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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는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었다. 폭압에 맞서고자 한다면 누구라도 V가 될 수 있다.
▲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한 장면 V는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었다. 폭압에 맞서고자 한다면 누구라도 V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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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가 검거되었다는 뉴스를 봤다. 전문대를 졸업한 30대 백수일 뿐이고, 그간의 예리한 분석은 오로지 독학으로 성취한 실력이었다고 한다. 그를 중년의 증권가 중역으로 상상하던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실체가 아닐 수 없다. 천하의 미네르바가 고작해야 찌질이 키보드 워리어에 불과하다니~ 하고 말이다. 그래서 혹자는 미네르바가 실제로는 여러 사람이고, 이번에 체포된 사람은 짝퉁 미네르바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도대체 미네르바가 누구한 말인가? 사람들은 그에게 뭘 기대했던 걸까? 나로선 그가 독학으로 경제를 공부한 30대 백수라는 게 너무나 반가웠다. 이게 정말 사실이라면 시시하게 여길 일이 아니다. 아니, 도대체 왜 그래야만 하는가?이번에 체포된 사람이 50대 생선자판 아주머니라든가 40대 순대국밥집 주장장, 혹은 20대 편의점 야간 알바였다고 해도 반가웠을 것이다. 오히려 더 기뻐하며 쾌재를 부를 일이다.

그토록 비범한 인간이 한없이 평범한 이들의 또 다른 면모일 수 있다는 것은 명박지옥에 비치는 한줄기 희망의 빛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라도 미네르바가 될 수 있다.

그동안 미네르바의 글을 떠올려보면 신통방통한 경제 전망이나 예리한 분석은 몇 개 되지 않았다. 리만 브러더스 파산이나 환율급등에 대한 몇몇 글을 제외하면 대개 비슷비슷한 내용의 반복으로 일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환율변동과 경제지표가 어떻게 연동하는가에 관한 설명에 강했다. 프로페셔널한 경제 분석가들이 보기엔 기본공식 수준에 불과한 것을 쉽게 설명하는 것에 불과한 듯 보였을 테지만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쉽게 설명한다'는 기술이야말로 미네르바의 진정한 비범함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에게 열광했던가에 대해 되돌아보자.

프로페셔널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공식으로 여겨지는 것도  대부분의 비전공 일반인들에게는 어지간히 풀고 풀어서 설명해주지 않으면 뭔 소린지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미네르바는 달랐다. 그는 지금의 경제 위기를 읽는 핵심을 딱 집어서 관료나 학자의 언어가 아니라 군고구마 장사꾼의 말로 설명했다. (그는 늘 글에서 자신을 군고구마 장사하는 사람으로 소개하곤 했다.) 다시 말해 미네르바의 진짜 비범함은 그의 글쓰기 방식 그 자체였다.

그가 했던 것 같은 글쓰기 혹은 소통을 강만수에게 기대할 수 있을까? 좋은 대학 나오고, 유학까지 갔다왔다는 지경부의 관리들이나 경제연구소 소장님들,  좋은 대학 경제학과 교수님들께서 아고라 같이 '천한 동네'에다 글을 올려 주실까? 그들은 그런 걸 할 줄 "모르고", 미네르바는 "알았다".

MB의 경제정책은 "우리가 알아서 하니까 무조건 믿어라"는 식이다. 저들은 가장 기본적인 내용조차 국민들에게 정직하게 똑바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운하 추진만 놓고 보더라도 어떻게든 거짓말로 일관하다고 엄벙떵 밀어붙일 궁리 뿐이다. 저들은 국민과 소통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네르바는 소통 그 자체였다.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미네르바는 어떤 한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필요로 했던 현상이었다. 우리들은 필요로 하는 것을 인터넷에서 불러내어왔고, 그에게 '미네르바'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네르바는 체포될 수 없다.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대체 무슨 방식으로 체포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모르는 저들은 구제불능의 바보들이다.


태그:#미네르바, #미네르바체포, #대중지성, #대중지성의시대, #경제파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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