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1월 12일 서울청계광장에서 대학을 거부하는 '투명가방끈 모임'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 12일 서울청계광장에서 대학을 거부하는 '투명가방끈 모임'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투명가방끈

관련사진보기


작년 11월, 단국대학교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김서린(24)씨는 졸업을 앞 둔 마지막 학기에 대학교정을 뛰쳐나왔다. 경쟁과 스펙만을 강요하는 대학교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김씨는 스스로 대학을 거부하면서 현재의 취업 위주의 대학교육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졸업을 하면 더 이상 문제를 말할 수 없기 때문에 4학년 자퇴라는 어려운 선택을 했다.

김서린씨는 대학생활을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검도 동아리부터 시작해서 교내 아나운서와 토론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학년이 바뀌면서 학교 분위기는 점점 달라졌다. 대학교 내 활동도 스스로가 원해서 하기보다는 스펙의 일부분으로 생각하는 현상이 많아졌다. 김씨가 있었던 동아리의 신입부원 수도 줄어들었다. 신입생들은 검도부 같은 운동 동아리보다는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동아리를 선호했다. 김씨는 "모든 대학생활이 취업 앞에 무가치하게 됐다"고 표현했다.

'취업' 앞에 대학 대학생활이 무너졌다

김서린씨는 학교를 그만둔 이후 대학을 거부하는 '투명가방끈'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는 작년 10월 서울대를 자퇴한 유윤종(23)씨를 포함한 대학을 자퇴한 사람들과 대학입시 자체를 거부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이 근본적으로 사회에 요구하는 것은 학벌주의의 철폐다. 더 나아가 스펙 위주의 대학교육 개선과 대학 미진학자에 대한 인권존중 등을 주장한다.

투명가방끈의 회원인 김어쓰(19. 닉네임)씨는 작년 대학입학을 거부했다. 김씨는 3년 전에 다니던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강압적인 학교생활과 대학입시만 우선시 하는 교육에 견딜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자퇴 후 대안학교에 잠시 다녔지만 대학교 진학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김씨는 "대학 거부로 대학입시를 강요하는 세태를 지적하고 싶다"며 "대학을 가지 않아도 하나의 인간으로써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김씨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은 여러모로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학력이 필요 없는 단순한 아르바이트에서도 고졸자는 불리하게 적용된다"고 말했다.

같은 단체 회원인 김해솔(18)씨는 조금 다른 생각을 밝혔다. 김씨는 "지난 11월에 대학거부선언을 했지만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며 "투명가방끈은 대학을 거부하는 것보다 대학입시 거부에 더 무게를 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은 대학 미진학자나 지방대 자퇴생 보다 명문대 자퇴생에 더 관심이 있다"며 "정작 우리가 말하는 학벌철폐에 주는 관심보다 왜 명문대생이 자퇴를 했을까에 관심을 더 둔다"고 했다.

김씨는 덧붙여서 "기성세대들이 대학거부자에 대해 관심의 순위를 나누는 것도 어떻게 보면 학벌주의의 연장선"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월 중순, 20대 대학생 50명과 고졸자 50명에게 대학과 스펙에 대해서 직접 의견을 물어봤다. 대학생 중 66%는 '스펙에 도움이 되는 수업이나 동아리를 찾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들 중 34%는 '기대했던 대학교육과 많이 다르다, 취업학원에 다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대학생 52%가 대학교육의 개선의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 11월 1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학을 거부하는 '투명가방끈 모임'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 1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학을 거부하는 '투명가방끈 모임'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투명가방끈

관련사진보기

고졸자가 대학에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금전적 사정, 교육의 문제, 개인 사정 등 여러 가지였다. 그들 중 62%는 학력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 업무 채용이나 근무 중에서 학력상 차별을 받은적이 있다고 말했다. 고졸자를 위한 사회제도개선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88%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투명가방끈'은 앞으로 고교 대학입시 현수막 철폐 운동, 내년 선거 때 후보 학력기재 반대 운동 등을 할 예정이다. 그러나 쉽지는 않다.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들의 무관심이다. 김어쓰 씨는 11월이 지나면서 세간의 관심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또 김해솔 씨는 "주변사람들의 반대도 어려움 중 하나다."고 말했다. "몇몇 사람이 닉네임을 쓰는 이유도 만약 본명이 언론에 공개되면 그들의 부모님이 극구 반대하는 등,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강수돌 고려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대학을 거부하는 현상에 대해 '마침내 올 것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양심적인 교수들은 대학의 이런 문제들을 알고 있었다"며 "대학은 진리탐구의 전당으로부터 멀어진 지 오래다"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오늘날 대학이 교육을 통한 돈벌이를 추구하는 것이 문제"라며 "대학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일, 이것을 우리 모두의 사회적 과제로 끌어안는 일이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대학교를 나와야 해... 나중에 후회할거야"

대학과 대입 거부자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거냐"는 걱정을 종종 받는다. 김해솔씨는 특히 고등학생들의 반발이 심하다고 밝혔다. 김씨는 "너희들이 그렇게 잘났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심지어 "너희가 대학을 포기했기 때문에 경쟁률이 줄어서 좋다"라는 냉소적인 시선을 받기도 했다.

대학 입시를 거부하는 김해솔(18)씨.
 대학 입시를 거부하는 김해솔(18)씨.
ⓒ 투명가방끈

관련사진보기

김씨의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요즘은 부모님이 별 말씀 하지 않으시지만 예전에는 많은 다툼이 있었다"며 "심지어는 부모님한테 인생을 포기했냐고 들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서린씨도 마찬가지다. 김씨의 쌍둥이 여동생은 "언니 마음 아는데 그래도 대학을 나와야 해. 나중에 후회할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주변 사람 중에서는 나와는 상관없다는 투로 받아들인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사회에서 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전교조를 포함하여 각 교육계 사람들은 학교 교육의 개선에 긍정을 하면서도 이들의 운동에 무관심한 편이다. 몇몇 사람들은 너무 부정적인 운동이 아니냐는 질타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심지어는 투명가방끈 회원 같이 대학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낙오자로 보기도 한다.

그런 시선에 대해 김어쓰씨는 스스로 많이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가장 큰 불안은 미래를 예측할 수가 없는 점이라고 했다. 김씨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이라 미래가 걱정 되는 경우가 많다"며 "과연 10년 후에도 내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곤 한다"고 했다. 장래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당장 생계문제도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 지금은 불안하다고 생각하지만 대학을 거부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서린씨는 "비록 쉽지 않은 길이지만 누군가 닦아 놓은 길에서 나에게 맞지 않은 가로등이 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는 손전등이 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태그:#대학거부선언, #대학입시거부, #대학거부, #유윤종, #김서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