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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일 시청 앞 태평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
ⓒ 여희수
이라크 전쟁 발발 1주년이자 탄핵소추안이 가결된지 1주일 정도 지난 20일, 광화문 일대의 촛불은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5만에서 13만으로 불어나 있었다. 해가 저물고 촛불은 더욱 빛을 발했다. 2년전 월드컵을 응원했던 붉은 빛은 동아일보 사옥의 현대적 건물과 조명과 함께 거리를 아름답게 밝히고 있었다.

‘엄마, 탄핵이 뭐야?’라고 묻는 어린아이의 목소리에서부터 스티커를 나눠주는 아저씨, 서명운동을 받거나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 각종 온라인 모임의 오프라인 활동 등 다양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노동조합, 이익단체 등이 주최하는 집회와는 달리 고요했으나 뜨거웠고, 마이크와 앰프소리보다는 시민들의 외침이 더 컸고 사람들의 입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같은 날 집으로 돌아와서 KBS 1TV <생방송 심야토론> '급변하는 민심, 어떻게 볼 것인가' TV토론회를 본 나는 그 날의 기분을 완전 망치고 말았다.

토론회 출연자들은 촛불행사 현장에 모인 사람 수를 가지고 '조작된, 동원된 인원'이라고 생떼를 부리고 있었다. 도대체 10만이 넘는 인원을 누가 어떻게 조작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일부 열린우리당이 조직적으로 움직였을 수도 있고, 촛불시위에서의 정치적 행위는 자제해야 옳다. 그러나 이날 시청 일대에 모인 시민을 생각했을 때, 이는 트집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이 토론회가 건전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프로그램을 끝까지 봤지만 실망은 전혀 누그러지지 않았고, 이를 지켜본 내 판단은 더욱 굳건해졌다.

대의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분노의 표시로 사람들이 집회를 여는 것은 민주주의 시민의 또다른 권리이자 자유이다. 이어 지난 21일은 탄핵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였는데, 개인적으로 어떤 분노도 느끼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모여서 의사표출을 할 자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집회에 모인 대중을 조작된, 동원된 인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모인 사람들의 절대적 수를 떠나, 인간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모독이다. 더욱 확실한 것은 아직도 야당의 국회의원들은 민의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것. 반성은 부재하고 오래된 생각의 틀은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에 알린 셈이다.

법적 절차의 준수, 3분의 2를 넘겼다는 요건만을 갖춘 채 민주주의를 위장한 야당의 행동은, 오랫동안 감춰온 정치적 불신, 혐오감의 표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보여주었다. ‘쿠데타’라는 말이 나온 것도 193명의 국회의원들이 탄핵을 찬성한 20%의 국민의 의향을 과도하게 반영했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라는 철학자는 유태인 학살에 앞장선 나치전범이 법정에서 '자신이 할 일을 해야했을 뿐이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오히려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고 진술한 것에 충격을 받고 '생각없이 사는 삶은 악행을 불러온다'고 했다.

스스로 반성할 줄 모르고 자신의 가치 체계에 무비판적으로 살아온 사람은 사유가 가져오는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기존의 것에 집착하게 된다. 친일파-수구기득권 세력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어림잡아 13만이 모인 지난 20일 촛불행사에는 다양한 목소리,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계층, 직업, 성향이 모두 다름에도 한자리에서 자신의 생각을 집단적으로 재확신하는 것은 즐거움이고 새로운 정치의 힘이다.

이제, 민의를 읽지 못하는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릴 차례다. 한편으로는 지도부에 항거하고 사퇴를 요구하는 의원들도 있다고 하니 칼자루를 쥔 국민들은 올 4·15 총선에서 잘 가려 뽑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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