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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9일 저녁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9주년 기념 특별 강연회에서 '국민의 정부'의 업적과 역사적 성격에 대해 특강하고 있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9일 저녁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9주년 기념 특별 강연회에서 '국민의 정부'의 업적과 역사적 성격에 대해 특강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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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에 한국의 언론들은 유행처럼 유명 인사들의 칼럼을 실었다. 신문과 방송, 잡지 등 매체에 상관없이 경쟁적으로 명사들의 칼럼을 소개했다. 칼럼의 인기는 높았다. 그만큼 영향력도 크고, 매체의 구독률에도 영향을 미쳤다.

강만길도 일부 신문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했고, 곧 품격 있는 칼럼니스트로 발돋움했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하고, 검사는 기소장으로 말한다고 했다. 학자인 그는 글로 말했다. 그의 칼럼이 발표되면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우리 통일, 어떻게 할까요 / 역사는 변하고 만다>는, 출판사의 책소개에 따르면 2003년에 펴낸 <우리 통일, 어떻게 할까요>와 <역사는 변하고 만다>를 한데 묶은 책이다. <우리 통일, 어떻게 할까요>는 "저자가 오랫동안 가져온 통일 문제에 대한 생각을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정리한 것"으로, "대중강연을 통해 전달한 내용"이다. 칼럼 총 70편이 실렸다.

<늙은 역사학자의 고백>에서 그는 역사학자들의 소임이 무엇인지 준엄하게 제시한다.

역사학자에게는 역사 진행의 방향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내어야 할 의무가 있다. 역사의 대열이 잘못 간다고 판단될 때 혁명가나 정치가처럼 대열 앞에 나서서 그 방향을 바꾸려 하지는 못한다 해도, 대열을 뒤따라가면서 잘못 감을 열심히 지적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역사 진행의 방향과 속도를 잘못 보는 역사학자, 역사의 대열을 뒤따라 나가기에도 힘겨운 역사학자가 되어 버리면 십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주석 1)

그는 고난과 암흑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일부 언론의 행태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언론 행위는 역사서술 행위와 같다며 망설임 없이 언론을 질책한다.

군사독재 권력과 유착했던 언론들이 민주정권시대에 와서 약간 '따돌림' 받는다 해도, 정권이 바뀌면 다시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으리라 희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의 위상이 정권에 따라 양지도 되고 음지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 자체가 큰 잘못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언론 행위는 곧 역사서술 행위와 같다고 생각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하면서도 그것이 귀걸이 코걸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역사 발전의 옳은 방향을 제대로 파악하고 지향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국주의와 냉전주의가 판을 쳤던 20세기를 넘기고 평화주의와 문화주의를 지향하는 21세기로 들어서는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 역사 발전의 옳은 방향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면의 민주주의를 순조롭게 발전시키는 일과 민족의 평화적·화해적 통일을 적극적으로 지향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주석 2)

강만길은 또한 "역사 건망증이 심한 민족은 역사 실패를 거듭하게 마련"이라며 "문화민족일수록 영광스러운 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 가슴 무너지는 역사, 치욕스러운 역사까지도 정확하게 재생해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의문사'의 진실은 철저히 밝혀져야 하며, 독재정권의 마수에 희생된 모든 민주영령들은 4·19나 5·18 영령들과 같이 그 안식처가 따로 마련되어야 한다" (주석 3) 라고 말한다.

역사학을 전공한 지 50년이 된 자신에게 역사학과 50년을 씨름해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스스로 묻는다. 그리고 이에 대해 "세상에 아무것도 믿을 것이 없다 해도, 역사가 변한다는 사실만은 믿어도 좋다는 진리를 터득했다"라고 답한다. 그 이유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반백 년 공부해 얻은 것치고는 너무 평범하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만족하고도 남는다. 왜냐면 그 진리를 안 일이야말로 험난한 세상은 큰 잘못 없이, 또 큰 후회 없이 살아온 원동력이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주석 4)

반공주의가 극성을 부리던 시대에 자신보다 앞서 '평화통일'을 주장했으나 정권의 희생양이 된 조봉암도 되돌아본다. <조봉암의 재평가를 위하여>라는 글인데, 이 글에서 조봉암이 목숨을 잃게 된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6·25 전쟁을 겪고 난 후 조봉암의 평화통일론은 되살아나거나 더 강화된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전향'은 했다 해도, 사회주의 운동권 출신으로서 제2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여 '의외'의 지지를 받아 남한 안에 아직도 상당한 진보세력 및 평화통일론 세력이 실존함을 확인한 그는 진보정치 세력의 규합에 의한 평화통일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힘입어 진보당 창당을 계획했고 또 제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아직도 반공주의가 극성을 부리던 남한에서 사회주의권 출신으로서 평화통일을 주장하면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여 2위로 낙선했다는 사실은 이승만의 노쇠와 함께 분단고수 보수 세력들의 위기의식을 조장하였고, 이것이 그가 목숨을 잃게 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석 5)

그는 "인류 역사 이래 역사의 흐름을 막는 데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막아도 역사는 흐를 만큼 흐르고, 변해야 할 만큼 변해" 왔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일깨워 준다.

"지금 우리에게는 변해야 할 만큼 변하고 말 역사를 남의 힘에 앞서 우리 민족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하루라도 빨리 바꾸어 가려는 역사의식을 가지는 일이 중요하다." (주석 6)

책의 맨 뒤에 실린 <한반도 통일과 미국>에서는 통일 문제가 외세에 휘둘려서도 안 되며, 외세에 눌려 남북 간의 신뢰가 깨어져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강행하는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 때문에, 6·15 공동선언으로 어렵사리 쌓인 남북 간의 신뢰가 깨어져서는 안 된다. 통일문제가 외세에 휘둘려 통일문제의 자율적 해결이 또다시 실패할 것인가, 아니면 21세기에는 외세의 책임을 극복하고 통일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낼 수 있을 것인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주석 7) 

김행선 교수는 이 책의 '해제'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변해야 할 만큼 변하고 말 역사를 남의 힘이 아니라 우리 민족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하루라도 빨리 바꾸어 가려는 역사의식을 가지는 일이 중요하며, 더 나아가 통일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환기하고, 통일방법에 관한 논의를 활성화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함을 주장하고 있다."(주석 8)


주석
1> 강만길, <우리 통일, 어떻게 할까요 / 역사는 변하고 만다>, 창비, 2018, 223쪽.
2> 위의 책, 278쪽.
3> 위의 책, 292쪽.
4> 위의 책, 306쪽.
5> 위의 책, 347쪽.
6> 위의 책, 452쪽.
7> 위의 책, 464쪽.
8> 위의 책, 470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강만길평전, #강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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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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