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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6개월 동안 주말주택으로 오가다 올해 1월부터 이곳에 완전히 머물렀다. 겨울의 설국을 거실 안에서 누리는 행복도 잠시, 봄이 되니 할 일이 너무 많다. 내 집으로 만들기 위해 잔디 일부를 걷어내 정원을 만들고, 디딤돌을 놓고, 나무를 사 와 심고, 심었던 나무를 다시 옮기고, 정원의 경계석을 만들고, 석축 위에 엉켜있는 풀과 나무들을 정리하고, 텃밭도 만들면서 미루어 두었던 이곳저곳을 정리하였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막일을 쉬지 않고 하니 몸이 매우 고되다. 잠자리에서 뒤척일 때마다 어깨와 허리가 결려 잠에서 깨곤 한다. 몸이 이렇게 고되니 10여 년 동안 매일 해왔던 걷기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비 오는 날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이렇다 보니 책 읽기도 당연히 중단되었다. 이제 내 집으로 큰 틀은 만들어 놓았으니, 그동안 쉬고 있었던 책 읽기를 다시 시작한다. 퇴임 후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 것인가'에 도움을 많이 준 책이 노자의 <도덕경>이다. 이 책을 다시 읽는다. 44장 '知足不辱 知止不殆(만족할 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에 눈길이 머문다. 무엇에 만족하며, 무엇을 멈출 것인가를 되새긴다.

자연에서 오감을 일깨운 시골살이
 
빗소리를 듣고 있는 우리 부부를 앞산의 부부 새가 우리를 보고 말하고 있다. 마음을 비우며 살라고.
▲ 빗소리를 듣는 우리 부부를 보고 있는 앞산의 부부 새 빗소리를 듣고 있는 우리 부부를 앞산의 부부 새가 우리를 보고 말하고 있다. 마음을 비우며 살라고.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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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 시골살이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자연에서 오감을 일깨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산의 모습은 계절에 따라 달리한다. 봄, 나뭇가지에서 연둣빛 여린 새순이 올라온다. 이 연둣빛 새순을 보고 있으면 눈과 마음을 절로 맑아지며, 덩달아 기분도 한층 더 좋아진다.

여름, 산은 뜨거운 태양열에 짙푸름으로 변한다. 모자란 능력을 메우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며, 쉼은 사치였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한때 나에게도 목표, 사명감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쉼이 필요한 시간이다. 그 쉼이 여유로 이어지고, 그 여유가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이해로 자리 잡아 나가길 바란다.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 단풍은 조금 거리를 두고 보아야 아름답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속속들이 알려고 하지 말자. 조금 거리를 두고 아름다운 점을 보려 하자.

겨울, 산이 속살을 보여준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산길도, 바위도 보인다. 꾸미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야 할 나이가 되었다. 눈으로 덮인 겨울 산은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또 온갖 허물도 덮어준다. 지난날의 헛된 욕심을 이제 내려놓아야 함을, 다른 사람의 잘못을 모르는 척 해주는 지혜도 필요함을 거듭거듭 생각한다. 나는 겨울 산이 제일 좋다.

이뿐 아니다.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산의 풍광은 예술이다. 일어나 거실의 커튼을 걷으면 어젯밤 사라졌던 산이 다시 앞에 있다. '머언 산이 다가서다'라는 시구(조지훈의 '낙화)에 감탄한다. 이른 아침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는 몽환적이다. 눈으로 덮인 마을의 모습은 동양화에서 보던 신선 마을 그대로이다. 아침 햇살을 받은 산은 그야말로 밝고 깨끗하다. 그 기운으로 하루를 연다.
   
현관을 나서면 앞산 뒷산에서 박새와 곤줄박이가 노래하며 반긴다. 늦봄부터 초여름까지 잠시만 들을 수 있는 휘파람새와 뻐꾸기 노래는 그 어느 클래식보다 사람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고, 위로해 준다. 비 오는 날 빗소리에 귀 기울이고 산을 바라보면 그동안 잊었던 소리가 들린다. 마음을 비우고 조금 더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속삭인다.
   
바람이 살짝 불 때 들려오는 풍경소리가 좋다. 절집에서 풍경소리의 맑고 깨끗함이 좋아 풍경 하나를 샀다. 그 풍경을 산 지는 30년도 더 되었다. 아파트를 옮길 때마다 풍경을 달 때를 찾곤 했는데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늘 한쪽 구석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 풍경이 시골살이에서는 빛을 내고 있다.
 
30여 년 전에 산 풍경이 드뎌 제자리를 찾아 빛을 내고 있다
▲ 풍경 30여 년 전에 산 풍경이 드뎌 제자리를 찾아 빛을 내고 있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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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거닐면 은은히 스며드는 꽃 내음에 마음이 흐뭇해진다. 그 향기를 더듬어 이 꽃 저 꽃에 코를 가까이한다. 라일락의 짙은 향기에 마음이 빼앗긴다. 그 향이 좋아 정원에 있는 것과 다른 종 라일락을 세 그루 더 데려왔다.  

마당을 거닐 때 바람이 살짝 불면 팔을 펼치고 손가락을 다 벌리는 버릇이 있다. 그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결을 오롯이 맛보기 위해 눈도 지그시 감는다. 그동안 몸속에서 잊고 지낸 감각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도시와 공기가 다르다. 그 공기를 맛보러 마당으로 자주 나간다. 맑고 깨끗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다. 텃밭의 싱싱한 채소는 덤이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오감으로 즐기고 있다. 지금까지 깊숙이 묻혀 있던 감각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이성에 뒤처져 있던 감성이 꿈틀댄다. 사람 사는 세상에 감성이 이성 못지않게 중요함을 이제야 안다. 살아있는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자연에서 오감을 일깨우며 시골살이에 만족한다. 이 또한 욕심이지만, 다른 사람과 애써 다투어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무슨 치욕을 당할 일이 있겠는가?

노탐을 경계하다

굳이 시간을 내어 따로 배우지도 않고도 혼자 할 수 있는 산행이 내가 가진 유일한 취미이다. 산에 오르내리며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

산에 오를 때 정상에 대한 욕심이 있기에 힘이 들어도 온 힘을 다한다. 그렇게 힘들게 올랐는데 정상에 머무는 시간은 잠깐이다. 다시 내려와야 한다. 내려올 때 마음은 행복하다. 그런데 내려올 때 내리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르막도 있다.

하지만 그 오르막은 짧다. 이제 내 나이는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유혹의 손길에 빠져도 안 된다. 흔히 말하는 노탐을 경계하며 조심스레 내려와야 한다.

조심스레 내려가기 위해 재테크에 관한 관심은 거두어야 한다. 집이 있고, 가끔 가벼운 외식도, 여행도 할 수 있다. 그러면 되었다. 욕심을 부리다 낭패라도 당하면 이제 회복할 방법이 없다. 지인들이 시골살이에 관심을 보이며 물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아파트값에, 주식에, 코인에 관심이 있다면 아직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돈에 관심이 있으면 자연이 주는 행복을 온전히 맛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돈을 불리는데 관심은 버릴 나이가 되었다.

한때 빈말에 현혹된 적이 있다. 내 능력을 과대평가한 빈말에 넘어갔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내 이성의 얄팍함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누군가가 하는 이런 빈말에 휘둘려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이제 나를 드러내려는 욕심은 멈추고, 모자란 능력과 인품을 메우기 위해 배우고, 생각하기는 멈추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이제 내리막길을 조심스레 걷고 있기에 그러하다.

자연에서 오감을 즐기고, 세속의 욕심을 멈추면 그래도 남아 있는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이 깨우침이 삶에 바로 연결될 수 있도록 눈길이 자주 가는 책장 앞에 작은 액자를 만들어 두고, 노트북을 열 때마다 볼 수 있도록 덮개에도 붙여 놓았다.
 
글을 잘 쓰는 직장 동료에게 부탁하여 받았음
▲ 지족불욕 지지불태 글을 잘 쓰는 직장 동료에게 부탁하여 받았음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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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감탄하다 보니 자연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 이제 그 고마움이 가족으로, 이웃으로 옮겨갈 나이가 되었다.

태그:#노자, #도덕경, #시골살이, #자연, #탐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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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공자에게서 배우는 사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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