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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사극을 보며 품었던 활쏘기에 대한 로망을 30대가 되어 이뤘습니다. 대학원생으로 살면서 활쏘기를 통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활쏘기의 매력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활을 배우며 얻은 소중한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기자말]
요즘 활터에 가면 대학생 궁사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대부분 국궁동아리 소속 학생들이다. 서울만 하더라도 광운대·고려대·서울대·서울여대·한양대 등 19개 대학에 국궁동아리가 설치되어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애석하게도 나는 학·석사과정 모두 출신 학교에 국궁동아리가 없어 동아리 활동을 할 기회가 없었다. 과거 모 대학교 국궁동아리에 객원멤버로 참여해 잠깐이나마 어울렸던 적은 있었지만, 정식 동아리원은 아니었기에 아무래도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또래끼리 어울려 활도 내고 MT도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심 부러웠다.

서른 넘어 들어간 대학 국궁동아리
 
한복을 입고 활쏘기를 즐기는 대학생들 (서울 공항정 / 2024.3)
 한복을 입고 활쏘기를 즐기는 대학생들 (서울 공항정 / 2024.3)
ⓒ 홍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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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다시 학교를 옮기게 됐다. 그런데 진학한 학교에 국궁동아리가 있는 게 아닌가. 이미 나는 '공항정'이라는 소속 활터가 있었지만 학부 시절 동아리 활동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한을 뒤늦게라도 풀어보고 싶었다. 한편으로 이미 소속 활터가 있는 사원으로서 대학생 궁사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입부 지원서를 쓰려니 망설여졌다. 대학원생도 지원할 수 있다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서른 넘은 내가 괜히 20대 친구들 노는 데 들어가서 물만 흐리는 게 아닐까 적잖이 걱정됐다. 또 이미 소속 활터가 있는 입장에서 학생들이 나를 받아줄지도 의문이었다. 동아리 측에 문의하니 그들 역시 "이런 사례는 처음이라 내부 회의가 필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뭐 떨어지면 떨어지는 거지' 하는 생각으로 덤덤하게 답을 기다렸다. 다행히 "지원해도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지원 결과 '합격', 그렇게 서른 넘어 뒤늦게 나의 대학 국궁동아리 생활이 시작됐다.

동아리 활동은 즐거웠다. 전통활쏘기에 대한 열정 넘치는 젊은 궁사들과 어울려 활을 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수혈 받는 느낌이었다. 수평적인 문화도 인상적이었다. 활쏘기 자체가 예의를 무척 강조하는 운동이다보니, 나이가 많건 적건 서로 존대하며 존중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나 역시 "소속 활터가 있는 사원으로서 동아리 구성원들에게 조금이나마 편의를 제공하고 싶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틈만 나면 대학생 궁사들을 활터에 초대해 마음껏 습사를 즐길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줬다.

타 대학 국궁동아리 학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었다. 그러다 얼떨결에 몇 개 대학 국궁동아리 학생들로 구성된 '습하'('습사하고 싶다'의 줄임말)라는 이름의 소모임까지 만들었다.

그렇게 결성된 습하 멤버들과 '전국 활터 기행'도 종종 다녔다. 특히 작년 8월 한산대첩 431주년 및 광복절 기념으로 다녀왔던 '통영 한산도 습사여행'은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추억으로 자리매김했다(관련 기사: 일행 모집에 심판 찾기, 힘들어서 더 즐거웠던 활쏘기 여행 https://omn.kr/257nl ).

대학 동아리에 더 많은 배려 필요한 이유
 
2023년 8월 15일 한산도 제승당 활터(한산정)에서
 2023년 8월 15일 한산도 제승당 활터(한산정)에서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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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소속으로 다른 활터들을 방문할 때마다 늘 과분한 대접을 받곤 했다. 대학생 궁사들이 마음껏 활을 쏠 수 있도록 기꺼이 자리를 양보해주고, 때로는 식사비에 보태쓰라며 손에 봉투를 쥐어주려는 분들도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활터에 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반갑고 고맙다"면서.

제도적으로 대학생들을 위해 각종 배려를 실천하는 활터들도 많다. 당장 내가 소속된 공항정만 하더라도 국궁동아리 학생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장소를 무료로 대관해주고 있다. 몇몇 활터들은 국궁동아리 학생들에게 무료로 국궁교육을 실시한다고도 들었다.

대한궁도협회 역시 각종 대회에 '대학부'를 따로 두어 활터 소속이 아니더라도 국궁동아리 학생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전통활쏘기를 책임질 미래의 동량을 육성하고 격려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다른 지역 활터에 방문할 때마다 늘 좋은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면에 다짜고짜 반말을 툭툭 던지며 무례하게 행동하는 이들 때문에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몇 번 있었다.

재밌는 건, 내가 대학 동아리가 아닌 일반 활터 소속으로 방문했을 때는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대학 동아리에서 왔다고 하니, 대학생이라 간주하고 자기들보다 한참 어리다고 생각해서 하대한 것이리라.

그럴 때마다 상대방 인식에 기본적으로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는 반말을 해도 된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 같아 상당히 불쾌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활쏘기는 그 어떤 운동보다도 상호 예의를 중시하는 운동이다. 대학 동아리 학생들조차도 수평적인 문화를 지키기 위해 상호 존대를 하는 마당에, 활터에서 초면에 반말이라니.

여전히 비판 받는 폐쇄적인 문화

성질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따지고 싶었지만, 나 한 사람 때문에 분위기가 싸해지는 게 싫어 그냥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한 번은 동아리 학생 한 명에게 이런 불만을 토로했더니 "나도 처음에는 반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 남의 활터를 이용하는 처지에서 일일이 감정적으로 반응해서 좋을 게 없다"며 되레 나를 달래주었다. 그 말을 들으니 부당한 대접에도 따지기 힘든 학생들의 처지가 이해되어 딱하기까지 했다.

물론 활터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두 사람의 그런 행동들이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활터 방문을 꺼리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국궁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보면, 활터의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문화, 어린 사람을 깔보고 하대하는 문화를 비판하는 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소위 활터의 '꼰대 문화'가 싫어서 요즘은 활터에 등록하지 않고 사설 국궁교육장에서 습사를 즐기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몇몇 사람들의 몰상식한 행동이 활터와 국궁이라는 문화 자체에 대한 MZ 세대들의 반감만 키우게 되는 건 아닐까 싶어 마음이 무겁다.

대학생들은 앞으로 전통활쏘기의 미래를 책임질 이들이다. 학생들이 활터를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도록 동등한 성인으로 대우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활쏘기를 즐기는 대학생들 (통영 열무정 / 2023.8)
 활쏘기를 즐기는 대학생들 (통영 열무정 / 2023.8)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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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나의 동아리 생활은 1년 만에 끝났다. 박사과정 대학원생으로서 동아리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운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짧지만 즐거웠던 기억을 안고 떠나며, 멀리서나마 대학생 궁사들을 응원한다.

태그:#활, #활쏘기, #국궁, #공항정, #국궁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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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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