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산들이 품고 있는 마을의 모습
▲ 촨디샤 마을 산들이 품고 있는 마을의 모습
ⓒ 최민성

관련사진보기


4박 5일의 일정 중 넷째 날이 밝았다. 아침을 스차하이 인근의 식당에서 먹었다. 노신(루쉰)이 즐겨 들리던 식당이라니 연원이 오래된 곳이었으나, 노신과 관련된 장식은 특별히 없었고 오히려 공산당 간부들의 기념물들이 눈에 띄는 곳이었다.

오늘은 밥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북경 서북쪽 오지에 있는 촨디샤(爨底下·찬저하) 마을에 가는 날이다. 오지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힘들겠지만, 문명을 벗어나 있다는 것이 역사와 전통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촨디샤 마을이야말로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별 볼일 없는 산골에 있는 씨족 부락이라, 수도에서 아주 멀지 않는 촌락이건만 전란의 고통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명나라 이후의 고택들이 거의 원형에 가깝게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다.

오래된 것은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버텨줬다는 것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촨디샤를 살피면서 계속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름다웠다. 아내의 말처럼 개개의 건물은 우리나라 고택들의 아름다움에 못 미쳤다. 하지만 아늑한 풍수 속에 간직된 옛것의 집합체가 풍기는 기가 만만치 않았다.

촨디샤를 보면서 자연스레 안동의 하회마을을 떠올리게 되는데, 안동의 고택들이 이 정도의 규모로만 남아있었어도 세계적인 유산이 될 수 있었으리란 안타까움 같은 것이 밀려올라왔다. 안동 고택에 두어 번 묵으면서 고택의 주인들로부터 안동의 고택들이 어떻게 사라져갔는지를 들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안동댐이 들어서면서 하회마을 같은 것이 50여 개가 사라졌단다. 50개의 하회마을이라... 그것이 보존됐을 때 우리가 안동에 가서 맛볼 수 있었을 전통적 미학의 향연을 떠올려 보라. 아쉽고도 아쉬운 것이다. 그래서 여행에 있어서는 진보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을 천천히 돌면서 거기 사는 주민의 설명을 들은 후,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앞산에 올라 주변 산수와 함께 마을을 살펴볼 수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촨디샤, 그 옛것의 집합체가 품는 아름다움을 보시라.

옛것의 아름다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촨'자가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는 골목의 그림. 한자가 곧 그림의 글자라는 걸 이보다 잘 보여줄 수 있을까.
▲ '촨'이라는 한자의 의미 '촨'자가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는 골목의 그림. 한자가 곧 그림의 글자라는 걸 이보다 잘 보여줄 수 있을까.
ⓒ 최민성

관련사진보기


살아남을 만하다. 그 공간이여...
▲ 촨디샤 마을 살아남을 만하다. 그 공간이여...
ⓒ 최민성

관련사진보기



앞산 중턱에서 바라본 모습
▲ 촨디샤 마을 앞산 중턱에서 바라본 모습
ⓒ 최민성

관련사진보기


산을 오르내리면서 다양한 모습의 촨디샤를 감상할 수 있다.
▲ 촨디샤 마을 산을 오르내리면서 다양한 모습의 촨디샤를 감상할 수 있다.
ⓒ 최민성

관련사진보기


중국 전통 가옥의 특징인 사합원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는 풍경이다.
▲ 촨디샤 마을 전통 가옥을 위에서 본 모습 중국 전통 가옥의 특징인 사합원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는 풍경이다.
ⓒ 최민성

관련사진보기


뒷산을 걷는 즐거움은 여기나 거기나 마찬가지.
▲ 뒷산을 걸어 내려오는 둘째 딸의 뒷모습 뒷산을 걷는 즐거움은 여기나 거기나 마찬가지.
ⓒ 최민성

관련사진보기


촨디샤의 민박집이 마지막 숙소인 것은 절묘한 기획이었다. 내몽고의 거친 숙소와 북경의 안온한 호텔의 합이요, 그것을 뛰어넘는 경험의 실체였다. 깨끗하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정겨우면서도 낯선 중국의 전통가옥에서의 식사와 잠자리는 행복했다.

3박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의미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는 정이 생겼다. 사합원 가운데 마당에서 마지막 저녁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우리가 되었고 건배를 시원하게 제안하게 됐다.

양꼬치에 음주가무... "잘한다"

이분들이 풀어놓은 우리 라면은 아이들의 열렬한 환호를 끌어냈다.
▲ 건배를 제안하는 찬래네 가족 이분들이 풀어놓은 우리 라면은 아이들의 열렬한 환호를 끌어냈다.
ⓒ 최민성

관련사진보기


후퉁거리에서 산 빨간색 치파오를 입고 있는 둘째 딸
▲ 후퉁에서 산 치파오를 입고 저녁을 먹는 둘째와 모자를 쓴 첫째 후퉁거리에서 산 빨간색 치파오를 입고 있는 둘째 딸
ⓒ 최민성

관련사진보기


말하지 않아도 며칠새 우리는 중국의 문화에 깊이 젖어들어 있었다. 민박집(중국식으로 객잔) 아저씨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음식을 시키고, 시장에서 산 물건으로 스스로를 꾸미면서, 여행지의 문화적 속살을 만끽했다.

그날 밤 저녁식사 후 양꼬치 만찬이 벌어졌다. 양꼬치 식사는 우리가 머무르지 않는 다른 민박집에서 준비했다. 두 개의 민박을 빌린 우리는 이 집까지 세 개의 민박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셈이었다. 기획자가 되도록 마을 전체에 도움이 되도록 배려한 것이다.

동네 아저씨가 정성껏 구워주는 양꼬치를 먹으며 연경(옌징) 맥주(북경의 옛 이름이 연경이어서 붙은 이름, 춘추전국시대 북경 지역은 연나라 땅이었다)를 들이키면서 우리 일행은 마지막 밤을 보냈다. 한국 사람치고 음주가 있는데 가무가 없을쏘냐. 중국인 기사 아저씨부터 시작해서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한 가락씩을 뽑았다. 민박집 아저씨는 '헌하오(잘한다)'를 외치며 고기를 굽고...

수백 년 된 돌담길 옆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며 어우러진 이 경험이야말로 촨디샤의 풍경만큼이나 잊지 못할 것이었다. 술이 약한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가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민박집 주인들이 잠들 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 불이 다 꺼진 다음에도 어떻게든 술을 구해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즐거운 밤을 보냈다. 촨디샤를 그것답게 해주는 지형의 안온함이 우리를 더욱 편안한 음주가무의 세계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공정여행족, 현지 문화에 젖어들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돌아가야 하는 날이다. 떠날 때는 참 길어 보이는 날이지만 여행지에서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 돼버린다. 북경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마지막으로 북경 도매 시장에 들러 쇼핑을 하고 그곳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우리로 따지면 딱 남대문 시장 격인 곳이었다. 싸디싼 진짜 '중국산' 제품들이 넘쳐났다. 쇼핑을 해도 여행사와 계약된 특정한 상점에 들르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중국 사람들이 애용하는 도매시장에 가는 게 공정여행이다.

돌아보면 공정여행이란 여행지의 실체를 만나는 여행이다. 어렵게 공정성을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중국의 실체는 OOO 호텔 체인점에 있지 않고 촨디샤 객잔에 있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팔달령 만리장성에 있지 않고 잔장성에 있을 것이다. 이미 글로벌화된 식당의 음식에 있지 않고, 중국 가정에서 먹는 음식에 있을 것이다. 닳아버린 종업원이 서빙하는 곳에 있지 않고, 우리 아이들이 정을 나눌 수 있는 현지인들과 함께하는 곳에 있을 것이다.

타인을 둘러보고 더욱 타자화하는 여행이 아니라, 내면으로 공감하며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여행. 모든 여행이 공정여행일 수는 없겠고 또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공정여행이 다양한 여행의 방법 중 중요한 것으로 부상하길 기대해본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가까워지지 않을까.


태그:#공정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