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8 16:38최종 업데이트 20.11.2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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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그냥 집에 있기로 했어. 요새 어딜 가겠어. 아, 누나네는 모일 거래. 거긴 찐 트럼프잖아."

노스다코타 살 때, 매년 추수감사절이면 가족 모임에 초대해주던 대런네에 안부 전화를 했다. 엄마와 두 누나네, 아이들까지 열댓 명이 모이는 대런의 가족 행사는 우리 추석이나 설만큼이나 시끌벅적했다. 솜씨 좋게 구운 칠면조와 담백한 그레이비와 고소한 북유럽 식 감자 요리를 배불리 먹고 게임을 하며 놀다 쇼핑을 가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대런네도 대런의 엄마네도 각자 자기 집에서 보낸단다. 단, 그의 두 누나네 식구들은 예년처럼 한 집에 모인다고. 대런의 두 누나네가 '찐 트럼프'였던 걸 나는 얼마 전 알았다. 선거를 앞두고 가족들 간의 갈등도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올 추수감사절은 지지 후보의 성향대로 각자 따로 보내기로 결정한 것. 

가장 높은 사망률, 가장 열렬한 트럼프 지역 
  

2일(현지시간) 미국 사우스 다코다 주 키스톤의 러시모어 산에 있는 '큰 바위 얼굴'을 사람들이 관광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독립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3일 이곳을 방문할 예정이다. '큰 바위 얼굴'은 조지 워싱턴·토머스 제퍼슨·시어도어 루스벨트·에이브러햄 링컨 등 4명의 전직 대통령 얼굴이 조각돼 있다. 2020.7.2 ⓒ 연합뉴스

처음 미국에 와 살았던 노스다코타 주는 9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는 겨울이라 할 정도로 추운 동네였다. 투박한 시골 사람들과 이런저런 좋은 추억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곳이 요즘 매일 미국 주요 뉴스를 장식 중이다.

"사우스와 노스를 막론하고 다코타 주에서 매일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가 인구 대비 세계 최고를 리드하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하루 앞둔 25일(현지시간) 아침, <시비에스>(CBS) 기자가 노스다코타 주 파고시 다운타운에서 리포트한다. 다코타 주의 코로나바이러스 사망이 전국적인 이슈가 되면서 이 지역을 돌며 관련 기사들을 매일 보도 중인 데이비드 벡나우드 기자다. 기자 뒤로 영화 <설국열차>를 관람했던 파고 극장이 보인다.

​11월 23일, 노스다코타 보건부는 코로나로 인해 전날 37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바이러스 추적이 시작된 지난 3월부터 계산하면 이 주에서만 900명 가까운 사람이 코로나로 목숨을 잃었다. 이날 오전 나온 검사 결과 1019건의 신규 환자가 확인돼 노스다코타 주의 총 확진자는 7만 4401명이 됐다. 우리나라 남양주시보다 조금 더 많은 인구 76만 주의 인구 대비 확진자가 10%에 육박한다. 

"나도 마스크를 쓰고 싶지만 아무도 쓰지 않잖아요. 혼자만 쓰면 너무 눈치 보여요."

벡나우드 기자가 인터뷰한 청년은 코로나보다 남의 이목이 더 두렵다고 말한다. 대런의 가족을 비롯한 많은 다코타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다. 청년의 말대로 이 지역의 50%가 넘는 사람들은 마스크 없이 쇼핑을 하고 식당에 가고 친구들을 만난다.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11월 23일 정치 전문지 <더힐>은 사우스다코타 정부의 마스크 의무화 거부를 보도했다. 공화당 출신의 크리스티 노엠 주지사는 기록적인 코로나 바이러스 급증에도 마스크 착용에 대해 '개인적 결정'이라며 의무화를 거부하고 있다. 이 주는 11월 12일 하루에만 1821명의 신규 환자가 발생해 확진율 12.2%를 기록 중이다. 여러 우려에도 사우스다코타 주지사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큰소리쳤다.

​​"사실관계는 간단합니다. 마스크 착용, 강력한 록다운, 광범위한 테스트와 추적은 미국이나 해외에서 아무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죠."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는 전 하버드대 교수의 말을 빌려 사우스다코타 주지사의 조치를 비난한다.

"전 세계 다른 나라에서 바이러스 확산을 성공적으로 억제한 공중 보건 조치를 주지사는 비난하고 있습니다. 노엠 주지사의 지도력 부족과 지금의 대응은 '살인'과도 같습니다."
 

크리스티 노엠 사우스다코타 주지사가 2020년 8월 26일 워싱턴DC에서 열린 2020 공화당 전당대회 셋째 밤 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워싱턴대 연구소 소속 교수도 노엠 주지사의 대응을 두고 '어떤 기준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조치'라고 비난한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노엠 주지사의 미흡한 코로나 대응으로 2021년 3월 1일까지 1500여 명이 사망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지사의 대변인은 주민들에게 말한다. ​"오늘은 자유를 위한 좋은 날입니다"라고. 

​​주 정부의 이런 안이한 인식에 대해 가장 분노하는 그룹은 최전선에서 코로나와 싸우는 이들이다. 사우스다코타 주 의사협회(South Dakota State Medical Association)는 주정부의 정책 부재에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다. 

​"의료 최전선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사우스다코타 분들에게 호소합니다. 마스크 착용, 손 씻기, 거리 유지를 지켜 주십시오."

<뉴욕타임스>는 인구 88만 사우스다코타 주의 11월 26일 현재 확진자 수는 7만6142명, 사망자는 849명이라고 알린다. 이 조용한 미국의 시골 주가 전 세계 코로나 사망률을 높이는 주범이 되고 있는데 주지사는 '자유'를 외치며 방관하고 있다.  

추수감사절 2주 후 미국 확진자는?

미국 최대의 명절을 맞아 미국의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는 국민들에게 각각 다른 메시지를 남겼다. 백악관 사이트에 올라온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는 집과 교회에 모여 감사 기도를 드리라는 것이다. 반대로 바이든 당선자는 집에 머무르는 것이 모두에게 선물이고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 했다. 

​미국 국립 전염병 연구소 앤서니 파우치 박사도 연휴를 맞는 미국인들에게 여행 취소와 접촉 금지, 마스크 착용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연휴 미국 내 항공편 이용자는 3백만 명에 이른다. 총 확진자 1324만, 사망자 26만 9천(11월 26일 기준)의 미국 내 코로나 수치가 연휴 이후 얼마나 더 솟아오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노스다코타에 사는 지인은 상대적으로 방역대책이 잘 되고 있는 뉴욕이 부럽다는 이야기를 한다. 잘 모르는 소리다. 25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뉴욕주지사의 예배 참석 규제 행정명령에 대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코로나 예방을 위해 뉴욕 주지사가 교회 모임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이 헌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긴즈버그 판사 사망 후 새로 임명된 보수적인 베럿 대법관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판결이다. 
 

미국 연방대법관 인준청문회 둘째 날인 13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의 상원 법사위원회에 출석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지명자가 발언하고 있다. 2020.10.13 ⓒ 연합뉴스

 
코로나 대응에 적극적인 대통령이 임명됐지만 4년간 달라진 사법부와 지자체들의 변화가 미국 사회를 전염병 대처에 미온적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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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은 네이티브 아메리칸(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농사를 시작한 유럽 이주민들이 추수한 곡식을 나누며 감사를 표했던 역사에 기원한다. 그 네이티브  아메리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다코타 지역이 지금의 코로나 사태에 가장 큰 희생자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슬픈 아이러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2주 전부터 노스다코타 주지사는 전 주에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하도록 조치했다. 급격하게 올라가던 확진자 수가 약간이나마 꺾인 이유다. 

다코타 지역에서 지역의 유력 정치인들과 그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취재하고 있는 <시비에스> 벡나우드 기자는 묻는다.   

"시민들은 마스크 규정을 바꾸기 위해 정치인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변화를 거부했습니다. 마스크 착용을 교육하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면서요. 근데요... 우리는 지금 8개월째 팬데믹 상태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거죠? 얼마나 오랫동안 마스크 착용을 교육시켜야 하는 거죠?"

<카이저 헬스 뉴스>(Kaiser Health News)는 지금 미국에서 1.2초마다 한 명씩 코로나에 확진되고 107초 당 한 명씩 사망한다고 전한다. <뉴스위크>는 추수감사절 10일 후엔 하루 4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예상했다. 팬데믹이 정권을 바꿔냈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여전히 미 전역을 덮고 있다. 2주 후 폭발할 미국의 코로나 그래프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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