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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님을 형님이라 부르지 못하니."

 

<홍길동전> 주인공 길동이의 명대사다. 불합리한 신분제도 때문에 절규하는 길동이의 외침이다.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길동이의 절규가 다시 등장했다면 믿겠는가.

 

이번 선거의 최대이슈는 친환경 무상급식. 친환경 무상급식이란 수업료·교과서 등을 전국민에게 의무로 지원해주는 것처럼 급식도 국가가 의무로 지원해야 한다는 적극적 복지개념의 정책이다. 사실 전국 1812개 학교가 이미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남 합천, 거창군수가 초·중·고 친환경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겠다며 추경예산을 편성했다.

 

지난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 같은 뉴스가 떴다. 또다시 비위생적, 그러니까 더럽게 집단급식을 운영한 학교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러한 현행 학교급식은 있는 집이나 없는 집이나 고개를 절래 흔든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누가 귀한 자식에게 싸구려 밥 먹이고 싶겠는가. 반대로 급식비 지원이란 명목으로 가난한 집 아이란 낙인 속에 공짜밥을 먹고 싶겠나. 가난한 집 아이에게도 자존심과 주변 눈치를 살피는 감수성이 풍부하다. 이렇게 현행 급식제도는 모든 계층에게 불만족스럽다. 대안은 '친환경 무상급식'으로 모아진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뜻있는 마을주민들이 현행 학교급식 개선과 '친환경 무상급식' 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지방선거에서 역할을 해 나가자며 모임을 가졌다. 모임에서는 주민들의 뜻을 모아 '친환경 무상급식' 정책을 구의원 후보들에게 전달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를 위해 주민들에게 이 주제를 알리고 서명을 받아 주민발의 형식으로 구의원 후보들에게 주민들의 뜻을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 활동은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선관위의 유권해석이 떨어졌다. 이 좋은 활동이 왜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나 물어보니 선거쟁점으로 부각된 정책에 대해 찬반을 이야기하는 서명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좋다. 그렇다면 선거법에 위반되지 않는 방법을 찾아보자. 그래서 우리가 찾아낸 방법은 찬반을 이야기하지 말고 '정책 자체를 소개만 하자'였다. 여당이 제시하는 '급식제도'와 '친환경 무상급식제도'의 차이점을 객관적으로 드러내어 주민들이 직접 선택하게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다시 선관위에 물어봤다. "안 된다." 왜? 이번 '무상급식' 주제에 대해 어떠한 캠페인도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을 거란다. 선거쟁점이기 때문이란다. 마찬가지로 4대강에 대한 찬반이나 캠페인도 선거법 위반이다. 선거쟁점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선거쟁점. 선거쟁점이면 활발하게 지역주민들도 공유하고 논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미 선거쟁점이 된 것이라면 누구나 공유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한 것인데 현행 선거법은 이런 것을 막고 있다. 호부호형을 막는 서자제도가 홍길동을 울렸다면 선거쟁점을 선거쟁점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현행 선거법이 우리들을 울렸다.

 

 

그럼 이제 뭐하지?

 

지방선거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다. 집에 갈까? 입 다물고 TV나 보다가 투표소만 나갈까? 휴.

 

선관위의 결정은 중립적이다. 중립적이어서 현실에서는 참 편파적이게 된다. 현실 자체는 이미 한 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인데 중립을 지키라며 가운데만 잡고 있으니 기울어진 저울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항상 기울어져있다. 선거는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니 너희들은 빠지라는 소리로 들린다. 우리 아버지의 말씀이 맞나보다.

 

악플보다 더 나쁜 무관심

 

선거쟁점을 이야기할 수 없다. 작년 강북시민연대에서 14명의 강북구 구의원들을 대상으로 서면으로 정책질의서를 보냈다. 답변을 준 구의원은 2명. 그 다음 정책질의서에 답변을 보낸 구의원은 1명. 나머지 12명의 구의원들은 뭐가 그리 바쁠까? 왜 주민들을 대신하여 던질 질문에 대해 아무런 댓글을 달아주지 않는 것일까? 악플(악성댓글)보다 더 나쁜 것이 무플(무반응)인데.

 

생각해보면 구의원들이 주민들을 쉽게 보는 거다. 자기들이 뭘 하는지 주민들이 관심을 쏟는 게 싫다. 어떻게 예산을 편성하는지 어떻게 예산이 집행되는지 물어보는 게 귀찮은 거다. 뭘 물어도 대꾸하지 않는 걸 보면 혹시나 구의원들도 구의회 일을 잘 모르는 건 아닐까. 다 우리 잘못이다. 구의원들의 버릇을 나쁘게 만든 건 우리들의 무관심이다.

 

그들도 처음엔 확실한 일꾼이라느니, 머슴이 되겠다느니, 발전 전문가라느니 하지 않았던가. 우리 같은 서민은 차마 하지 못하는 자기 자랑을 플래카드에 써서 붐비는 네거리에 덕지덕지 붙여놓지 않았던가. 그만큼 자신감 넘치고, 종으로 자기 신분을 낮추기까지 하는 겸손까지 겸비했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그건 우리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해서 그렇다. 늘 종처럼 부지런히 일하면서도 고개 숙이도록 상전 노릇을 해줬어야 했는데, 우리는 오히려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렸으니 버릇이 나빠졌다.

 

게다가 우리는 전문가라는 말에 너무 쉽게 속았다. 사실 경제 망친 건 경제 전문가지 우리 같은 서민인가. 우리나라 교육이 이 지경인 것은 전문가 때문이지 우리 자식들 때문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전문가 납시오' 하면 그만 고개를 떨어뜨린다. 그들만 알아듣는 무슨 전문용어 써가면서 말하면, 쉽게 호응하는 버릇을 버리자. 우리도 살림 전문가이고, 육아 전문가다. 우리 마을에도 전문가는 넘친다. 슈퍼마켓 전문가, 빵집 전문가, 집수리 전문가 등등. 식당은 한식, 일식, 중국식, 양식 등 종류별로 전문가들이 넘쳐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깨어있는 주민 1000명이 필요하다. 구의원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어떤 예산을 만들고 심사하고 있는지, 예산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직접 눈 뜨고 바라볼 수 있는 주민 1000명을 세워보자. 솔직히 너무 거창하다. 100명이라도 좋다. 주민들이 눈감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줄 주민 100명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친환경 무상급식' 정책을 알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이제 깨어있는 주민 1000명을 모으자는 결론에 닿았다. 구의원들에게 질문하고 그 답변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1000명의 주민이 있다면 구의원들이 무플로 주민들을 상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1000명의 주민들이 강북구의 의정을 감시하고 예산을 감시하고 구의원들의 활동을 감시한다면 우리가 사는 강북구는 더욱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마을로 바뀌게 될 것이다.

 

강북구 유권자 연대 공식 카페 http://cafe.daum.net/kangbukgu

덧붙이는 글 | 인수동 마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welife.org


태그:#지방선거, #유권자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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