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14 18:39최종 업데이트 23.08.1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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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붕괴 사고가 발생해 2명이 매몰된 경기도 안성시 옥산동의 한 신축 상가 공사장 모습. 이날 사고는 9층 규모의 건물에서 9층 바닥면이 8층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일어났다. 매몰된 2명은 베트남 국적의 형제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 연합뉴스

 
"하부에 지지대를 완벽하게 갖춰놓고 위에 콘크리트 타설을 해야 되는데, 지금 사고 난 곳 사진을 보면 거더(들보) 아래에도 동바리(지지대) 같은 게 안 보이잖아요. 다음날 태풍 온다니까 아래층 작업도 제대로 안하고 그냥 슬라브(천장) 타설 하다 무너진 거 같아요." - 40년차 형틀공 A씨

"공구리(콘크리트) 타설은 위험 작업이에요. 경험 많은 숙련공들은 위층에서 타설하고 있으면 그 밑으론 절대 안 갑니다. 혹시라도 무너지면 큰일나잖아요. 회사 입장에선 외국인 노동자들이 편하겠죠. 아무리 공기 빠듯하다고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베트남 인부들 그 아래서 작업하라고 밀어 넣으면 되냐고요." - 30년차 타설공 C씨



지난 9일 경기도 안성의 한 신축 상가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중이던 천장이 붕괴돼 아래층인 8층에서 일하던 베트남 출신 응우엔 형제(30·23세)가 깔려 사망한 가운데, 현장 노동자들은 "무리한 속도전이 낳은 참사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사고 다음날인 10일 태풍 '카눈'의 한반도 관통이 예상되자, 아래층의 벽·기둥·들보·임시 지지대 등이 다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천장(윗층의 바닥면)에 콘크리트 공사를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콘크리트 타설 중인 윗층이 내려앉아 아래층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매몰된 사고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작업 순서상 윗층 바닥면 타설은 아래층의 벽과 기둥, 지지대가 다 설치된 뒤에야 마지막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결국 아래층 작업이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서두르다 인명 피해가 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경기 평택·안성 일대에서 일하는 40년차 형틀공 A(60)씨는 14일 통화에서 "구조물 틈으로 공구리(콘크리트)가 새거나 터지는 일은 많아도, 이번처럼 공구리 하중을 못 이기고 슬라브가 통째로 무너져 내린 어처구니 없는 사고는 한 번도 본적이 없다"라며 혀를 찼다. A씨는 "공개된 사고 현장 사진을 보면 응우엔 형제가 깔린 8층에 동바리(지지대) 설치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급하게 콘크리트를 타설한 것 같다"라며 "태풍이 온다고 하니까 그 전에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건설사들은 비용을 아끼려고 최대한 타이트하게 타설 날짜나 절대 공기를 정한다"라며 "그러니 예상치 못한 태풍이나 폭우가 예보되면 '무조건 그 전에 끝내라'는 식의 지시가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고로 변을 당한 베트남 형제 노동자의 유족들 역시 "태풍이 오기 전 공사를 서둘렀던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30년차 형틀 노동자인 B씨(54)는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는 타설공이나 형틀공의 경우, 건설사들이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루베(1㎥)당 얼마, 헤베(1㎡)당 얼마 등 물량을 기준으로 불법 재하도급을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라며 "한쪽에선 공구리 치고(콘크리트 타설) 한쪽에선 철근 엮고 있는 현장도 수두룩하다"고 했다. 불법 재하도급이 있었는지 여부도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태풍 온다고... 위험 작업에 외국인 밀어 넣으면 되나" 

B씨는 "위험 작업 시 상하 동시 작업은 금지해야 하기 때문에 사망한 노동자들이 어떤 일을 하다 매몰됐는지 조사가 돼야 한다"고도 했다. "외국인 중에서도 특히 불법 체류자들은 신분상의 취약점 때문에 위험 작업 지시를 받아도 거부하지 못하고 군말 없이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사망한 응우엔 형제 중 형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이들 형제가 9층 바닥면이 무너질 당시 아래층(8층)에서 정확히 무슨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형제는 한국에서 각각 7년, 2년 정도 머물며 건설 현장에서 일한 것으로 전해진다.

30년차 타설 노동자인 C(55)씨는 이들 형제가 저숙련 노동자라는 점에 주목, 숙련공이 투입돼야 할 위험 업무에 등 떠밀린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C씨는 "위층에 있는 타설공이 아래층부터 올라오는 벽이나 기둥을 타설할 때, 아래층에 있는 형틀공 등이 제대로 공구리가 쳐지도록 신호를 주고 돕는 걸 '도방을 본다'고 한다"라며 "도방 작업은 붕괴·매몰 사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적어도 10년 이상 된 숙련공이 맡아야 한다"고 했다.

C씨는 "경험 많은 기능공들은 타설 중인 슬라브 밑으로는 가지 않고, 안전한 곳에 서서 망치를 두드리거나 소리를 통해 공구리가 잘 들어가고 있는지 판단한다"고 했다. 그는 "공구리가 터질 조짐을 보이거나 하자가 발견되면 '폼 타이'(콘크리트 타설 시 벽·기둥을 둘러싼 거푸집이 벌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부재)를 손보는 등 긴급 대처 능력이 필요하다"면서 "이는 저숙련 노동자들이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래층 도방 작업에 투입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노동부 "사고 원인 등 수사중"... 지난해 건설 현장서 외국인 47명 사망
  

10일 오후 경기도 안성의 한 장례식장. 9일 옥산동 신축 상가 건설 현장에서 사망한 베트남 출신 형제 노동자 A(30), B(23)씨의 지인들이 빈소를 찾았다. ⓒ 김성욱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지난 11일 시공사인 기성건설과 하청업체 등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수사에 착수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사고 원인을 묻는 질문에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기성건설 측에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따르면, 사망한 베트남 응우엔 형제의 사인은 '외상에 의한 뇌 손상 및 질식사'로 보인다. 현장 노동자들은 "콘크리트에 사람이 매몰되면 숨이 막히고 기도를 통해 콘크리트가 몸 안으로 들어가기도 한다"라며 "콘크리트가 굳으면 화학 작용이 일어나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화상을 입기도 한다"고 했다. 지난해 건설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402명 가운데 47명(11.7%)이 외국인 노동자였다.

[관련기사] 한날 사망한 베트남 형제... "콘크리트가 그리 쉽게 무너지나, 이해 안돼" https://omn.kr/255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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