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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송 보호소 전경'
ⓒ 이진영

@BRI@경기도 고양시 OO동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의 야산언덕에 한 천사가 살고 있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외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앉은 그 마을에 도착하자 차 소리에 응답하듯 일제히 개들의 합창이 온 마을에 울려 퍼진다.

김미순씨(46), 깡마르고 작은 체구의 그녀는 다소 멋쩍어하며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500여 평의 공간에 커다란 비닐하우스와 부엌이 딸린 단칸방 조립식 건물이 있는 그곳이 그녀와 자식과도 같은 개들의 보금자리이다. 비닐하우스 안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곳에는 약 165마리의 개들이 살고 있다. 전 주인에 의해 버려졌거나 학대를 받다가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에 의해 구조되어 온 경우와 길을 잃고 거리를 헤매다 구조되어서 이곳으로 오게 된 경우 등의 사연으로 이곳에 입소한 개들이다.

실내를 칸막이로 나누어서 개의 크기나 성별, 그리고 친한 개들끼리 모아두거나 큰 개들은 따로 분류해서 수용하고 있었다. 덩치가 크거나 신경이 예민하고 사나운 개들은 따로 격리를 시켜야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서둘러 사진을 찍고 그곳을 나와 김미순씨의 거처로 들어갔다. 거처 안에도 역시 개들이 있었다. 감기가 걸리거나 아픈 개들은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서 겨울동안 실내에서 지내도록 한다고.

▲ 김미순씨의 거처 -아픈 강아지들은 실내에서 지낸다-
ⓒ 이진영

방바닥이 차가웠다. 왜 보일러를 가동시키지 않느냐고 했더니 가동은 하고 있지만 기름을 아끼기 위해 냉기만 가시게끔 미미하게 가동하고 있다고 했다.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열악한 환경에서 165마리의 개들을 돌보면서 지내고 있는 그녀, 안쓰럽다 못해 미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고통은 그 누가 다독여줄까

1992년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살 때 길에서 헤매던 강아지를 데려와 키우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왜 그렇게 버려진 개들이 눈에 많이 띄는지 한 마리 두 마리 데려와 키우다가 10마리가 되고 세 들어 살던 집에서 쫓겨 나와 경기도 고양시로 이사 오게 되면서 20마리가 되고 다시 또 30마리가 되었다.

30마리가 넘어서면서부터 그녀에게 말할 수 없는 생활고가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신문에서 동물구조협회에 봉사하러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고, 도와달라는 전화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일 년 동안 매월 사료 15포대씩 후원을 받았다. 또 그분들의 주선으로 당시(2003년 경) 개그맨 김국진씨가 운영하던 애완방송에 그녀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그러나 후원금은 들어오지도 않고 늘어난 것은 지금의 개들뿐이었다고 한다. 이후 SBS TV방송국 프로그램인 '동물농장'에서 삼송보호소를 소개했지만 역시 약간의 방송출연료 외에는 별다른 도움도 받지 못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보호소에 개를 버리고 가거나 맡기러 오는 바람에 지금처럼 개의 수가 늘어나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때 개들을 받지 말지 왜 받아서 이렇게 고생하느냐고 물었다. 개들을 맡아주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키거나 개장사에게 팔아버린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받거나, 사람들이 맡긴 개의 사료비를 끝까지 지원해준다고 약속해놓고 처음 몇 달 동안은 사료비를 보내다가 흐지부지 연락을 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단다. 결국 개를 장난감처럼 키우다가 이런저런 핑계로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이나 불쌍하다고 구조는 했으나 끝까지 책임지지 않았던 무책임한 사람들로 인해서 그녀는 지금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 삼송보호소 실내 전경
ⓒ 이진영
누구도 그녀를 힐책할 자격이 없다

그녀는 원래 화가였다. 흔히 말하는 잘 나가던 시절에는 열두 폭 병풍을 그려주고 수 천만 원을 받았다. 그래서 전에는 꽤 윤택한 생활을 했었다. 그런데 보호하는 개들이 늘어나면서 먹이고 병원비로 쓰다 보니 모아두었던 돈은 바닥이 나고, 설상가상으로 그림 그릴 시간도, 공간도 없어서 그림을 그릴 형편이 못되었다.

165마리 개들에게 밥 주고 물주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 하루에 세 번 씩 밥 챙겨주고, 오물을 치우고, 청소하다 보면 어느덧 해가 지고, 녹초가 된 몸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지경이다. 게다가 병든 개들 돌보는 일이며,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눈총과 잔소리에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는 그녀에게 그림을 그리며 사는 삶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사진을 찍으려 하자 한사코 만류한다. 렌즈 앞에서 부끄러워할 만큼 초라한 모습으로 변한 자신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으리라. 무작정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 가여운 생명들을 거두고 사는 그녀, 그녀야말로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이 시대에 몇 안 되는 '천사'이다.

아마도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람이 먼저 살아야지 개를 거두느라고 제 인생을 포기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라고. 그러나 동물에 대해서는 비정하고 야박하기까지 한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그러한 충고는 김미순씨 같은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된다. 아니 사람들은 그리 말할 자격이 없다.

산에는 온통 올무며 덫을 놓아 싹쓸이 밀렵을 해대는가 하면, 몸에 좋다면 무엇이든지 잡아먹는 나쁜 보신습관이며, 일상적으로 개고기를 먹는 것이 무방비상태로 만연해 있는 이런 사회가 과연 동물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진정 이해할 수 있을까.

ⓒ 이진영
강력하고 구체적인 동물보호법이 절실하다

지난 1월 수년간 논쟁을 거듭했던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드디어 통과되었다. 선진국들에 비교하면 한참 늦었다. 그래도 일단 동물보호법이 통과가 되었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 통과된 동물보호법에서도 김미순씨처럼 선의로 사설보호소를 운영하는 경우 정부차원에서 지원해주는 법은 찾아볼 수 없다. 하기야 이제 겨우 첫 걸음을 뗀 것이나 다름없는 동물보호법이니 기대하는 것도 무리인 듯싶다.

지방자치단체의 시, 군, 구에서 개인에게 위탁하여 운영하는 동물보호소는 있지만, 유기동물을 한 달 정도 보호하면서 주인이 나타나지 않거나 입양이 되지 않는 경우엔 그 동물이 건강하든 아프든 상관없이 안락사를 시켜야 한다. 개체 수 관리를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는 하지만 어찌되었건 야박한 인정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은 유기동물을 구조하면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동물위탁보호소에는 절대로 데려가지 않고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보호소에 맡기거나 사비를 들여 가정에서 돌보다가 좋은 가정에 입양시키는 일을 한다. 애써 구조한 강아지가 죽을 날을 기다려야 하는 곳에는 데려다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희생적인 봉사를 하고 있는 회원들의 경제적, 정신적 부담은 참으로 무겁다. 유기견들을 가정에서 돌본다는 것은 곧 온 가족에게도 큰 부담이 되는 것 또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떠맡아야 할 일을 개개인이 동물을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로 사회의 큰 '이슈' 하나를 떠안고 있는 셈이다.

한 편에서는 버리고, 또 한 편에서는 한 마리의 생명이라도 더 구조하려고 아등바등하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개고기 시장까지 흘러 들어간(상당수의 유기견이 개고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간다고 한다) 유기견을 맛있는 식사로, 술안주로 즐기고 있는 이 모순 된 사회의 악순환의 고리를 하루빨리 강력한 제도적 장치로 끊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는 유기견을 안락사해서 개체수를 조절하거나 재정적인 면을 해결하려는 근시안적이고 소모적인 정책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대책으로 유기견 발생을 억제하는 데 더욱 적극 연구하고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 통과 된 동물보호법에 반려동물 등록제와 동물 번식업자들의 등록제가 있다. 정부는 더욱 구체적이고 단호한 실행법으로 키우는 사람이나 번식을 해서 파는 사람 모두에게 엄격한 규제와 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또한 등록제와 아울러 생명을 함부로 여기고 유기 하는 사람들에게 부과하는 무거운 벌금을 통하여 윤리적이고 올바른 반려동물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 김미순씨 그녀도 현재 건강이 매우 좋지 않다.
ⓒ 이진영
사설보호소의 한계, 이젠 정부가 나서야 한다

대부분의 사설보호소가 형편이 매우 열악하고 어렵다보니 후원하는 모임들이 생겼다. 삼송보호소 지킴이 김미순씨에게도 유기견을 데려다 키운 지 약 11년만에 작은 후원 모임이 생겼다. 다음카페 '삼송 천사들의 따스한 뜨락'이라는 모임이다. 2003년 12월에 생긴 후원카페이지만 현재 회원은 겨우 약 600여명이다. 회원 중에는 미성년자나 학생들이 많아 후원금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후원금을 내는 회원이 20명도 채 안 되다보니 김미순씨는 매일 사료와 병원비며, 연탄 걱정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다.

한 달에 필요한 운영비가 어느 정도냐고 물었다. 자신은 굶고 살아도 상관없지만 개들을 위한 사료비로 약 150만원이라도 꼬박꼬박 들어왔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내쉰다. 게다가 동물병원 대여섯 군데에 치료비가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까지 외상이 있어서 개들이 아파도 이젠 염치가 없어서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고 있다고. 그 왜소한 몸으로 감당해내기 참으로 어렵고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삼송보호소가 지금 이곳으로 이사 온 지 두 달이 넘었다. 전에 있던 곳에서 땅주인과 여러 가지 마찰이 있었던 일로 땅주인이 개들을 압류하여 개고기 감으로 경매시장에 강제로 내놓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후원카페 회원들이 부랴부랴 돈을 모아서 경매 하루전날 개들을 모두 구하고,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이사는 왔으나 그녀가 피곤한 몸을 누일 장소도 없었다. 임시로 지금의 비닐하우스를 짓고 개들과 함께 비닐하우스 안에서 한 달 보름을 지내던 중 후원카페 회원 한 사람이 300만원을 들여 지금의 부엌이 딸린 단칸방 조립식 건물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그 후원자도 넉넉지 못한 형편으로 화장실은 지어주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도 화장실도 없이 지내고 있다.

▲ 보호소 앞에서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김미순씨
ⓒ 이진영
그녀는 공간만 있으면 그림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일 년에 한두 작품이라도 틈틈이 그려서 팔 수 있다면 사료비 걱정이라도 덜 수 있겠다며 소박한 꿈을 조심스레 내비친다. 방 한 칸 크기의 작업실을 만드는 데 비용이 얼마나 필요하냐고 물었다. 백만 원 정도면 조립식 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언덕 위 비닐하우스 앞에서 마른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그녀를 뒤로 하고 돌아오면서 아파 오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제발 어디선가 마음씨 좋은 후원자가 또 불쑥 나타나서 그녀의 작은 꿈을 이루어주기를.

후기

며칠 후,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또 한 분의 후원자가 화장실을 지어주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꺼칠한 피부로 얼굴 하나 가득 주름을 만들며 활짝 웃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니 가슴이 또다시 아려온다.

덧붙이는 글 | 미디어 다음과 SBS U포트에 송고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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