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공사장에 빨간 펌프카와 레미콘차가 보이면 큰일 납니다

[아파트 철근공 잠입취재②]
현장에서 본 '순살 아파트' 논란

지난 4월 인천 검단 신도시에 지어지던 GS건설 아파트의 어린이 놀이터 부지가 무너졌다. 입주를 불과 7개월 앞둔 이 아파트가 붕괴한 이유는 다름 아닌 ‘철근 누락’. <오마이뉴스> 기자가 지난 9월 한달간 대전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 철근공으로 일하며 보고 겪은 현장을 전한다. [편집자말]
대전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 아침 조회인 TBM(Tool Box Meeting) 시간에 베트남 철근공들이 대거 모여 있다. ⓒ 김성욱
"이게 뭐야!"

아침 6시 50분 TBM(Tool Box Meeting) 시간이었다. TBM이란 일종의 조회로, 작업 시작 전 그날 예정된 공정을 간략히 설명하고 안전교육과 체조를 하는 순서다. 공사장의 고요를 깨뜨린 쪽은 앞 동이었다. 수십 미터 떨어진 건너편 동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호통 소리에 힐끗 봐도 스무명이 훌쩍 넘는 베트남 철근공들이 일제히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단단히 화가 난 듯한 관리자는 철근으로 조립해 올린 옹벽과 옹벽 사이를 오가며 한참을 씩씩댔다.

"저거 또 데나우시 난 거 아녀?"

허리 돌리기를 하면서도 앞동의 소란에 눈을 떼지 못하던 30년차 철근공 김씨(60)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건설 현장에선 유독 일본어로 된 은어를 많이 썼는데, '데나우시'란 공사가 잘못돼 다시 작업해야 하는 상황을 일컬었다. 현장 경력 20~30년이 기본인 내국인팀 철근공들은 자신이 책임졌던 곳을 다시 수정해야 하는 '데나우시'를 수치로 여겼다.

"어제도 내가 저쪽 동 갔다 왔잖여. 글쎄 '다데'가 이만큼 벌어져 있더라니께? 옘병헐, 왜 맨날 베트남들이 싸지른 똥을 우리가 치워야 하냐고."

걸쭉한 사투리로 사람들을 잘 웃겼던 충남 청양 출신 김씨는 요 며칠 팀과 떨어져 있었다. 베트남팀이 낸 '데나우시'를 수정하기 위해 다른 동으로 동원된 터였다. 벽체 상부 철근 일부가 도면보다 밖으로 돌출돼 후속 공정인 거푸집 작업에 애를 먹은 모양이었다.

베트남 철근공들이 땡볕에 쭈그려 앉아 바닥 철근 작업을 하고 있다. ⓒ 김성욱

김씨가 말한 '다데'란 수직으로 세운 철근을 뜻한다. 다데와 90도로 맞대는 철근, 즉 수평으로 들어가는 철근은 '후킹'이라고 불렀다. 지하주차장의 옹벽을 구성하는 수직 철근들이 똑바로 서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게 문제였다. 벽체의 높이, 즉 지하층의 층고는 5m쯤 됐는데 이 정도 높이면 아래쪽 철근이 조금만 직각이 안 돼도 위쪽에선 큰 오차가 났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지 한국팀 철근공들은 베트남팀의 실력을 못 미더워했다. 김씨가 말했다.

"어떨 땐 결속을 얼마나 건너 뛰었으면 손으로 몇 번만 흔들어도 철근이 술술 뽑힌다니께? 보통 아파트 주거동은 층고가 2700(mm) 정도 돼. 그럼 간격상 마지막에 2650(mm) 높이에다 후킹(수평 철근)을 하나 달아야 되거든. 근데 이놈들이 까치발 들어도 안 닿고 귀찮으니께 그냥 대충 손 닿는 데다 낮춰서 달고 나오는 거여. 그럼 그만큼 벽 위쪽엔 철근이 비고 공구리(콘크리트)로만 채워질 거 아녀. 그래서 공구리에 금이 가고 크랙이 생기는 거거든. 벽에 물 새고 그런 게 다 그래서 그런 겨.

또 왜 우리 안방 같은 데 창문들 많잖어. 창문 모서리가 균열이 제일 잘 나거든. 그것도 그 주변에 보강근을 제대로 안 넣어서 그려. 베트남인들이 그런 걸 알겄어? 입국한 다음날부터 바로 깔꾸리(철근결속기구) 돌리는 애들인디."
현장 철근공들이 본 '순살 아파트' 사태
GS건설 검단 아파트 붕괴 사고 현장 지난 4월 29일 GS건설이 시공하던 인천 서구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1층과 2층의 지붕이 무너졌다. 사진은 지난 5월 2일 사고 현장 모습. ⓒ 연합뉴스

일하는 틈틈이 경력 많은 철근공들에게 '순살 아파트' 사태를 촉발시킨 GS건설 검단 아파트 붕괴사고에 대해 물었다. 경찰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사고 조사를 벌인 국토부는 지난 7월 설계와 시공 단계에서 전단보강근이라는 철근이 빠진 게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씨(52) : "공구리(콘크리트) 문제도 컸을 거야. 어쨌든 철근은 공구리 속에 들어가잖아. 바깥에서 처음 하중을 받는 건 공구리고. 안에 철근 빠졌다고 무너질 거면 전국의 아파트들 다 무너졌게? 사고 난 데 사진 좀 봐봐. 공구리 양생이 제대로 돼서 철근이랑 공구리가 잘 붙어서 굳었으면 저렇게 철근만 깨끗하게 쏙 빠지질 않아. 공구리 양생 기간을 제대로 안 지켰다는 얘기야. 아니면 공구리 자체가 불량품이었거나. 비 올 때 타설해서 물이 많이 섞였을 수도 있고. 그런 건 허다해."
안씨(50) : "이음 문제도 있었을 거야. 구간이 넓으면 공구리를 한번에 안 치고 나눠서 친단 말이야. 우리도 이쪽 먼저 치고 나중에 저쪽 치면서 이어가잖아. 그 안에 철근이 총 10m 들어가야 한다고 쳐봐. 근데 자재로 들어오는 철근 중에 제일 긴 게 8m 짜리지? 그럼 모자라는 2m를 어떻게 해? 이어줘야 한다고. 그렇다고 딱 2m짜리 철근을 하나 더 가져다 붙이는 게 아니고, 예를 들어 구조상 1m는 겹치게 이어줘야 한다는 게 다 정해져 있어. 이런 걸 '이음'이라고 해. 그럼 3m짜리 철근을 가져와서 원래 있던 8m짜리 철근이랑 1m는 겹치게 놔야겠지? 근데 이런 걸 제대로 안하고 대충 2m 30cm 짜리 갖다 놓고 30cm만 겹쳐놨다든지 하면 철근이 위에 하중을 못 견디는 거야."
김씨(62) : "나는 이 무량판 공법 자체가 문제라고 봐. 거기 사고 난 데도 그렇고, 한 5년 전부터 무량판 공사가 막 늘어났거든. 근데 자꾸 뉴스에서 이상하게 나오대? 뭐? 무량판은 죄가 없다? 무량판이 좋다? 아니 무량판이 좋으면 철근 좀 빠졌다고 무너지긴 왜 무너져? 무량판이 뭐여. 원래 기둥을 이어주는 들보가 있고 그 위에 천장을 놓는 건데, 무량판은 들보 없이 천장을 놓는다는 거 아녀. 그럼 당연히 더 약하지. 아무리 책상머리 앉아서 펜대 굴려서 계산해보고 '이렇게 해도 괜찮다' 해도, 실제로 현장에서는 이렇게 철근이 빠지기도 하니까 더 확실하고 안전한 공법을 써야 맞는 거 아녀."
이씨(61) : "나는 진짜 이해가 안돼. 공구리 치기 전에 감리가 다 확인을 한단 말이야. 너도 봤지? 우리 현장도 감리가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보고 가잖아. 근데 감리가 전단보강근 안 돼있는 걸 모른다? 애초에 아예 제대로 보질 않았겠지. 뭐 때문인진 몰라도 엄청 빨리, 급하게 공사했다는 얘기야."
ⓒ 이종호
1년 안에 완성되는 아파트 골조… "문제는 공기"
한 철근공이 고소작업대에 올라 지하주차장 벽체에 들어갈 철근 작업을 하고 있다. ⓒ 김성욱

철근공들은 부실공사 대부분이 '공기', 즉 공사기간과 상관이 있다고 했다. 단지가 크든 작든 아파트는 3년 안에 입주까지 완료되는데, 이중 철근 일을 포함해 건물의 기본 형태를 완성하는 골조공사는 1년이면 다 끝난다고 했다.

골조공사는 철근을 배치한 뒤 거푸집을 대고, 콘크리트를 부어서 건물의 골격을 만드는 과정 전체를 말하는데, 구조체의 부실 여부가 여기서 결정된다. 골조공사가 끝난 뒤에도 내부 인테리어 공사나 외부 마감, 조경 공사가 이어지지만 일종의 '포장'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1년이면 '포장' 안 된 30층 아파트가 다 지어진다는 얘기다.

"골조할 때, 원청 애들은 직접 공사는 안 하면서 타설 날짜만 딱딱 정해. 예를 들어 '15일, 30일에 공구리(콘크리트) 친다'고 하면 그 날짜를 절대 안 바꾸는 거야. 그걸 '절대 공기'라고도 하잖아. 근데 공사가 어디 사람 맘대로 착착 되냐고. 우리도 이번 달에 비 와서 며칠 일 못했잖아. 근데도 타설 날짜는 항상 그대로란 말야.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X빠지는 거야. 빨리빨리 하라고 쪼니까 50% 결속할 거 30%만 하고, 어떨 땐 그냥 안하고 넘어가고. 비 억수로 오는데도 공구리 치고. 이러니까 잘못하면 무너지지."

30년 철근 일로 아들 딸 다 키웠다는 김씨(61)가 말했다. 그는 "바깥에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공사하다 잘못돼서 무너진 걸 다시 시공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했다.

철근 등 자재들이 며칠째 내린 비에 그대로 노출됐다. ⓒ 김성욱

9월 말로 갈수록 우리팀도 공기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9월 중순 이후에만 가을 장마처럼 7일간 비가 내려 일을 못한 탓이었다. 마지막 주엔 유일한 휴일인 일요일에도 나와 일을 해야 했다. 눈치 빠른 고참들은 "아무래도 9월말 추석 연휴 들어가기 전에 공구리 치려나 보지"라고 했다.

고참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한가위 연휴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 출근일이던 9월 27일, 오전부터 수십대의 레미콘 차량들이 공사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장 안에 자리가 없어 펜스 바깥 주변을 둘러싸고 줄을 설 지경이었다. 평소 한 대나 보일까 말까 하는 60미터 붐대 펌프카도 다섯 대 넘게 와있었다.

레미콘차는 콘크리트가 굳지 않도록 후미에 있는 대형 믹서를 돌려가며 운반하는 트럭이고, 펌프카는 레미콘차에서 콘크리트를 받아 필요한 곳으로 쏴주는 차다. 펌프카 특유의 긴 붐대는 항상 빨간색이었는데, 이런 차량들이 보이면 그날은 '공구리 치는 날'이란 뜻이었다.

비오는 날 레미콘차와 빨간 펌프카를 목격한다면
지난 9월 대전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타설 작업 중 비가 내리고 있다. 우중 타설은 콘크리트 강도를 낮춰 부실 공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다행히 지나가는 비였고, 1~2분만에 그쳤다. 현장 노동자들은 공기 압박을 받으면 우중 타설도 자주 이뤄진다고 말했다. 앞에 두대가 레미콘 차량, 뒤에 빨간 붐대가 세워진 것이 펌프카다. ⓒ 김성욱

그런데 그날 낮 12시, 하늘에서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펌프카들은 자리를 잡고 쉴새 없이 콘크리트를 쏟아내고 있었고 끝도 안 보이는 레미콘 차량 행렬은 정신 없이 믹서기를 돌리고 있었다. 비가 오든 말든 타설을 강행할 분위기였다. 우중 타설은 레미콘의 물 비율을 높여 콘크리트 강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표적인 부실공사 사례로 꼽힌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날 비는 1~2분만에 그쳤다. 그저 잠시 지나가는 비였던 것이다. 만약 그날 비가 계속 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원칙대로 레미콘 차량들은 모두 돌아가고, 굳어서 쓸 수 없게 된 콘크리트들은 폐기 처분됐을까? 노동자들은 내 질문 자체를 비웃었다.

"회사가 미쳤게? 저 돈이 다 얼만데."

김씨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나는 비가 와서 철수하는 날이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장 주변을 돌며 펌프카와 레미콘차가 있는지 살폈다. 몇번은 다수의 레미콘차와 빨간 펌프카가 현장 주변에 와있는 걸 발견하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회사가 날씨를 기가 막히게 예측하는 건지 실제 타설이 이뤄질 때면 매번 비가 그친 뒤였다.

공사 현장 바깥까지 레미콘 차량들이 끝없이 줄지어 있다. ⓒ 김성욱
빨간색 긴 붐대를 가진 펌프카가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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