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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I. A (This Is Africa),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에서 한 말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가장 머릿속에 남는 말일 것이다. 그는 왜 ‘이곳이 바로 아프리카’라고 했으며, 영화에서 다이아몬드가 ‘피’로 비유된 이유는 무엇인가?

반짝 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속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 영화의 포스터 반짝 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속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영화의 배경은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시에라리온이다. 이 나라는 내전으로 오랜 기간 분열되어왔다. 그런데 그 중심엔 다이아몬드가 있다. 시에라리온에서 다이아몬드는 내전에 사용될 무기를 구입하기 위한 유일한 경제수단으로 그것을 위해 각 부족은 타부족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채굴을 위한 노예로 활용한다.

영국 등 선진국의 다이아몬드 회사들은 이들과 음성적으로 거래를 하고 그 다이아몬드는 소비자에게 유통된다. 정부엘리트 역시 다이아몬드에 의존하여 경제를 유지하고 자기 이익을 채우기 때문에 여기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

문제는 영화는 영화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피의 다이아몬드’는 ‘현실’에서 그대로 유통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내전은 민족과 종교의 차이뿐만 아니라 석유, 다이아몬드, 금 등 1차자원의 소유권과 주요 강대국 간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영화에서 디카프리오가 말한 ‘T. I. A’는 바로 ‘현실’인 셈이다.

자원이 이득보다 피와 가난을 가져오는 상황을 정치학에서는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라고 부른다. 자원의 저주는 비단 아프리카만 해당하지 않는다. 60년대 말 석유를 발견하여 엄청난 경제적 효과가 예상됐던 중동은 자원의 저주를 몸소(?) 실천한 대표적 사례다.

금융전문가 조지 소로스의 분석에 따르면, 중동의 국가군은 당시 자원 빈국으로 불렸던 한국과 대만보다 경제성장에 있어서 약 23배의 차이를 보였다. 또한 매년 유엔이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정치발전수준, 교육기회, 영아 사망률 등-에서 중동국가들은 후진국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원의 저주는 왜 생겨나는 것일까? 그것은 자원으로 얻은 부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가 소수의 손에 집중되면 그 방향은 왜곡되기 쉽다. 그 잘못된 방향이 저주를 이끄는데, 이 저주가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정치영역이다.

석유를 생산하는 중동 대부분의 나라가 군주국이고, 아프리카의 자원부국들이 독재와 내전에 시달리고 있으며, 버마에서 군부가 여전히 무력지배하고 있는 것은 모두 ‘자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괜히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자원의 저주는 풀릴 수 없는 것인가? 두 가지 열쇠가 있다. 첫째는 정치개혁이다. 70년대 석유사태이후 경제적 위기를 겪은 중동국가들에게 IMF가 경제 자율화와 개혁을 요구해도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개혁의 대상들이 개혁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즉 기득권 세력에게 기득권을 포기하고 개혁을 실시하라는 것은 ‘소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노르웨이와 칠레가 석유와 구리로 얻은 수입을 복지와 교육정책에 쏟아 부었다는 사실은 자원의 저주가 획일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서, 정치엘리트의 정치의식수준과 개혁의지가 국가발전에 필수적 요소임을 말해준다.

또 하나의 열쇠는 이해관계를 초월한 국제사회의 노력이다. 조지 클루니가 주연했던 영화 ‘시리아나’는 석유를 둘러싼 중동의 정치권력과 국제 석유회사, 미국 등 열강의 '삼각협력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차기 왕권을 노리던 어느 중동국가의 왕자가 ‘석유로 번 돈을 엉뚱한 곳에 쓰는 현실’을 탄식하면서 개혁의지를 천명했다가 CIA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은 ‘국가는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현실주의 정치철학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최근 버마 군부정권이 민주화 시위와 국제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힘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천연가스와 관련하여 중국 등의 강대국과 깊은 이해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며, 불과 20여 년 전 비슷한 상황을 겪은 한국이 버마사태에 대해 함구했던 것은 이 사업에 한국이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민주주의 재건을 위해 싸운다는 미국과 이에 동조하여 군대를 파견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여기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위에서 언급했던 두 영화가 모두 허구지만 그러려니 넘길 수 없는 이유는 현실에서 이 상황들이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열쇠는…알아냈지만 찾기 힘들다. 어쩌면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자원을 가진 나라에 평화를(The nation which has raw material is at peace)'…영화에서 처럼…오늘도 기도할 수밖에 없는걸까?


태그:#영화, #민주주의, #정치, #개혁,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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