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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밤 늦은 시간의 좌석 버스는 유쾌한 공간이 아니다. 준비되어 있는 좌석보다 버스를 타는 사람이 많은데 좌석 버스이기 때문에 통로가 좁아 사람들은 붙어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타인의 입에서 풍겨오는 술냄새와 청소 덜 된 에어컨으로 인해 세균 바람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차라리 잠들어버리는 게 상책이기도 할 것이다. 타인과의 경계 거리가 30cm라고 했던가.

오늘 집에 올 때는 어찌하여 운 좋게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앉은 내 옆으로 사람들이 섰다. 이어폰을 꽂고 거의 멍하니 앉아 있는데 자꾸 나를 치는 것이 있었다. 내 옆에 선 아저씨의 가방이었다. 가방은 무거워 보였다. 그러나 내가 무릎에 올리고 있는 가방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고 언젠가 고등학생의 가방을 받아 주었다가 가방에 묻어있던 흙과 먼지 때문에 흰 바지가 온통 얼룩졌던 좋지 않은 기억도 있기 때문에 선뜻 가방을 달라 그러기도 좀 그랬다. 그랬는데 그 가방은 자꾸 나를 쳤다. 처음에는 버스의 흔들림에 따라 어쩌다 한 번씩 부딪히던 것이 버스가 흔들리지 않을 때도 내 허벅지를 건드렸다.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아저씨>에 대하여 내가 갖고 있는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줌마>들에 대해서 비아냥거리듯이 나도 내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저씨들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저씨들. 그들은, 후줄근하고 추레하고 염치 없고 입 냄새 심하고 비루하고 고루하고 무식하고 지저분하다. 권위가 없는데 권위적이며 잘 모르면서 모든 것을 아는 척 한다. 또 젊은 여자에 대해서는 어찌 그리 걸맞지 않은 욕심을 부리는지. 게다가 지하철에서 한 번 치한에게 당할 뻔한 일이 있고 나서부터는 나는 아저씨들을 혐오하게 됐다. 드러내놓고서는 아니지만.

가방은 내 허벅지를 점점 자주 건드리기 시작했다. 강도도 세지기 시작했다. 일단 내 가방으로 막았다. 그리고 외면해 버렸다. 내 가방은 그 아저씨의 가방에 의해 일그러져 있었다. 기분이 나빴고, 빨리 집에 닿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아가씨!"
돌아봤다.

"이런 가방 좀 받아주면 안 되나? 우리 집에도 아가씨만한 딸이 있는데 아가씨 정말 싸가지없고 한심해서 못 봐주겠네."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러더니 그 아저씨는 계속 궁시렁대면서 차에서 내렸다. 좌석 버스 안은 조용했다.

다음 정류장에서 나도 내렸다. 거 참, 그 아저씨 나이 먹었다고 유세하네, 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리면 그만일텐데 내 생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만약에, 내가 서 있었다면 내가 무거운 가방을 들고 있었다면 그 아저씨는 아주 당연하게 내 가방을 받아 주었을까? 받아주지 않았다면, 내리면서 내가 그랬을까?

"아저씨. 이런 가방 좀 받아주면 안 되나요? 우리 아빠도 아저씨만한 나이신데 아저씨 정말 자기 생각밖에 안 하시는 분이네요."

모두들 힘들고 모두들 유쾌하지 않은 상황은 여러 곳에서 자주 벌어진다. 그런데 스스로도 나이가 어지간히 들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런 상황에서 당당하다. 내가 특별히 싸가지 없는 아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그 상황에서 왜 당당한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그들에게 내가 특별히 친절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내가 양보를 해야 한다면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었다는 것을 어떤 특권처럼 이용하는 사람들치고 자신보다 나이 더 많은 사람에게 잘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그런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요구를, 나는 흔쾌히 들어주기 힘들다. 그들이 이 나라의 경제를 부흥시켰고 이 나라를 일으킨 역군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나는 비소가 나온다. 어느 세대건 그 세대만이 담당할 수 있는 (혹은 해야하는) 시대적 역할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해냈다고 해서 자랑하는 것이 이해가지 않는다. 늙어간다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일 뿐인데 그걸 왜 특권이라 여기는가?

덧붙이는 글 | 이러한 내 생각에 대해 욕하실 분은 마음껏 욕하시고, 단 왜 내가 욕을 먹어야 되는지를 <어른이니까 공경해야 한다> 식의 말 외의 근거를 대서 설명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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