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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이 태어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 지난 2005년 11월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 임동혁·임동민 형제가 공동 3위를 차지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기자는 세계 각국의 유수 쇼팽 콩쿠르 참가 연주자들의 담긴 동영상을 보던 중 미국 국적의 아시아 피아니스트가 눈의 들어왔다. 소년 같은 외모에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 같은 인상이기도 했고, 국내에는 전혀 인지도가 없는 연주가여서 처음에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쇼팽의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폴로네이즈 op.2>를 연주하는 순간, 그의 연주에서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곡의 논리와 구조에 대한 해석력 역시 나를 사로잡았다. 성숙한 데다가 지성과 감성이 조화롭게 균형을 맞추고 있는 연주였다.

당시 필자는 아직 인지도가 없는 그를 보며 마치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당시 그에게는 최정상급 연주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보였다.

피아니스트 벤 킴
 피아니스트 벤 킴
ⓒ 아트앤 아티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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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벤 킴. 그는 본선까지 올랐지만 안타깝게도 입상에는 실패해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피아니스트 당 타이손(48)은 벤킴을 두고 "이번 콩쿠르에서 가장 지성적으로 연주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또한 당시 쇼팽 콩쿠르에서 벤 킴이 보여줬던 빼어난 실력을 기억하고 있는 이가 또 있다. 바로 피아니스트 강충모 교수(46·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한국인 최초로 당시 심사위원으로 콩쿠르에 관여했던 그는 "벤 킴이 최종 결선에 오르지 못한 것은 불운이었다"며 아쉬워했다. 쇼팽 콩쿠르의 입상 실패 경험은 벤 킴에게 도약의 기회가 됐을까.

그 다음 해인 2006년, 벤 킴은 독일에서 열린 제55회 뮌헨 ARD국제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1위를 차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됐다. 그가 피아니스트로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입증받는 순간이었다. 당시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 Op. 54> 연주는 정교함과 절제의 미학으로 청중들의 이성과 감성을 두루두루 만족시켰다.

기자는 지난 16일 김포공항에서 피아니스트 벤 킴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9월 22일부터 한국에서의 공연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한국말을 안 한지 너무 오래 돼서요."

인터뷰에 걱정이 앞선 벤 킴. 한국어는 부모님과 할머니께 배웠단다. 벤 킴은 1983년 미국 오리건 주 태생으로 재미교포 2세다. 그는 5세 때 피아노를 시작했지만, 독특하게도 예술 전문학교를 다니지 않고 여느 평범한 또래의 아이들과 같이 일반학교를 다녔다.

"예전에는 피아니스트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생물학이나 과학을 좋아해서 의학을 전공했을지도 몰라요."

피아니스트 벤 킴
 피아니스트 벤 킴
ⓒ 아트앤 아티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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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 날 그가 피아니스트로 성장할 수 있었던 사건이 있었다. 마스터 클래스에서 만난 미국 피아노의 거장 왼손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가 그의 연주를 듣고는 그에게 피바디 음대 진학을 권유했던 것. 레온 플라이셔는 그가 세계정상급 연주자로 성장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엿봤던 모양이다.

분명 벤 킴이 또래의 다른 피아니스트와 비교해 피아노계에 늦게 입문한 것은 사실이다. 기술적인 부분과 고된 훈련을 소화해야 하는 과정들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짧은 기간 벤 킴은 놀라운 성장을 보였다. 각종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이후 카네기홀·케네디 센터·베를린 콘서트하우스·바르샤바 필하모닉 홀 등 유명 홀에서 연주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또 아스펜·라비니아·루르 페스티벌과 같이 명성있는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연주력을 입증받았다. 그의 연주력과 음악성은 바바리안 라디오(Bavarian Radio) 오케스트라·중앙 독일 라디오(Central German Radio)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오케스트라의 협연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났다. 그는 일본을 비롯해 독일·러시아·이탈리아·영국·미국 등지에서 다양한 무대에 오르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는 학교 피바디음대 졸업한 뒤 독일로 거점을 옮겨 활동 폭을 넓혔다. 현재 그는 클라우스 헬뷔히를 사사하고 있다. 독일 생활에서 특별한 것을 찾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정말 좋은 연주자도 많고 좋은 공연도 많다"고 답했다. 4년 정도 된 독일 유학 생활, 그는 외롭지 않을까.

"18살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 그래서 쇼팽의 녹턴을 들으면 노스텔지아를 느낀다."

피아니스트 벤 킴
 피아니스트 벤 킴
ⓒ 아트앤아티스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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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취미 역시 독특했다. 가느다란 손과는 다소 대조되게 암벽 등반이란다. 피아니스트에게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손가락이 다칠 수도 있지 있는데, 위험하지는 않은 건지 궁금했다.

"암벽 등반은 손이 아니라 어깨의 근육을 사용해 하기 때문에 괜찮아요. 6층에서 7층 정도 되는 높이도 올라가요."

이어 음악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요즘은 공연 일정이 잡혀있어서 연습해야 할 시간이 많은 탓에 다른 것에는 집중할 만한 시간이 없어요"라고 답했다.

벤 킴은 9월 22일에는 군포 문화예술회관 수리홀에서, 23일에는 오후 5시 LG아트센터에서 지난 2010년 인디애나폴리스 국제바이올린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25)과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고전과 낭만'을 주제로 연주곡을 엄선했단다. 공연서 연주될 곡들은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6번>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베토벤 로망스 1번>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등이다.


태그:#벤킴, #피아니스트, #쇼팽콩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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