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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은 지방선거를 치르는 날이다.

 

아마 이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짐작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손으로 지역 사회의 대표를 뽑는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고, 법적 임시휴일이라 보너스를 타는 듯한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을 테다.

 

그러나 나는 투표일이 마냥 기다려지진 않는다. 2010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난 중증 뇌병변장애를 가져 휠체어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증 뇌병변장애 가진 내가 치른 선거의 기억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1997년 대선 때는 투표권이 없었던 것 같고, 2002년에는 내가 살던 동네가 장애인과 수급권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영구임대 아파트촌인지라 투표를 위한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던 기억이 난다. 특히나 그때는 내 손으로 대통령을 처음으로 뽑는다는 설렘과 두근거림에, 엄마와 함께 투표장으로 가 기쁜 마음으로 투표를 했다.

 

그 당시에는 나도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장애는 내가 혼자 극복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기에 선거에 대한 나쁜 기억이 뚜렷이 없다. 선거 날이 오면 투표장 접근이 어렵다는 미명 하에 선거위원회에서 보내오는 부재자 투표를 신청해 집에서 투표를 하곤 했으니까.

 

그때만 해도 그랬다. '장애인의 삶'이란 어떤 목적을 가진 외출이든, 내가 외출을 하기 위해서는 자원봉사자가 필요했고, 차량이 필요했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 하나하나를 의식했기에 외출은 나에게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또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던 나에게 '장애운동'이 다가왔다. 내가 장애운동을 시작하기 전 장애운동의 이미지는 '폭력적인 일부 장애인이 거리나 지하철에서 벌이는 무서운 행위' 정도로 비쳐 거부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장애운동을 하게 되면서 내가 외출하기 힘들었던 것은 장애가 있는 내 몸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나의 외출 준비를 도와 줄 활동보조인이 없어서이고, 이 나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이용할 수 없게 만들어진 대중교통 체계가 문제라는 걸 말이다.

 

또 내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장애를 정상과 분리하고 '나쁜 것' 또는 '이상하고 신기한 것'으로 보는 그들이 문제라는 걸, 장애운동을 알며 실천하려고 하는 과정 속에 알게 됐다. 그리고 장애운동을 통해 자립생활을 실천하면서 내가 선택한 것이 무엇이든, 그에 따르는 결과는 반드시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장애인도 다르지 않다, 내 정치 의사를 표하는 방법은 투표!

 

이처럼 장애운동을 통해 자립생활을 알지 못했을 당시, 나는 왜 부재자 투표를 선택했을까? 이유를 대략적으로 정리해 보면,

 

㉠ 투표장은 휠체어로 접근하기 힘들다. 언덕을 올라 투표장에 가고, 그곳에 배치된 도우미 4~5명에 의해 휠체어를 들려 계단을 지나 투표장에 진입한다 해도 ㉡ 투표장 투표박스는 왜 그리 작게 만드는지. 내 몸이나 다름없는 내 휠체어 바퀴를 감당하지 못하고 투표박스 밖으로 밀어내버린다. ㉢ 간신히 투표박스에 몸을 구겨넣어 투표를 할라치면 후보자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 후보자를 마음 속으로 정했다 해도 ㉤ 도장을 찍어야 할 칸은 작고, 장애로 인해 손은 떨리고, 선택을 표시 할 칸은 좁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효표가 되기 십상이다. 지체장애를 가진 나도 후보자들을 가려내기가 이처럼 쉽지 않은데, 청각장애나 시각장애를 가지신 분들은 정보 얻기가 얼마나 더 힘들까.

 

심사숙고 끝에 공약을 따져 보고, 이처럼 어려운 투표 과정을 통해 내 의견이 모아져 지지하던 후보자가 당선되어 대표자가 되어도 내 삶은 그닥 많이 달라지지 않았던 경험,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2010지방선거장애인연대에 의하면 2006년에서 2009년 연말까지 민선4기 장애인 관련 분야는 공약 이행률이 86/38, 44.2%라고 한다. 그런 과정들이 반복 되다보니 투표하는 날이 두렵다.

 

나를 포함한 장애인대중들이 투표하는 날이 두렵게 다가오지 않으려면 어떤 대안이 필요 할까? 전체예산의 1%인 복지 예산으로 장애인 기준 도시 서울을 만든다든가, 공공기관 내 자동판매기 장애인 담당율을 확대하고 저소득 장애인 의료비 지원과 저소득 중증장애인 여행 지원을 약속한다든가 하는 단편적이고 허황된 공약이 아닌 현실적인 공약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정당과 후보자들의 장애 관련 공약의 반만이라도 이행된다면 장애인의 삶의 질은 지금의 수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장애인의 현실을 이해하고 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해 현실적인 공약을 내거는 정당도 있다.

 

결론은, 내가 이번 6월 2일에 해야 할 일은 나의 선거권을 포기해 장애인을 선거에만 이용하는 그런 정당이나, 자기들 마음대로 내 삶을 쥐락펴락 할 수 없도록 내와 생각이 일치하는 정당과 대표자를 찾아내 소중한 한 표를 던지는 것이라 이 말이다.


태그:#장애인,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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