 한꺼번에 배달됐다. 처음에는 황당했다. 뉴저지에 한인 변호사들이 많기 때문에 한인 변호사 한 명 쯤 섞여 있을 법한데도 한인 변호사는 하나도 없다. 이걸 왜 보냈지? 내가 사는 집 주소는 어떻게 알았나? 그 이유가 궁금해서 한 통을 뜯어 보았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날아온 10여통의 우편물

@BRI@내 개인 정보는 법원에서 알았다고 적혀 있다. 법원에서? 그제야 생각이 났다. 지난 해 말에 동네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아이 물건을 사려고 차를 몰고 나갔다가 교통법규를 위반한 적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반대편 차선으로 들어서야 하는 데, 처음 간 동네인지라 차를 돌려야 할 곳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다가 중앙선을 넘어 유턴을 감행한 것이다.

그동안 차를 타고 다니면서 중앙선을 넘어 유턴하는 차량을 많이 보아왔던 터라 별 생각없이 행동한 것이다. 경찰차의 싸이렌 소리를 듣는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찌하랴. 경찰차는 내 차 옆으로 접근해 '정지'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경찰의 특별한 사인이 없는데 차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문을 열고 내리면 이 곳 경찰들은 바로 총을 집어든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어온 터라 얌전히 앉아 있었다. 경찰관은 우선 면허증과 차량등록증, 보험증서를 보여달라고 하더니 내가 불법유턴을 했단다.

여기는 유턴이 금지되어 있고 좀 더 올라가면 유턴할 수 있는 지역이 있다는 것이다. 경찰관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봐달라고 해도 제대로 먹히지 않을 게 뻔하니 그냥 알겠다고 할 밖에.

그는 소위 '딱지'를 하나 끊어주면서 만약 당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지정된 기일에 법원으로 나오란다. 그게 아니면 법원에 나올 필요는 없고 부과되는 벌금을 물면 된단다. 그래서 미국 와서 처음으로 85불짜리 벌금을 물게 되었다.

벌금이야 인터넷으로 내면 되니까 법원에 굳이 갈 필요는 없다. 근데 이 많은 변호사들의 우편물은 무얼까? 85불짜리(요새 같으면 우리 돈으로 8만원 조금 넘는 돈이다) 벌금문제를 해결해 주고 도대체 얼마를 받으려고 이러는 걸까 싶다.

나보다 앞서 다른 친구가 신호위반과 차량등록증 미비로 유사한 고지서를 받았는데 이 친구는 혹 법원에 가서 하소연하면 좀 깎아 줄까 싶어 법원에 갔다고 한다. 법원에서 만난 검사가 벌금 외에 벌점 4점이 있는데 그 벌점을 면제받으려면 4백불 정도의 돈을 추가로 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검사와 협상해서 벌점을 2점으로 하고 벌금을 추가로 150불을 내기로 했단다. 벌점 12점이면 운전면허가 정지되니까 벌점의 크기를 줄이기 위한 협상을 한 셈이다.

그 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기억하고 보니 변호사들의 우편물 공세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운전면허가 정지되기 직전까지 벌점이 누적된 사람들이나 나이가 어린 운전자가 벌점을 받은 경우 보험료가 엄청 높아진다고 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벌점을 없애는 것은 중요한 일인 셈이다. 말하자면 그 친구가 검사와 협상했던 내용들을 결국 변호사가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안에 따라 비용은 다르겠지만 벌점을 없애 주는 일도 소액이라도 변호사가 일을 대행해 주는 셈이다.

교통 벌점마저 '환전'해주는 사회

이런 일을 겪으면서 이러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벌점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페널티마저 화폐가치로 환산하는구나 싶었다. 물론 내가 받은 벌점 3점은 1년 후에는 소멸되고, 또 교육을 받으면 감해준다. 하지만 추가벌점이 생겨서 벌점이 많아지면 운전이 곤란해지니까 이를 돈으로 해결할 정도로 시장논리가 확장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수많은 법률이 양산되고 그 많은 법을 전부 알 수 없는 우리네 장삼이사들이 법률서비스를 받으려면 그리 비싸지 않은 조력자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호사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그 많은 변호사들이 적은 수익을 올리더라도 '흔하고 일상적인 삶'까지 침투해들어오는 것을 보니 미국 사회에서는 변호사들이 관계하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변호사들의 도움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역시도 사회적 갈등이 적어야 하고, 제도의 복잡성이 덜해야 할 것이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해야하는 시간과 비용이 적어야 가능한 일이다.

한국 사회도 이렇게 변해갈지 모를 일이다. 우리도 최근들어 변호사의 수를 늘리고 로스쿨을 도입하려고 하는 등 사법제도의 근간을 바꾸어 가고 있다. 어찌보면 기존의 사법제도가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우리 사회가 그만큼 복잡해지는 것의 반영이기도 할 터이다.

비용을 덜 들이고 질좋은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미국의 변호사들이 교통법규 위반에까지 대거 달려드는 걸 보니 이로 인한 서비스 비용의 증가와 낭비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변호사 광고 확대를 허용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으니, 조만간 유사한 풍경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태그:#교통위반, #뉴욕, #변호사 광고, #변호사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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