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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안 마을에서 목회하는 이적 목사
▲ 이적 목사 민통선 안 마을에서 목회하는 이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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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크리스마스의 전날 12월 24일 민통선 안에 있는 평화교회의 이적 목사를 만났다.

그는 <애기봉 성탄 불빛은 꺼져야 한다>는 글을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목사다. 기독교의 목사가 성탄 불빛을 끄라니,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목사는 "애기봉 등탑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니다. 정권 안보용 불빛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월 23일 벌어진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우리 군은 국제사회와 국민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12월 20일 연평도 사격 훈련을 재개했고, 그 이튿날인 12월 21일에는 개성에서도 보인다는 민통선 근처 애기봉 등탑에 불을 밝혔다. 2004년 장성급 회담에서 선전활동을 중단하기로 합의하면서 애기봉 등탑은 그동안 불이 꺼져 있었다.

북한은 애기봉 등탑 점등에 대해 지난 20일 "대형전광판에 의한 심리모략전이 새로운 무장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망동"이라며 "북남 사이에 첨예한 긴장 국면이 조성되고 있는 속에서 상대를 자극하는 도발이 무력충돌과 전면전의 발화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애기봉 등탑불은 정권 안보용 불빛... 즉각 중단해야"

저녁 6시 20에 불켜진 등탑
▲ 불이 켜진 애기봉 등탑 저녁 6시 20에 불켜진 등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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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연평도 사격훈련과 21일 애기봉 등탑 점등식이 무사히(?) 끝나고 난 24일, 정부는 애초 26일로 예정했던 애기봉 등탑불을 2주 더 연장해 북한의 김정은 생일인 내년 1월 8일까지 켜놓기로 했다. 종교계의 요구를 받아들인 거란다.

이적 목사는 "정말 크리스마스 트리라면 성탄절까지만 켜놓아야지, 더 연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김정은 생일이 예수님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때까지 켜놓겠다는 건인가? 북한을 더욱 자극하고 도발하기 위한 것 아닌가"라고 의구심을 표했다. 그는 점등식이 있던 21일에도 반대시위를 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신자 400명이 애기봉 점등식장에 있었다. 북의 공격이 예상되는 작전 지역에 민간인 400명을 불러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북이 공격을 했다면 어떻게 됐겠나? 상당수의 민간인이 희생됐을 것이고, 남한은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북한을 완전히 초토화시켰을 것 아닌가? 생각할수록 섬짓하다. 내가 기독교 목사인데, 왜 평화로운 트리를 반대하겠나? 애기봉 등탑은 평화의 트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확성기 방송 중단하니 주민들이 꿀잠을 잤다

이적 목사는 1997년부터 민통선 내의 용강리 마을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한강 하구 드넓은 평야가 있는 곳, 북한으로부터 불과 2km 밖에 안 떨어진 곳이다. 철조망 너머, 강 건너 북한 땅이 보이는 곳. 애기봉 점등식 날 옆마을 조강리에서는 대피방송이라도 있었지만, 용강리는 그나마 대피방송도 없었단다. 애기봉에 올라가있던 순복음 교회 교인들과 함께 용강리 60가구도 사실상 '인질'이 되었던 셈이다.

이적 목사는 2004년 선전활동이 중단되던 그 밤을 기억하고 있었다.

"북에서도 대남방송을 하고 남에서도 대북방송을 하잖아요. 우리 마을에 있는 확성기가 20개짜리였는데, 바람이 북에서 남으로 불 때면, 그 소리가 북쪽으로 안가고 우리 동네를 덮쳐버려요. 이래 버리면 동네 자체가 거의 아수라장이야. 왕왕왕왕.... 귀가 시끄러워가지고 아무 일을 못한다고. 그런 식으로 살다가 2004년 이후에 방송이 중단된다고 하니까, 얼마나 반갑던지.

그날 밤 우리 신자들하고 철조망까지 가서 양측에서 오가는 선전방송들을 들었죠. 다른 때는 비방방송을 했지만 그 즈음에는 남북화해 분위기도 있고 해서 음악만 나오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자정을 기해서 뚝 끊긴 거예요. 교인들과 그 밤에 철조망에서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6년 7개월이에요. 정말 그동안에는 꿀잠을 잤어요, 단잠. 그것이 평화 아닙니까? 그런데, 이번에 애기봉 등탑에 점등하고, 확성기도 틀게 되면 민통선 안 우리 마을은 완전히 완전히 아수라장되는 거지요."

애기봉 바로 밑 조강리 마을에서 본 등탑
▲ 멀리서 본 애기봉 등탑 애기봉 바로 밑 조강리 마을에서 본 등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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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까지 개방하는 애기봉 전망대에는 무척 춥고 을씨년스러운 날씨라 그런지 십수 명의 관광객만 보였다. 등탑 옆에 모래주머니로 어설프게 쌓여 있는 방호벽(?)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북의 공격에서 관광객들을 지켜줄 수 있을까?

날이 어두워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애기봉 등탑에는 불이 들어왔다. 내 눈에도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따뜻한 불빛이 아니라, 조용한 시골마을 밤하늘에 빛나는 보석 같은 별빛을 훼방놓는 싸구려 반짝이로 보였다.

연평도 주민들이 평화롭던 일상을 빼앗기고, 이제 김포의 민통선 마을이 또 평화롭던 일상을 빼앗기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대결정책이 지속되는 한 언제 전쟁의 참화에 휩쓸릴지 모른다는 그 불안함은 연평도 주민에서 김포 시민으로, 수도권 전체로 퍼져나갈 것이다. 이적 목사는 애기봉 등탑 불빛이 연장되는 것에 항의하며 지역 시민단체와 함께 27일에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라고 했다.

덧붙이는 글 | 통일뉴스에도 보낼 예정입니다.



태그:#애기봉, #등탑, #이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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