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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1

 

아침을 먹은 후 숙소 부근의 산길을 통해서 문경새재를 넘기 시작했다. 자전거가 들어갈 수 없는 길이라 걸어서 올라갔다. 새도 쉬었다 가는 고개라기에 험하고 가파른 길을 상상했는데 집 근처 뒷산 올라가는 것처럼 편안하고 아름다운 길이었다. 비에 젖어 촉촉해진 나무 이파리들에서 좋은 냄새가 났고, 가끔씩 길가 숲에서 다람쥐가 쪼르르 튀어나왔다.

 

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졌다. 눈을 감고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저 물과 돌이 함께 부닥쳐온 세월을 생각했다. 계곡을 이루는 돌덩이들에 시간이 새긴 무늬는 누구도 흉내내서 그릴 수 없다. 물과 함께 살아온 작은 생명 앞에서 사람의 이야기란 뭐든 초라하고 우습기만 할 테다.

 

그런데 사람이 한다는 생각이 고작 강을 파헤치고 산에 구멍을 내겠다는 것이라니 걸음마다 죄스러웠다. 옛날 옛적엔 문경새재 못 넘으면 과거 보러 가지도 못했다던데, 대운하 운운하는 분들은 이 땅에 발을 디뎌보기나 했을까.

 

# 2

 

충주에서 출발했던 우리는 어느새 경상북도에 들어섰다. 걷기는 끝, 이제는 자전거를 타야 할 때가 되었다. 어제 실컷 혹사당했던 엉덩이를 다시 안장에 대자 마자 절로 신음이 나왔지만, 페달을 몇 바퀴 밟아 보니 맞바람이 상쾌해서 통증은 금방 잊었다. 날씨가 맑을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비가 많이 내렸다.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건 상상도 못했던 내가, 바로 옆으로 차들이 쌩 지나치고 비를 맞아 미끄덩하기까지 한 대로를 신나게 달릴 수 있었던 건 다른 순례단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건 생각할수록 신비로운 일이다.

 

길이 비교적 평탄해서 달리기가 수월했고 그만큼 신명이 났다. 빗줄기가 무거웠고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할 수만 있다면 자전거와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뿌옇게 흐려진 안경을 통해서 봐도 우와 소리가 나오는 남한강변의 절경에다 비까지 내려 주시니, 그런 풍경 안에서 자전거를 타는 우리의 모습이 꽤나 멋진 그림을 연출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 싱긋 웃어보기도 했다.

 

오후가 되면서는 서서히 날이 개더니 순식간에 햇볕이 따가워졌다. 이제는 몸이 빗물이 아니라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한창 초록색 물이 오른 벼들이 가득한 평야를 달리니 눈만은 서늘하게 시원했다. 

 

# 3

 

비를 피해 찾은 원두막에 모여서 후루룩 넘겼던 국수의 맛과 뜨끈한 국물이 목구멍을 넘어가 몸 곳곳에 온기를 퍼뜨리던 순간의 감동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설거지 내기를 위해서 했던 릴레이 달리기도, 떡처럼 불어버린 면발도, 사소한 농담과 웃음소리들도, 흐려지지 않는 기억이 되면 좋겠다는 욕심이 나던 시간이었다.

 

음식에 대한 기억만큼 강렬한 것도 없다고 했던가. 나는 다시 맛볼 수 없을 국수를 가끔 떠올리면서 국수다발처럼 뻗쳐 나오는 추억의 가락들을 어루만지게 될 것 같다.

 

# 4

 

이틀로 마무리된 자전거 순례의 종착지는 상주시 병성동이었다. 내일부터는 이곳에서 농활과 지천 부근을 청소하는 작업을 한다.

 

숙소에 도착해 저녁을 먹은 후에는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가졌다. 조별 대항으로 장기자랑, 대운하 등과 관련된 퀴즈, 제로 게임의 종목이 있었다. 압권은 어륀쥐조 이돈확씨의 열창이었다. 그렇게 빼시더니만 갑자기 안면 몰수하는 능청스러움과 무대 매너에는 모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파 같은 남자로 불리는 그 뿐 아니라 다른 순례단원들 역시 각자의 안에 어떤 세계를 담고 있을지 껍질을 자꾸 벗겨보고 싶어졌는데, 그러기에는 5박 6일이 벌써 너무 짧은 것 같다.


태그:#문경새재, #5박 6일, #자전거 국토순례, #대운하 반대 , #한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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