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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공화국 하이델베르크
 정신의 공화국 하이델베르크
ⓒ 신인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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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곳적에 자연이 만든 강을 몇 년 안에 뒤집어엎는 나라, 수도권이나 몇몇 대도시에 전 인구의 반 이상이 모여 사는 나라, 집을 짓기 전에 재개발부터 염두에 두는 나라,
대학은 물론 그 모든 것을 1등부터 꼴등까지 순위 매기기를 즐기며 1등만 바라보고 사는 나라, 필요하다면 성형수술은 물론 영어 발음에 도움이 된다고 아이들 혀를 찟는 나라. 과연 이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이 물음에 구태여 답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거나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국토가 비좁다고 하면서도 서울로, 서울로 모여드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당연한 것일까? 도시가 발전하고, 선진국이 되려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일까? 힌트가 있다. 최근에 김덕영이 쓴 <정신의 공화국 하이델베르크>가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대한민국은 전 인구의 약 반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또한 전 인구의 반 가까이가 100만 이상의 거대도시에서 살고 있다.

반면 8천200만 인구를 가진 독일에서는 수도 베를린이 인구 340만으로 부산과 비슷하다. 100만 이상 인구를 가진 다른 도시도 함부르크(약 180만), 뮌헨(약 130만) 두 곳뿐으로 모두 인천보다 인구 규모가 훨씬 작다. 뿐만이 아니다. 전 인구의 70퍼센트 이상이 10만 이하의 작은 도시나 시골에 살고 있다.

잘못된 수치일까? 그렇지 않다면 한국의 기준으로 볼 때 독일인들 대부분은 지방의 아주 작은 도시나 시골에 사는 촌놈들일까? 그래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교육적으로 소외된 지역에서 살고 있는 걸까?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의 공주시와 인구가 비슷한 인구 14만의 하이델베르크만 보더라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이델베르크 인쇄기 회사와 같은 국제적인 기업들이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막스 플랑크 연구소들이 있다. 하이델베르크에 소재한 국립 암 연구센터의 하우젠 교수는 2008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를 상징하는 것은 하이델베르크 대학.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60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이다. 이 대학을 중심으로 기독교 칼뱅계(系) 개혁파 교회가 채택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나왔고, 독일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을 휩쓴 낭만주의의 중요한 무대가 됐다.

또 막스 베버와 같은 걸출한 학자들이 활약할 때는 전 세계로부터 많은 유학생들이 몰려들어 '세계촌락'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정신의 공화국'으로 불리기도 했다. 독일의 정신문화에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은 물론 독일의 자유주의 정치 문화를 이끄는 데에 크게 공헌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인구 14만의 하이델베르크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에는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재와 집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거기에 도시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럴 경우, 우리나라 상황에 빗대어 이야기하면 하이델베르크를 관통하는 네카어 강변에는 쏘가리, 송어, 향어 횟집에 매운탕집 식당들이 즐비하고 관광객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빼내기 위한 각종 숙박시설, 놀이시설이 즐비할 것 같다. 여기저기에 새로운 카페와 술집들이 들어서고 도시는 난개발에 늘 공사 중일 것 같다.

그러나 하이델베르크는 중세에도, 르네상스 시대에도, 바로크 시대에도, 사람들이 돈, 돈을 외치는 산업사회의 물결이 밀려왔을 때에도, 후기 산업사회 혹은 포스트모던 사회라고 불리는 오늘날에도 대학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구시가지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그 모습을 간직하며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김덕영은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이 독일에서는 '나눔의 미학'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먼저 독일은 국토 곳곳을 골고루 나누어 쓰며 모든 도시가 독일 역사의 주인공이며 경제, 문화적인 혜택을 나눠 갖는다. 그리고 하이델베르크는 자연과 인간이 도시를 나누어 쓰고, 전통과 현대가 도시를 나누어 쓰며 문화재와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다.

고성
 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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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에도 이 책은 컬러 사진들과 함께 도시의 이곳저곳을 살피며 유럽의 정신과 독일의 영혼을 보여주고 있다. 무려 300년이 넘는 학사주점이 지금도 영업을 하며 수많은 사상가와 시인과 예술가를 잉태한 곳. 바로 하이델베르크는 영원한 청춘의 도시이자 낭만의 도시이다. 그리고 그곳은 우리에게 메시지다.

우리에게 진정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인간 공동체의 삶이 무엇이고, 나눔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태그:#하이델베르크, #대학도시, #정신공화국, #독일, #김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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