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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엎드려 다니는 대군씨가 선유도공원에서 노을을 찍고 있다.
▲ 노을찍는 대군씨 언제나 엎드려 다니는 대군씨가 선유도공원에서 노을을 찍고 있다.
ⓒ 양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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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사진전에 초대합니다. 어쭙잖은 실력으로 3개월간 학생들에게 사진 찍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며 조그만 사진전을 열기로 했습니다. 특별한 제목도 없고 주제도 없이 그동안 수업시간에 찍었던 사진을 자랑하는 자리입니다.

저와 함께 25번의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방송통신대를 다니는 40대 아저씨부터 초등학교도 가보지 못한 20대 청년까지 정말 다양합니다. 어렸을 적 앓은 소아마비로 하반신이 불편한 학생, 고등학교 시절 받은 뇌수술로 지체장애1급 판정을 받은 학생, 태어날 때부터 지체장애로 30여년간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던 학생. 장애도 다양하고 살아온 삶도 다양합니다. 그들이 함께 모일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모두 장애란 불편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지난 7월 19일 노들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서는 10여명의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사진학교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난 6월 초 평소 알고 지내던 노들장애인 야학의 박경석 선생님께 강사를 해달라는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한 한 달 정도 수업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해서 선선히 하겠노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수업은 총 25번 1주일에 두 번씩 3개월가량을 하는, 다른 일을 하는 저에게도 집에서 나오기 힘든 장애인들에게도 힘든 일정이었습니다.

호식(사진 왼쪽)씨가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사진을 찍고 있다.
▲ 대포가 아닌 사진기 호식(사진 왼쪽)씨가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사진을 찍고 있다.
ⓒ 양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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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 우산을 들고 덕수궁 안으로 사진찍으러 가고 있는 은주씨. 은주씨는 작은 카메라도 무거워 들기 힘들어하는 작고 예쁜 아가씨다.
▲ 우산 든 은주씨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들고 덕수궁 안으로 사진찍으러 가고 있는 은주씨. 은주씨는 작은 카메라도 무거워 들기 힘들어하는 작고 예쁜 아가씨다.
ⓒ 양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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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한창 시작되던 지난 7월 19일 학생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학생들을 만나기 전 제 고민은 ‘어떤 카메라로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였습니다. 시중에 많이 나온 카메라는 비장애인들은 사용하기 편하지만 셔터를 누르는 것조차 힘들어 하는 장애인들에겐 사용이 쉽지 않습니다.

고르고 골라 라이브뷰(liveview)라는 기능이 있는 카메라에 유선리모콘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휠체어에는 카메라를 고정시킬 수 있는 삼각대를 개조한 막대를 달았습니다. 손을 움직일 수 없는 이들에겐 활동보조인이 옆에 붙어서 학생들이 원하는 구도로 사진기를 움직여주었고 마지막엔 유선리모콘을 이용해 셔터를 누르게 했습니다.

호식씨가 삼각대를 세워놓고 창덕궁의 모습을 찍고 있다.
▲ 창덕궁에서 호식씨가 삼각대를 세워놓고 창덕궁의 모습을 찍고 있다.
ⓒ 양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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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손으로 사진기를 손에 들고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는 호식씨
▲ 사진기를 손에 든 호식씨 떨리는 손으로 사진기를 손에 들고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는 호식씨
ⓒ 양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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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담은 기억 저장소

수업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몇 가지 인상깊은 모습을 적어볼까 합니다. 두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사진을 나에게 보여달라'는 주제로 첫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다음 시간 학생들은 꽃 사진, 마라톤 사진 등 다양한 사진을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정해윤씨가 보여준 것은 10대 고등학생이 즐겁게 웃고 뛰어노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습니다. 고3 때 뇌수술 후유증으로 전신마비 중도장애를 입은 해윤씨에게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수술 전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해윤씨에게 사진은 가장 빛나는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게 하는 훌륭한 기억 저장소였습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을 보여달라는 첫번째 숙제에 해윤씨가 가져온 자신의 고등학교 때 모습이 담긴 사진
▲ 가장 좋아하는 사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을 보여달라는 첫번째 숙제에 해윤씨가 가져온 자신의 고등학교 때 모습이 담긴 사진
ⓒ 양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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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갈 즈음 왼쪽 손가락 몇 개만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방수현씨가 집에 가는 길에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카메라를 전동 휠체어에 장착시켜 달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수현씨는 휠체어에 고정되어 있는 카메라를 턱으로 움직이며 광화문에서 마로니에 공원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활동보조인 없인 사진 한 장 찍기 힘든 그가 찍어온 사진은 수백 장에 달했습니다. 그의 사진 한 장 한 장이란…(사진전에 오셔서 보십시오).

마지막 수업 날이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인사하고 나오는데 한 학생이 그러더군요. 이제 사진을 찍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되었는데 벌써 끝나다니 너무 아쉽다고요. 25번이라는 시간이 저에겐 긴 시간이었지만 세상 구경을 잘 못하는 장애인들에겐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나 봅니다.

이제 수업의 마지막, 졸업 전시회가 있습니다. 26일 오후 1시부터 해질녘까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립니다. 오셔서 아름다운 사진들을 감상해 보세요.

목발에 의지해 사진 찍는 문주씨.
 목발에 의지해 사진 찍는 문주씨.
ⓒ 양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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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준(사진 오른쪽)씨가 모델을 자처한 허정(사진 왼쪽)씨를 찍고 있다.
▲ 사진 찍어주기 병준(사진 오른쪽)씨가 모델을 자처한 허정(사진 왼쪽)씨를 찍고 있다.
ⓒ 양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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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휠체어에 카메라를 장착한 수현씨와 목발을 짚은 문주씨가 사진을 찍기 위해 비탈길을 내려오고 있다.
 전동휠체어에 카메라를 장착한 수현씨와 목발을 짚은 문주씨가 사진을 찍기 위해 비탈길을 내려오고 있다.
ⓒ 양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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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사진학교,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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