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해질녘, 사물의 윤곽이 흐려져서 멀리 보이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 이때는 선도 악도 붉은색일 뿐이다.


그 동안 매주 수․목요일 저녁, 우리를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가득하게 했던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이하 개․늑․시)>이 지난 6일 종영됐다.

7월 초, 제작 발표회에서 김진민 감독이 밝힌 바를 잘 소화했던 <개․늑․시>는 탄탄한 구성과 틈새를 보이지 않는 묘사력으로 작품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여태까지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웠던 연출력으로 영화 이상의 감동과 볼거리를 선사했다. 또한, 캐릭터 간에 느끼는 갈등․연민․사랑․애증이 시청자에게 그대로 이입돼, 보는 이 스스로가 직면한 것처럼 눈 돌릴 틈이 없게끔 했다. 시나리오를 쓰던 작가들이 참여함으로써, 영화 이상으로 심도 높게 내용을 다루었다.

그 동안 많은 작품에서 사용했던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 복수극을 밑바탕에 깔고 있지만, 기고한 운명을 복수로써 극복하려는 수현의 갈등과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깔끔하게 전개해, 오히려 소재를 참신해보이게 만들었다. 갈등의 출발점이 태국인만큼, 현지 로케이션 촬영이 6회 분이나 되는 등 완성도 있는 연출을 위해, 실제 제작에 착수한 것은 1년 전이라고 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제목에서도 암시하듯, 각 인물간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 그리고 그들이 처할 운명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알 수 있다. ‘이 때는 선도 악도 붉은색일 뿐이다’라는 이준기의 마지막 독백에서처럼, 어떤 행위를 선으로, 혹은 악으로 규정지어야 할지. 또는 누구를 선인으로, 악인으로 지목해야 할지 모호하다. 부모세대부터 이어진 기구한 연결고리는, 수현 자신이 수현인지, 케이인지 구분 짓기 어려운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한다.

부모를 죽이고 어린 자신도 헤치려 했던 원수에 대한 복수심으로 지탱해온 수현이지만, NIS요원으로서 복수를 위해 언더커버 요원이 되는 그의 선택을 정당한 행위로 봐야할 지. 불의의 사고로 기억을 잃고 진짜 케이가 된 그가 저지른 행위들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지. 지우와의 사랑이 결실을 맺어도 되는지. 우리의 판단 역시 갈림길에 직면했다. 이 모든 갈등의 핵심인 마오 역시, 수현의 부모를 죽인 범죄단의 보스로서 가장 미움을 받은 악인일지도 모르겠지만, 최종회에서 밝혀지는 수현의 부친과의 과거를 통해, 형제 같은 친구를 생애 첫 살인대상으로 맞아야 했던 아픔과 죄책감을 스스로의 죽음으로 보여 줬다.

또한, 케이는 자신에게 접근한 수현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가장 측은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누가 나쁘고 누가 잘했다고 단정 짓기보단, 수현이 때론 케이가 돼가는 모습을 보였듯 처한 현실이 인물들을 다중적인 양상을 뛰게 했고, 우리 역시 세상을 살며 느끼는 한 면일 것이다.
<개․늑․시>는 드라마 자체뿐만 아니라, 등장 배우들에게도 의미가 크다.

영화 <왕의남자> 이후, 중성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배우 이준기가 강한 남자로의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머리 스타일만 바뀐 것이 아니라, 수현 안에 잠재된 폭발력과 갈등, 증오심을 순도 높게 표현해, 연기자로서의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강민기 역의 배우 정경호 역시, 기존의 소년티를 벗고 때론 부드럽고 때론 진지함이 묻어나는 남자. 그 역시 잠재된 강인함,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의 갈등, 아버지의 죽음 앞에 느끼는 분노 등을 뛰어나 세부 묘사해 차세대 스타감 임을 시사했다.

상당히 발 빠른 전개가 시청자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했던 <개․늑․시>에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최종회 때의 지유와 수현의 진한 키스씬의 수위가 드라마 방영 시간대에 적합한가다. 운명의 장난에 갇힌 그들의 애뜻함과 뜨거운 사랑을 묘사한 것이지만, 온 가족이 시청하는 시간대인 만큼 수위조절이 필요치 않을까. 최근 종영된 <커피프린스 1호점> 역시 많은 지적을 받았듯, 최근 드라마에서의 높아진 러브신 수위를 예상케 한다. 어린 청소년들도 시청하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소년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라는 지우의 독백에 이어, 둑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으며 읊는 수현의 마지막 대사. 온통 붉게 물든 하늘이 영상으로 보여 짐을 통해, 수현의 끝나지 않은 방황을 암시한다. 미술공부를 계속하는 지우. 언더커버 요원으로의 삶을 선택한 수현. 그들의 행선지가 파리란 것을 통해, 그들의 끝나지 않은 인연을 예측케 한다.

드라마는 종영됐지만, 여전히 MBC홈페이지에는 시청자들의 응원 메시지와 호평이 쇄도하고 있다. 시즌 2까지 요구할 정도다. 제작비가 많이 투입된 액션 드라마는 많았지만, 화려한 이미지에만 치중하지 않고 탄탄한 내용 전개로 시청자의 구미를 당긴 경우는 흔치 않다. 원작이 만화지만, 기존에 원작을 만화로 한 드라마와 달리, 영화 못지않은 깊이와 스케일을 자랑했다. 또한, 캐릭터를 잘 반영하는 의상과 그들의 직업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여러 가지 소품. 실제를 방불케 하는 국정원 세트. 영상과 구성에 완벽하게 알맞은 배경음악 선택까지. 내용 구성뿐만 아니라, 드라마를 뒷받침 하는 모든 것에 기울인 정성을 보여준다.      

이준기가 자신의 미니홈피에서 밝힌 바처럼, 제작진과 스태프, 연기자 모두의 소고와 노력이 없었다면, 명품 드라마 <개․늑․시>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드라마 역사상 새로운 장르의 탄생임에 의미가 크며, 제작진․출연진 모두가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는 계기였을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새로움에 도전하는 훌륭한 작품이 많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2기 티뷰 기다단>에 응모합니다.



태그:#개늑시, #개와늑대의시간, #이준기, #정경호, #남상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