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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 연설(1969년)김대중 의원이 1969년 효창공원에서 박정희의 3선개헌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연설 제목은 '3선개헌은 국체의 변형이다'였다.
▲ 3선개헌 반대 연설을 하는 김대중 의원 효창공원 연설(1969년)김대중 의원이 1969년 효창공원에서 박정희의 3선개헌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연설 제목은 '3선개헌은 국체의 변형이다'였다.
ⓒ 김대중평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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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7월 19일 서울 효창운동장. 수십 만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김대중 의원이 연단에 올랐다. 연설 제목은 "3선 개헌은 국체의 변혁이다". 김대중은 당시 집권여당인 공화당의 상징이 황소라는 점을 들어 연설을 시작했다.

"조간신문을 보니까 경기도 안성에서 미친 황소 한마리가 주인 내외간을 마구 뿔로 받아 중상을 입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 황소를 때려잡으려고 몽둥이를 들고 나섰지만 잡지 못해서 마침내 지서 순경이 와 가지고 카빈총을 다섯 방이나 쏘아서 기어이 때려잡았습니다."

누가 봐도 3선개헌을 추진하는 박정희 대통령과 공화당을 '미친소'에 비유한 것이었다. 서슬 퍼렇던 시절이지만 김대중의 연설은 거침없이 이어진다.

"나는 이 신문을 보고 '과연 천도가 무심치 않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중략..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박정희씨가 대통령 그만두고 나면 그 대학교의 총장을 할 것이라는 영남대학교 학생들의 데모 구호가 재미있다 그 말입니다. '미친 황소의 갈 길은 도살장 뿐이다.'"

폭소와 환호가 터져 나온다. 40대 기수였던 김대중은 위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던 박정희 정부를 향해 말의 비수를 날렸다.

"남은 정치한다고 평생 노력해도 국회의원 한번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한밤 중에 한강 다리 건너서 남의 정권 뺏어서 10년간 해먹었으면 됐지말야 (웃음) 뭘 또 해먹는다고.."

당시 그의 연설을 육성으로 들어보면 우리가 '에..'하는 연예인들의 성대모사로 기억하는 그 DJ가 맞나 싶을 정도다.

대한민국에서 사라진 연설문화

하지만 이제 이런 연설은 대한민국에서 사라졌다. 며칠 전 중계된 김한길 대표의 국회 연설. 전국으로 생중계된 야당 대표의 연설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의원들조자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 귀 파고 잡담하고··· 의원들의 딴짓 백태가 기사화되기까지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연설은 민주주의 정치가의 명운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페리클레스, 링컨, 케네디, 처칠. 역사속 민주주의의 위인들은 모두 연설의 달인이었다. 연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오바마 대통령이 가당키나 했을까?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요즘 정치로 성공하려면 가장 필요없는 게 연설이다. 2000년대 이뤄진 '오세훈 선거법'은 고비용 저효율 정치를 청산한다며 연설할 무대를 없애버렸다. 선거기간 학교운동장에서 이뤄지던 후보자 연설회와 옥내 집회 등을 모두 금지했다. 청중들을 돈으로 동원한다는 이유였다.

정당의 경선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국민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로 대표되는 절절한 연설이었다. 하지만 그후 모바일 투표가 유행하며 후보자의 연설 한 번 듣지 않고 투표하는 사람들이 당락을 좌우하게 되었다.

더구나 여론조사로 하는 단일화는 최악 중의 최악이다. 후보자들은 연설 한 번 없이 이미지와 유명세로 자웅을 겨뤄야 한다. 그 결과가 바로 지난 대선 문재인, 박근혜, 안철수 후보의 연설이다. 셋다 들어주기 참담한 수준의 눌변이었지만 아무도 그걸 문제삼지조차 않았다.

TV토론이 대안이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계속 몇십초 단위로 말을 끊고 들어오는 TV토론과 약 10분 이상 자기 무대를 가질 수 있는 연설은 엄연히 다르다. 연설이야말로 정치인이 자기를 국민에게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인 셈이다.

연설문화의 부활이 새정치의 시작

정치에서 연설이 사라지면 남는 건 무엇일까? 돈과 인맥이다. 돈과 인맥은 누가 쥐고 있나? 바로 파벌 보스다. 친노-비노, 친박-친이가 생겨날 토양이 여기서 생겨난다. 계파정치 청산은 연설문화의 부활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를 할거라고 한다. 하지만 정치신인을 어떻게 충원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저 CEO가 신입사원을 뽑듯 철저한 '갑'의 입장에서 심사하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력서와 면접을 통해 링컨과 케네디를 가려낼 수는 없는 일이다. 안철수 의원이 그들을 위한 연설대회를 마련해보는건 어떨까? 언론도 국민들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지난 1월 26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세 제1차 대한민국 청소년 연설대전이 개최되었다. 서울시 시민청에서 열린 예선을 통과한 청소년들이 모여 학교폭력, 왕따문제, 자살부터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논란까지 다양한 주제로 연설 실력을 발휘했다.
▲ 제1차 대한민국 청소년 연설대전 지난 1월 26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세 제1차 대한민국 청소년 연설대전이 개최되었다. 서울시 시민청에서 열린 예선을 통과한 청소년들이 모여 학교폭력, 왕따문제, 자살부터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논란까지 다양한 주제로 연설 실력을 발휘했다.
ⓒ 김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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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국회에서 열린 제1차 청소년연설대전에선 수많은 연설 꿈나무들이 별처럼 쏟아졌다. 새정치의 자원은 무궁무진하다. 이미 어딘가에선 한국의 오바마가 자신만의 무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태그:#연설, #김대중, #안철수, #청소년연설대전, #새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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