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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의 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는 마감 뉴스를 듣고 잠이 들었다. 꿈에 신종플루가 현몽하였고 그의 일생을 돌아볼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네 몸이 그를 막아내려고 벌이는 다양한 초식들도 알게 되었으며, 의사이자 피부생리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요시포비치(Yosipovitch)와 후(Hu) 박사의 의견도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누렸다.

모든 고대국가들이 국경에 두터이 성을 쌓고 필요에 따라 성문을 열고 닫듯이, 인체의 모든 경계부위(피부, 구강, 비강, 인후두, 소화관, 장관, 질)도 마찬가지로, 이로운 것은 받아들이고, 해로운 것은 물리치고 있었기에 인체가 존속했으며, 이것이 바로 면역임을 꿈을 통해 알게 되었다.

소수의 고구려인이 다수의 말갈족을 용병삼아 당나라와의 접경에 배치하여 치안을 유지했듯이, 인체의 모든 경계에는 상재미생물들(normal flora)이 살고 있었으며, 용병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인체에는 100조 이상의 상재미생물이 살고 있으며, 피부(2제곱 평방미터)에는 1조 마리가 살고 있다고, 박사들이 말하는 순간, 마침표 크기 하나에 대한민국 인구수에 해당하는 수천만 마리가 켜켜이 둘러쳐져 있는 용병들이 보였다. 참으로 장관이었으며, 거기에 비하니 진시황의 기마상은 옹졸 그 자체이다.

김씨 집성촌에 다른 성씨가 들어가 살 수 없듯이, 공기 중에 떠다니던 일반 바이러스, 곰팡이 포자, 유해세균들이 집성촌을 계속 공격하고 있었으며, 용병들은 그야말로 인해전술로 그때마다 잘도 막아내었다. "이것이 바로 군집저항(colonization resistance)이라는 것이여!" 하면서 떠드는 박사들 모습이 얼핏 보였다.

용병들 후방에서 가끔 백혈구들이 보였지만, 그 병력은 용병들의 '수만 분의 일'이었기에, 용병들이 맘만 먹으면 나라 하나 뺐기는 건 일도 아니었으나, 너무도 헌신적으로 백혈구들의 지휘를 받고 있었으며, 전장의 소식은 즉시 백혈구에 보고되고 있었다.

용병들끼리 또는 백혈구와 어떤 말로 소통하고 있었는데 우리들의 말과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였으며, 박사들은 그들만의 언어를 '사이토카인(cytokines)'이라 불렀다.

피부에 있는 용병들은 어떤 보호장구를 갖추고 있었는데, 약간 푸른색을 띠고 신맛이 났으며, 번들거리는 방탄비닐 같았다. 박사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acid mantle'이라고 지들 용어로 떠들고 있어 살짝 기분 나쁠 뻔했다. 액시드는 산성이라는 것을 알겠고, 맨틀도 지구과학에서 들어 보았는데, 잘 몰라 사전을 찾아보니 '덮개'라고 되어 있다. 산성을 띤 보호막이라는 소리다. 피부가 이런 보호막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었다. 오! 놀라워라! 고맙기도 하고...?

요지경으로 보호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신맛(산성)의 원인이 젖산, 지방산, 아미노산, 지방산, 카르복실산 등이며, phospholipase A2라는 효소의 활성이 증가되니 더욱 산성화 되었다. 피부에서도 피지가 분비되고 땀이 분비되어 산성화를 유발하지만, 피부용병들의 대부분은 산을 분비하는 유익균으로 학자들은 유산균이라 부르고 있었다.

때마침 몇몇 공기 중 바이러스와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산성보호막에 내려앉았고, 그 순간 마치 염산테러를 당한 듯, 산성 때문에 굳어져 버리자, 이때 용병들이 전성기의 '밥샵'처럼 적들을 초살 케이오를 시켜버렸다. K1의 입식타격보다는 UFC의 종합격투기 같은 양상이었으나, 효도로와 최홍만의 게임처럼 너무 일방적이어서 재미가 없었다.

피부의 산도를 측정해보니, 부위마다 좀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pH 4.5~5.5 정도였으나, 박사말로는 때로 pH6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하며, 그러나 그 이상, 즉 중성이나 알칼리 쪽으로 가면 갈수록 용병들은 힘을 잃고, 반대로 바이러스, 진균, 세균, 여드름균 등이 힘을 얻는다고 말하며, 그의 연구업적 요약본을 내 눈에 들이밀어 눈이 찔렸다. 눈을 비비고 본 결과 어린 나이와 고령으로 갈수록 피부 pH는 증가하였고, 가장 건강하다는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pH가 가장 낮아 있었다.

아토피, 습진 등의 다양한 피부질환의 한 가지 공통상황은 피부 pH가 산성에서 알칼리로 향할 때라며, 자신의 연구논문들을 수백 편 내어 놓는다. "산성(酸性)은 오행으로 보면 수렴하므로 한의학에서도…" 어쩌구 하기에 급히 박사의 입을 막았다. 그러자, "공자왈, '군군신신부부자자'"라며, "산성인 곳은 산성이어야 하고, 중성인 곳은 중성이어야 하며, 알칼리인 곳은 알칼리여야 건강"이라고 떠든다. 랐다 랐다 알았다!

바로 그때, 수돗물에 손이 씻겨지게 되었으나,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비누질이 시작되자 산성보호막이 그야말로 날아가 버렸고, 용병 또한 바이러스와 함께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피아가 모두 죽어가는 이런 전략에 이길 자 누구인가?

시판되는 비누들의 pH를 급히 재어 보았는데 대부분 pH10 전후로 강알칼리였다.

그리하여 보호막과 용병이 완전히 사라지고, 피부의 pH는 거의 7에 가까워졌다. 당황한 피부는 인접 지역에서 상재미생물을 불러들이고 피지 등의 각종 분비를 최대로 가동하였으나, 피해 복구는 엄두가 나지 않았고, 박사의 논문은 수복에 14시간이 걸린다고 하였다.

그러는 사이 사실상 무주공산이 된 피부에 신종플루 바이러스 일가가 사뿐이 내려앉았고, 일종의 전율이 느껴졌다. 그 순간 자명종이 울려졌고, 가위눌림에서 깨어났다. 그야말로 공이 살린 것이다.

그렇다! 손잡이에 비누질을 나쁘다 말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손은 다르다. 생명은 이미 위대한 방어체계를 스스로 가지고 있기에 우리 모두 공기 중의 바이러스나 세균 그리고 진균의 공격에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소화나 대사에 대해 전혀 모르더라도 위대한 생명은 살리고 또 살리기에 살아가는 것이지 의학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생명의 피조물이므로 최고의 의학이란 신체의 지혜를 돕는 것이다. 면접장에서 떨고 있는 학생의 이성은 떨지 않아야 성적이 잘 나올 텐데 하면서 안 떨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떨린다. 떠는 놈과 떨지 말아야 한다는 놈 중 누가 진정 그 놈인가?

1) The Importance of Skin pH. Skin & aging 2003.
2) The pH of the Skin Surface and Its Impact on the Barrier Function. Skin pharmacology and physiology 2006.
3) www.wikipedia.com(normal flora, 100조, 피부에 1조 마리)


태그:#신종플루, #의료,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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