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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니 12시. 애초의 계획은 12시까지 그곳에 도착하는 것이었건만, 시작부터 늦었다. 헐레벌떡 준비를 하고 나섰다. 하지만 수첩을 사러 문구점에 가서 또 삼십 분을 소비했다. 마음에 드는 수첩이 있어야 왠지 글도 잘 써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12시는 무슨…. 골목길은 찾아가는 것도 힘들다. 그냥 가까이 있는데 갈걸 하는 생각이 들고, 3시가 지나 4시가 다되어간다.
  
삼선교역에 도착한 것은 3시 40분. 이리저리 물어 드디어 한성대 입구길에 도착했다. 바쁜 사람들. 시장통이다. 딱히 목적지 없이 그저 골목길을 찾아 방황하다 보니 그저 올라가기만 했다. 그러다가 건물과 건물 사이 약간은 어두운 틈 사이로 계단이 있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갔다.

 

'욱구 5길' 골목길 발견.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단 듯이 파란 하늘 아래 손을 흔드는 화분 초들. 너무도 반갑다. 시간이 멈춘듯한 공간. 들어서는 순간의 그 정겨움. 햇살이 살짝 드는 고요한 공간. 내가 상상했던 그 모습이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햇살·고요함·바람, 그 공간에 있었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 이따금 진돗개·할머니·뻥튀기를 실은 오토바이 아저씨가 지나갔다. 지나가면 고요하고, 또 지나가면 고요하고. 평소에 목적으로 가지 않던 공간이 목적지가 돼서 와보니, 감회가 정말 남달랐다. 잠시 어안이 벙벙해져 있던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옮겼다.


길을 따라 가다 보니 삼선공원이 나왔다. 공원은 골목길에서의 고요함과는 달리, 활기가 있었다. 크게 자란 나무들이 볕을 막아주어 시원한 공기 속에서 공차는 아이들, 미끄럼틀을 타고 신난 아이.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 그리고 산책을 나오신 백발의 할머니. 공원의 그 모든 풍경은 일상적인 느낌이 났다. 바람과 고요함이 길동무가 된다.

 

길의 시작은 꽤 경사져 있는데, 시멘트로 투박하게 발려져 있고, 손가락으로 낸 것 같은 가로 홈이 죽죽 나 있었다. 눈이 오면 이 골목에서 썰매도 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걸으면서 이 주변의 대학생들은 자기들 근처에 이런 멋진 공간이 있다는 걸 알까 하는 생각에 조금 우쭐한 기분을 느꼈다.

동네는 꼭 낡은 페인트칠·녹슨 철재·알루미늄·시멘트칠과 양감이 큰 시멘트 덩어리로 이뤄진 추상작품 같았다. 시멘트는 원래 딱딱한 물질이지만 골목길에서 그것은 단단하고 차가워 보이기 보다는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게까지 느껴졌다. 오래돼서인지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워 원래 있어야 할 것처럼 느껴졌다. 골목길의 모든 곳, 아주 조그마한 부분이라도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 없다.

 

사람을 위한 길, 골목길

 

골목이 좁아질수록 나는 포근함과 아늑함을 느꼈다. 처음 와보는 곳인데도 어디든지 앉아서 쉬어 가고 싶은 그런 편안함. 빌딩이 서 있는 도로 길도 이 골목길도 다 같은 ‘길’인데 이곳은 언제 까지건 앉아 있을 수 있는 편안한 곳으로 생각되는데 도로 길은 도저히 앉을 수 없는, 앉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는 길이다.

 

아스팔트 길이 기계를 위한 길이라면 골목길을 인간을 위한 길이라서 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자살률이 높고, 우울증 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사는 곳이 아스팔트 길 근처인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기계(예를 들면 자동차 같은)가 주가 되는 길옆에 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어색하고, 불안하고, 우울할수 밖에! 사람을 향한, 포근하게 모든 것을 감싸주는 이 골목길이 있는 곳에 살면 그렇게 우울하지 않을 텐데….(철없는 소리일 수도 있다)

된장냄새가 진동했다. 어느 집에서 저녁준비를 하나 보다. 냄새의 진원지 쪽으로 자연스럽게 가게 되었다. 문 앞에 선 순간, 하늘색과 흰색의 세로 선으로 칠해진 대문이 마치 그리스 신전 기둥의 그것과 같이 느껴졌다. 주인아저씨가 대문에 감각을 발휘하신 것 같다. 별것 아닌데도 이곳에서 보니 왠지 모르게 더 의미 있게 예술적이게 느껴진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은 수십 년에 걸쳐 한 땀 한 땀 바느질 하듯이 혹은, 지점토로 공예를 하듯이 만들어져 바닥·벽·계단 등 어떤 곳이든 사람의 손이 안 간 곳이 없을 것이다. 마을 전체가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진 하나의 작품같다. 오랜 시간 힘들여 쌓고 다듬은. 만들기를 해보면 알겠지만, 아무리 엉성하고, 조악하고, 세련되지 못하다 하더라도 내 것, 내가 직접 만든 것이란 이유 하나만으로도 무한한 애정이 샘솟는다.

 

이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이 마을에 필시 그런 애정을 갖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다시 돌아 길을 가는데 시멘트 길에 멍멍이 발자국이 보인다. 뉘 집 똥갠지 작업을 망쳐 놓을 심산으로 왔을지 모르나 내 눈엔 작품 하나를 남겨놓은 것처럼 보였다.

 

삼선공원3길의 골목을 빠져나와 조금 큰 장수길에 들어섰다. 행복슈퍼가 보였다. 그 앞에는 급할 것이 전혀 없다는 듯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계신 흰머리 할머니와 할아버지 몇 분이 의자에 앉아계셨다. 말을 걸어보려다 실패하고, 다시 오르막 쪽으로 가다가 왼쪽편의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들어간 골목은 나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발고 가시옵소서’가 절로 나왔다. 장미꽃잎이 들쭉날쭉한 계단 위에 흩날려 있었다. 그리고 ‘누구세요’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는 화분들. 열심히 가꿔놓은 예쁜 화초들. 어딜 가나 이동네는 집앞에 잘 가꿔놓은 화초가 있다.

 

자연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하고자 함일까. 골목을 들어가면 들어갈 때마다 소박하고도 예쁜 장면들이 숨어 있어 보물찾기하는 기분이 들었다. 

막다른 골목들을 몇 접하고 다시 장수 길로 돌아와 장수2길, 서울성벽을 따라 주욱 올라갔다. 다시 성벽을 따라 걸었다. 거의 가파른 경사길이 끝날 즈음에 할머니를 부르며 한 아이가 울고 있다. 왜 그런고 하니, 뒤에 진돗개 한 마리가 문입구에서 고개를 주욱 빼고 엎드려 있었다.

 

별로 무서운 모습은 아닌데, 아이는 왜 그렇게 울까. 골목길 사이로 들어온 햇빛 덩어리를 베고 자는 그 모습이 한없이 한가로운 모습이다. 생각해보니 골목길 오르는 내내 나던 똥내의 범인이 이녀석이기도 한 것 같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누렁이 뒤에는 백구도 한 마리 엎드려 있다. '개조심' 백구는 많이 사나운가 보다. 움찔하며 지나쳐 갔다.

 

그렇게 계속해서 가다 보니 끝도 없을 것 같던 길도 어느새 끝이 났다. 그 꼭지점에 있던 것은. 마을버스 종점. 버스의 회차지점. 목표지점을 갖고 떠난것이 아닌데, 마치 애초의 그것이었던양 이름도 종점. 뭔가 보람찬 것도 같은데, 허무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버스는 내 앞에서 꼭 타라는 것 같이 벨을 울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장기가 돌아 낙산공원 입구 쪽에 있는 뻥튀기 트럭으로 갔다.


“아저씨, 이거 얼마에요?”
“천원, 그게 색깔이 그런 건 표백제를 안 써서 그래.”


괜히 말씀하신다. 맛이 달달하니 아주 좋다. 그렇게 먹으면서 아저씨에게 혹시 이쪽 부근도 재개발을 하느냐고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다고 말씀하셨다. 아저씨는 뻥튀기를 산 나에게 호의적이었는지 주절주절 말을 꺼내셨다. 1000원의 값어치가 컸던 것 같다.


“당연히 재개발되지. 계속 말이 나오고 있고. 이 뒤쪽으로는 벌써 다 개발됐어. 요 앞에 현대아파트 올해 5월에 입주했지. 앞으로 대우아파트도 들어와. 성북 전체는 10년 뒤면 다 바뀌어, 여기 삼선1동은 무조건 10년 안으로 바뀌구 ”
 

그 말을 들으니 참 씁쓸했다. 얼마 안 가 이곳도 사라진다니…. 다시 골목길의 입구에 돌아와 앉아보니 왠지 허무해 보이는 동네 아저씨의 뒷모습이 보였다. 다시 보니 근처에 빈집이 이미 꽤 된다. 경주는 워낙에 개발이 더디어 아직 골목길 동네가 꽤 있다. 내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뛰놀며 추억을 쌓은 황남동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가진 동네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 그곳은 휑 하다. 유적지공원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몇 년 사이 시에서 싹 다 밀어버렸다. 가끔씩 거기에 가보면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송두리째 사라진 것 같아서 내 마음도 휑하다. 아직도 남아있는 몇몇 구멍가게와 몇몇 나무, 그리고 천마총을 따라 죽 이어진 돌담길만이 그곳이 예전의 그곳이란 걸 말해준다.

 

이곳 사람들의 아쉬움과 안타까움도 더하면 더했지 나의 그 마음과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루 살은 나도 아쉬운데, 이곳에서 지금도 하루하루 추억이 될 기억을 쌓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비록 이곳이 산동네라 무릎이 조금 부담되고, 시설도 좋지 않지만, 살아가는 데 필요할 것은 없을 것 없이 다 있다.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싹 사라져 버린다니 허무하고 분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아파트에 없을 것도 있는 것이 이 곳인데…. 이 작은 동네는 사람이 느껴진다. 하나하나 사람손이 가서 만들어졌고, 하루하루 가꿨으며, 함께 사는 사람들을 배려하며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길을 내려가면서 생각했다. 이 곱게 가꾼 할머니의 작은 텃밭, 손수 만든 이 계단,  손 때묻은 이 벽을 허물어버리는 것을,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겠지만, 그들이 허무는 것은 이곳 사람들의 삶 그 자체라는 것을. 그리고 이곳이 사라지는 것은 우리네 삶에서 소중한 기억 하나를 잃는 삭막한 사건일 것이라고.

 

이곳에서 어느 것 하나 악착같지 않은 것은 없다. 모기도, 파리도, 아줌마도, 할머니도, 고양이도. 모두들 이곳에서 열심히 살기 위해서 만족하며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이미 더 이상 경쟁선상에 있지 않지만 치열하게 살고 있다.


 

나는 그저 소소한 아름다움이나 한적함, 추억거리를 느껴보기 위해 이 곳에 찾아 왔지만, 내가 생각 했던 것들 이상의 많은 것들을 함께 느끼고 간다. 골목길이 있는 동네는 비록 경제적으로 풍요롭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아름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철수와 영희의 낙서, 추억, 정겨움, 이름은 모르지만 아주 예쁜 풀꽃,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얼마 지 않은 그네들 동네의 수명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일상이 약간은 힘에 부쳐 보이기도 하지만, 꿋꿋이 그 안으로 행복을 들이며, 열심히 삶을 꾸려 나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골목길. 그곳은 하나의 전시관이다. 소박하고 아름답고 꿋꿋한 것들의. 나의 이 소견이 삼선1동 주민들이 들으면 ‘맹꽁이 같은 것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거나 내가 느낀 그곳, 골목길은 너무도 소중한, 우리 삶의 한 단면이다.


태그:#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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