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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파발마' 퍼레이드의 중반부인 큰 말 행렬이 통일대교로 향하고 있다.
 '평화의 파발마' 퍼레이드의 중반부인 큰 말 행렬이 통일대교로 향하고 있다.
ⓒ 민족화해위원회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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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이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이었는지 저는 한동안 중요한 주제를 놓치고 지내왔습니다. DMZ, 이 이니셜이 주는 알알한 아픔 때문이었는지 일상사에서 쉽게 기억해내지 않았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름방학이 되면 잠깐 떠오르는, 그리움이 머무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 그리운 공간 가운데는 아름답고도 슬픈 계곡도 담겨있습니다. 두타연, 폭염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골짜기를 걸으며 잠시 8년 전 추억을 끄집어내 봅니다.

저는 지난 2004년 <오마이뉴스>와 고양환경운동연합 등이 주최한 '2004 DMZ Story' 캠프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제게 뙤약볕 아래 두타연을 걸으며 들었던 평화는 땀범벅이 된 고통과 같았습니다.

'2012 세계평화의 바람'에 함께한 외국인 참가자들이 모두 모였다.
 '2012 세계평화의 바람'에 함께한 외국인 참가자들이 모두 모였다.
ⓒ 민족화해위원회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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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다시 두타연을 걸었습니다. 2004년 당시의 제 나이 또래의 동생들과 외국인 청소년 등 평화의 친구들과 함께한 '2012 세계평화의 바람'(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주최·행사 총괄 정세덕 본부장 신부)에 참가하면서부터입니다. 이 행사는 지난 7월 28일부터 8월 3일까지 열렸습니다.

2004년 행사를 총지휘했던 전재명 '대장'(당시 우리들이 불렀던 별칭)은 이 행사도 기획하고 참가해 저와의 맺은 '평화의 인연'을 8년째 이어갑니다. 그냥 예전처럼 걷기만 하는 캠프였으면 흥이 덜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달랐습니다. 처음부터 '아! 평화를 이렇게 느끼고 알아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말 타고, 자전거 타고, 걸으며 만나는 '평화'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말 타고 달려 찾으러 간 평화

'평화의 파발마' 퍼레이드의 선두 행렬 모습. 정세덕 행사 총괄 신부가 행렬을 지휘하고 있다.
 '평화의 파발마' 퍼레이드의 선두 행렬 모습. 정세덕 행사 총괄 신부가 행렬을 지휘하고 있다.
ⓒ 민족화해위원회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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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말을 타고 만나러 간 평화입니다. '2012 세계평화의 바람' 캠프 2일 차 행사때 '평화의 파발마' 퍼레이드가 있었습니다. 준비를 위해 들인 공도 많아서 그만큼 화려한 행사였습니다.

평소의 방학 일정으로는 거의 한밤 중이나 다름 없을 오전 6시, 우리들은 잠자리에서 나왔습니다. 전날의 승마 연습으로 피곤해진 몸 때문인지, 모두들 힘든 표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지쳐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잠든 몸과 정신을 깨우기 위해 아침 체조가 진행됐습니다.모두들 체조 진행 선생님의 몸짓에 따라 열심히 몸을 풀었습니다.

아침식사 이후, 본격적인 퍼레이드 준비가 시작됐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파발마' 행사의 출발지인 파주 마정리 마정초등학교로 이동했습니다. 평화의 파발마가 시작된 마정리(馬井里)는 옛날에 말 우물이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 군마 훈련소가 있었다는 마장리(馬場里·유일레저타운의 소재지)에서 승마 훈련을 받은 평화의 친구들은 또 말을 기르던 곳인 마정리에서 퍼레이드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참가자들이 도착한 마정초등학교에는 이미 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각자 전날 지정 받은 자신의 말에 올라타, 다시 한 번 전체 참가자와 말 그리고 마차와 시스템이 움직이는 리허설을 진행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실전이라는 것 때문인지, 더 이상 잘 가꿔진 승마장이 아닌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를 달려서인지 다들 전날보다 더 긴장한 모습이었습니다. 몇몇 학생은 전날보다 더 말을 다루기 힘들어하기도 했습니다. 이어진 승마 교관 선생님들의 불같은 꾸중은 덤이었고요.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장면을 우리가 만들다니...

'평화의 파발마' 퍼레이드에서 몽골 참가자들이 통일대교 옆 들판을 질주하고 있다.
 '평화의 파발마' 퍼레이드에서 몽골 참가자들이 통일대교 옆 들판을 질주하고 있다.
ⓒ 민족화해위원회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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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퍼레이드 행렬의 맨 앞에는 참가자 두 명이 작은 말 포니를 타고, 긴 대나무에 매단 '불어라 평화의 바람' 깃발을 든 말 탄 기수는 대오의 양쪽 끝에 위치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가운데 백마 세 마리가 선두를 잡았고, 코끼리만한 검정말이 끄는 큰 마차와 신데렐라 마차 그리고 수송 마차 등 세 대의 마차가 무게 중심을 잡아줬습니다.

이어 포니에 탑승한 친구들이 열을 맞춰 따르고 그 뒤는 큰 말을 탄 친구들이 따랐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두 명이나 네 명이 탄 자전거가 행렬의 끝을 장식했습니다. 자동차와 트럭, 버스 등 '기계'가 달리는 길을 가장 생태적인 동력으로, 느릿하지만 평화로운 풍경을 만들며 통일대교를 향해 평화의 말발굽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말 퍼레이드 장면을 우리가 만들다니...' 스스로를 대견해 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평화의 친구들은 말고삐를 힘껏 틀어쥐고 대오를 따라갑니다.

퍼레이드의 출발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문제는 작은 말인 포니였습니다. 긴장한 탑승자가 문제였는지, 아니면 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포니들이 문제였는지, 포니들의 행렬은 정리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안전요원으로 참여한 스태프 선생님들이나 말 전문가들이 포니를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힘겹게 열을 맞출 때도 있었습니다. 탑승자도, 안전요원도 쉽지 않은 출발이었습니다.

그래도 행렬이 마정초등학교 앞의 좁은 마을길을 벗어나 통일대교 앞 대로로 접어들면서, 포니들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습니다. 몇몇 친구들은 "포니가 드디어 잠에서 깨어났다"며 포니의 게으름을 탓하기도 했습니다. 포니들의 대열은 새로이 줄을 맞추기 시작했고, 계속 뒤처지는 일부 포니를 제외하고는 깔끔한 대열이 완성됐습니다. 이를 위해 기승자인 '평화의 친구'들의 용감한 도전과 안전요원들의 세심한 노력이 있었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 곳을 코 앞에 두고... 안타까운 통일대교 U턴

대로로 진출한 퍼레이드 행렬은, 약간의 경사를 오르내리며 행진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들은 멈춰서야 했습니다. 우리의 행진을 막은 바리케이드 앞에서 말입니다. 더 이상의 행진은 불가능했고, 말들은 머리를 돌려야 했습니다. 그곳은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기 시작하는 통일대교였습니다. 당초 통일대교를 건너는 것을 퍼레이드의 시작으로 계획한 적도 있었으나 아쉽게도 우리는 이곳에서 말머리를 돌려야 했습니다. 좀 더 DMZ와 가까운 곳까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파발마를 몰 수 없었던 우리들은 마음 속으로 '언젠가;를 기약하며 퍼레이드의 종착지, 평화누리 옆의 너른 공터로 도착했습니다.

크라잉넛의 <말달리자>가 울려 퍼지는 평화누리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들을 참가자의 부모님들이 박수로 맞아주셨습니다. 참가자들이 멋있게 말을 타고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평화누리 주차장에 나와 계셨던 것이지요. 환영을 받으며, 주차장 전체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평화의 파발마' 퍼레이드가 마무리됐습니다. 행진으로 지친 친구들은 미리 준비된 시원한 얼음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고, 몇몇 말을 타지 못한 친구들은 교관 선생님들과 함께 말을 타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 몽골 출신 교관 선생님들의 마상쇼가 펼쳐졌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타기도 힘든 말 위에서, 한 사람을 어깨 위에 얹고 달리는 등의 묘기를 봤습니다.

자전거 바퀴 굴려 찾으러 간 평화

'평화의 바퀴' 행사 모습. 2004년 'DMZ Story' 대장이었던 전재명 기획위원이 중간 행렬을 이끌고 있다.
 '평화의 바퀴' 행사 모습. 2004년 'DMZ Story' 대장이었던 전재명 기획위원이 중간 행렬을 이끌고 있다.
ⓒ 민족화해위원회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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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자전거 타고 찾으러 간 평화입니다. 캠프 5일 차에는 모두가 기대하던 자전거 대행진, '평화의 바퀴'가 진행됐습니다.

평화의 친구들은 철원전망대에서 '평화의 바퀴' 자전거 대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체력이나 숙련도 차이를 고려해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외국인으로 조를 분리해 행진했습니다. 네 조는 철원전망대에서 출발해 월정리역, 근대문화유적센터를 거쳐 철원 노동당사에서 행진을 마무리했습니다. 전체 9km의 구간을 자전거로 이동했습니다.

모두들 각자 한 대씩 자신의 자전거를 선택한 뒤, 조별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인근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오랜 옛날 화산 폭발로 인해 만들어진 너른 평야가 있는 철원은 자전거 타기에 안성맞춤인 지역이었습니다. 모두들 평소에 자전거 좀 타본 경력이 있는 친구들인지, 출발을 기다리는 얼굴들이 기대와 흥분에 차 있는 듯했습니다. 대규모 인원이 한 번에 이동하는 지라 가끔씩 멈추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적당한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마음껏 드넓은 철원 평야를 달렸습니다.

날씨는 걷는다 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만큼 좋았습니다. 전날에는 천둥 번개가 쳐서 자전거 행진을 준비하는 우리를 걱정스럽게 했지만, 덕분에 오히려 해가 쨍쨍하지도 그렇다고 비가 오지도 않는 적당한 날씨가 됐습니다. 평야 지역답게, 사방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더해져 완벽한 날씨가 된 것이죠. 이렇게 완벽한 상황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그야말로 금상첨화! 모두들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지, 오히려 안전을 위해 속도를 늦추는 것에 불만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자전거 대행진' 과정에서 총 두 차례 중간 휴식을 취했습니다. 첫 번째 휴식지는 달리고 싶은 철마가 포탄에 다쳐 60여 년째 멈춰있는 곳, 월정리역이었습니다. 두 번째 휴식지는 근대문화유적센터였습니다. 철원이 한국전쟁 이전, 상당히 부유했음을 보여주는 은행 건물, 얼음 창고 유적 등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부유한 도시의 흔적이,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됐음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종착지는 철원 노동당사. 한국전쟁의 격전지 중 하나인 노동당사는 지금까지도 총탄의 흔적 등 격전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평화의 친구들은 중간 휴식지에서, 철원과 관련된 한국전쟁의 역사를 알 수 있었습니다.

뭇 생명들과 함께 달리다

우리가 자전거를 타면서 사방에 볼 수 있었던 것은 넓은 논이었습니다. 철원 평야의 쌀 생산량은 강원도 전체 쌀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쌀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기에, 그렇게 논을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이지요. DMZ와 논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습지라는 사실입니다. 논 또한 연중 대부분 물이 차 있는 훌륭한 습지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자전거를 타면서 논에 찾아온 백로나 왜가리 등의 물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 물새들을 보면서, 논의, 농업의 생태적 가치에 대해 평화의 친구들이 어렴풋이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자전거 대행진'에서 찾을 수 있는 생태적 가치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이동 수단은 자전거. 자전거는 단순히 레저 도구가 아닌, 어엿한 이동수단입니다. 에너지라고는 우리가 먹은 음식물을 소비하는 것뿐이고, 배출하는 공해(?)라고는 우리가 흘린 땀뿐인 생태적 이동수단 자전거. 9km의 거리를 자전거로 순식간에 달리면서 평화의 친구들이 자전거의 가치 또한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동당사에서 '자전거 대행진'을 마무리한 뒤, 우리는 식당으로 이동해 맛있는 산채비빔밥을 먹었습니다. 즐거운 자전거 행진을 마무리한 뒤여서인지, 모두들 맛있게 먹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탑승해서는 모두들 곯아떨어졌지요.

걸으며, 땀 흘리며 느낀 평화

두타연 도보 행진 도중, 고등학생 참가자가 초등학생 참가자를 부축하며 함께 걷고 있다.
 두타연 도보 행진 도중, 고등학생 참가자가 초등학생 참가자를 부축하며 함께 걷고 있다.
ⓒ 민족화해위원회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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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도보 행진에 함께하며 느낀 평화입니다. 2004년 초등학생이었던 제가 걸었던 두타연을, 이날 다시 한 번 걸었습니다.

이날 기상 시각은 오전 6시.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한 듯, 이름을 몇 번 부르는 정도로 눈을 뜨는 친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기 물건을 정리하고, 나갈 채비를 하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고요.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평화의 친구들입니다.

아침 식사 이후, 우리는 바로 두타연으로 출발했습니다. 두타연은 강원도 양구에 있는 계곡으로 민간인 통제구역에 포함됩니다. 두타연은 한국전쟁 당시 여러 차례의 격전으로 인해, 모든 산림이 불타 폐허가 됐습니다. 이후 59년의 세월을 지내며, 전쟁으로 인해 잿더미가 된 계곡은 다시 나무들이 자라났습니다.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숲이기에, 현재 두타연 계곡의 숲은 원시림의 형태였습니다. 아름드리 나무가 듬성듬성 있는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숲과 달리, 두타연은 어린 나무들이 빽빽이 자라고 있어, 마치 밀림과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두타연의 계곡물은, 내금강에서 발원하여 DMZ를 통해 흘러 내려오는 물이기에, 상당히 맑아 특급수에 해당됩니다. 매우 맑은 물에서만 서식한다는 열목어의 국내 최대 서식지가 두타연이라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걷고 있는 길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을 보며, 우리는 당장이라도 계곡물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몇 번이고 했습니다.

'2012 세계평화의 바람' 캠프 동안 여러 차례의 도보 행진이 있었다. 사진은 연천 임진강변 도보 장면
 '2012 세계평화의 바람' 캠프 동안 여러 차례의 도보 행진이 있었다. 사진은 연천 임진강변 도보 장면
ⓒ 민족화해위원회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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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두타연 계곡물에 몸을 담글 수 없었습니다. 밀림과 같은 두타연의 숲에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사방에 아직 제거하지 못한 지뢰가 많이 남아있다는 경고 때문이었지요. 계곡물에도, 플라스틱 지뢰나 목함 지뢰가 떠내려 오는 경우가 있어 함부로 들어갈 경우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을 보면서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걸으면서 여러 풍경을 마주했습니다. 밀림과 계곡은 자연 그대로의 평화를 보여주는 듯했지만, 훈련을 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도 많이 보여서 이곳이 군사 지역이라는 사실이 확연히 느껴졌습니다. 또한 길을 제외하고는 지뢰지대임을 표시하는 철조망과 지뢰 표지판을 보며 긴장하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군사적 긴장 사이의 모순을, 평화의 친구들도 함께 느꼈을 것입니다.

평화의 친구들은 처음에는 숲 사이에 난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우거진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전날 걸었던 화천 산소길처럼 시원한 환경을 만들어줬습니다. 계곡을 건너는 동안에는 잠깐 발을 담글 수 있는 징검다리도 놓여 있었습니다. 다들 그 동안 걷느라 발에 쌓인 피로를 맑고 시원한 계곡물로 씻어냈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번 계곡을 건너기 위해 줄로 연결된 출렁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바닥이 보이도록 투명한 창을 대놓은 다리도 건넜습니다. 어린 친구들은 두 다리 모두 많이 무서워하더군요.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친구들

얼마 지나고 난 뒤, 우리는 숲길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로 나오면서, 계곡물도 멀어지고,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도 드문드문 멀어졌습니다. 훨씬 더워진 날씨 탓에 많은 친구들이 힘들어했습니다. 몇 년 전, 지금과는 달리 대부분이 좁은 숲길이었던 두타연을 와 본 저는 이곳의 변한 모습이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지만, 자연 그대로의 숲을 느낄 수 있었던 당시에 비해 약간은 퇴색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더운 날씨, 강한 햇볕 때문에 힘들었지만, 평화의 친구들은 열심히 걸었습니다. 대체로 평지였던 2일 차의 도보 행진이나, 완전히 산길이었던 3일 차의 평화누리길과는 달리, 어느 정도 경사가 있는 도로를 10km 남짓 걷는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함께 걸은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의욕을 돋우기 위해 "이번 고개만 넘으면 끝난다" "이 코너만 돌고 밥 먹자" 등의 거짓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점심 식사는 길 위에서 해결했습니다. 대로로 나와 걸은 지 30분 정도 지났을 때, 걷고 있는 우리들 옆을 지나는 밥차의 모습에 우리는 열광했습니다. 햇볕만 막을 수 있는 천막 아래서, 흙바닥 위에 식판을 놓고 밥을 먹어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었지만요. 하지만 배고팠던 우리들은 열심히, 그리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부른 배를 두들기며 잠시 쉰 다음, 평화의 친구들은 다시 길 위에 섰습니다. 앞으로 걸어야 할 거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시원한 이온 음료 한 병씩을 들고,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점심식사 후에 걸은 길은, 지금까지의 길보다 더욱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지칠 때 쯤 '무슨 간식이 먹고 싶냐'는 질문에 평화의 친구들 사이에서는 팥빙수가 먹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잠시 후, 오르던 고개 꼭대기에 밥차가 나타나고, 팥빙수가 우리 손에 쥐어졌습니다. 팥빙수 한 그릇씩 받아든 친구들의 표정은 마치 이곳이 천국인 것처럼 평화로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기대하던 것이 성취됐을 때의 기쁨,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사소한 행복이 바로 평화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게 평화의 친구들의 두타연 도보 행진은 마무리됐습니다. 생명이 살아 숨쉬지만, 아직 전쟁의 위험이 살아있는 곳, 두타연. 이곳을 걸으며, 평화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의 걸음, 평화를 향한 노력의 일부지만

'2012 세계평화의 바람' 참가자들
 '2012 세계평화의 바람' 참가자들
ⓒ 민족화해위원회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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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의 저와 비슷한 아이들부터 지금의 제 또래들까지, 많은 국내 및 외국 친구들과 함께하며 평화를 찾고 느꼈습니다. 걸으며 평화를 염원한 8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저와 함께한 많은 친구들은 말을 타고, 자전거를 타고, 함께 걸으며 평화를 찾았습니다.

2013년은 한국전쟁이 잠시 멈춰진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8년 전에도, 이번에도 우리가 평화를 위해 노력한 것은 60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행한 노력에 작은 돌 하나를 얹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평화가 우리에게 올 때까지의 무수한 노력의 돌멩이들이 하나하나 모인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평화를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우리에게 올 날도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덧붙이는 글 | 좀 더 자세한 내용은 <2012 세계평화의 바람> 홈페이지(http://windofpeace.net/bbs/)와 네이버 카페(http://cafe.naver.com/windofpeace)를 참고해주세요.



태그:#DMZ, #평화, #평화의 바람, #천주교,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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