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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초, 기대하고 상상했던 수업과 달라서 어색했던 사진 실습수업이 있었다.

 

사진을 찍기 전, 스케치를 먼저 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카메라보다 노트와 연필을 먼저 들었다. 머리에서 먼저 구상을 한 후 사진 찍는 연습, 렌즈가 아니라 내 눈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연습을 하는 수업이었다.

 

좁게만 생각했던 나에게 그 수업은 많은 귀감이 되었고, 내 첫 기사도 그렇게 탄생했다.

 

나의 첫 기사를 우연히 읽으신 교수님께서는 몇 주간 40여 명의 학생들 앞에서 부끄럽게도 내 이름을 종종 거론하셨다.

 

"이 수업이 그렇게 실망스러웠나?" 하시는 교수님의 질문에 학생들은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기도 하고, 킬킬 웃기도 했다. 말미엔 앞으로 많이 배우게 될 테니 너무 실망만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특별하고, 다른 방식의 수업에서 느낀 신선함을 쓰고자 했던 나의 의도와 달리 오해가 생긴 것 같아 몇 주간의 수업은 참 불편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흑백필름 36컷. 이번 학기 수업에서 공식적으로 내가 찍은 사진이다. 스케치 연습 후엔 내가 그토록 바랐던 출사 시간도 있었고, 암실에서 직접 현상, 인화 작업을 통해 '내 사진' 1장을 가질 수도 있었다.

 

 

사실 3년 동안 해온 학과 내 '보도사진' 분과 소모임 덕분에 사진을 찍고, 현상하고 인화하는데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면 자존심 상할 정도로, 전시회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너무, 너무 성에 차지 않는 사진이었다. 오래된 용액으로 (어쩌면 내 실수로) 물이 빠져버린 필름과, 그 때문에 제대로 인화되지 않은 사진들. 속상하고 아쉽고 아까웠다.

 

보도사진실습. 단순히 사진만 찍고 끝낸 수업이 아니었다. 우리는 자신만의 사진을 가지게 되었고, 50여 장의 사진들로 우리만의 작은 사진전시회도 열었다. 과자와 맥주, 그리고 기타와 함께한 '전시회 파티'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한 학기동안 심혈을 기울인 나의 '노트'가 있었다. 때문에 필름 한 롤, 사진 한 장 잘 못 나왔다 해도 처음만큼 속상하지는 않다.

 
3학년이 되면서, 그 어느 수업도 종강 이후에 필기노트를 뒤적인 적이 없다. 하지만 과제물 제출로 노트를 내야 할 시기가 가까워지면서 스케치들, 고이 붙어있는 과제와 현상된 필름,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이 담긴 노트를 자꾸만 뒤적여 보고 읽어보게 되는 나의 노트가 이 수업의 가장 큰 결과가 아닐까.
 
사진기자를 꿈꾸고 대학생이 되었던 나는, 사실 3년 동안 과제와 시험에 찌들며 그 꿈이 회색으로 바래지는 것을 그저 내버려뒀다. '기자는 무슨, 그냥 이렇게 졸업해서 남들처럼 살지 뭐' 하는 생각이 차츰 나를 지배할 때쯤. 이 수업을 만났다.
 
나의 첫 기사 이후로 내 이름만 보시면 '실망, 실망' 하시던 (전직 사진기자셨던) 교수님께서 해주셨던 우연한 조언들. 그리고 차츰차츰 내 손에 배어가는 암실 냄새에 나는, 그 꿈이 다시 원색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다.
 
"오랜만에 맡게 된 강의에서 지식도 지식이지만 많이 위축된 여러 분께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사진의 구도, 노출, 그런 면에서 사진을 조금 더 잘 찍게 됐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노력, 꾸준한 열정이 없으면 좋은 사진도 없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나이를 살고 있는 여러 분들이 좀 더 활개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태그:#사진전, #종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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