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4 07:42최종 업데이트 20.12.14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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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으로 도착한 배심원 소환 레터, 장소, 날짜 등이 적혀있고 텍사스주의 경우 사유 없이 불참 시 벌금이나 구류에 처하기도 한다. ⓒ TurfNet

 
1년 전 카운티 법원에서 편지 한 통이 왔다. 내용물은 배심원 소환장. 배심원이 되었으니 O월 O일 O시 OO법원으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유권자 등록을 바탕으로 랜덤하게 보낸다는 배심원 레터를 처음 받아보고 난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아무한테나 신성한 재판을 맡겨도 되는 거야?'

그 "신성한 재판"을 위해 인쇄된 날짜에 지정된 법정에 가니 법원 서기가 반갑게 맞는다. 그녀는 친절하게 배심 절차를 설명해준다. 필요하면 비디오나 서면으로도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대강의 순서를 익힐 때쯤 판사와 변호사가 배심원 방으로 와서 관련된 법에 대해 설명한다. 현장에서 법을 다루는 사람의 직강이다. 설명이 끝나면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가 순서가 되면 비로소 다른 배심원들과 법원에 들어가 배심원석에 앉을 수 있다. 그곳에서 자신이 다루게 될 사건에 대한 설명을 판사나 변호사에게 듣게 된다. 

모든 설명을 마친 판사나 변호사는 배심원들에게 직접 묻는다. 당신은 이 사건을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겠느냐고. "네"라고 하면 계속 재판에 참석하고 "아니오"라고 하면 퇴실하거나 다른 재판으로 배당받는다. 

주요 범죄에 대한 재판인 대배심의 경우 배심원들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이 경우 다수결에 따른다. 경범죄 위주인 소배심의 배심원들은 죄의 유·무죄 여부를 배심원 모두의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한국의 경우 기소는 검사의 역할, 판결은 판사의 역할인데, 미국에서는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검사와 판사의 권한을 나누어 결정하는 것이다.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관습법(Common Law)의 영향으로 미국 말고도 영국, 캐나다, 인도 등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신임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조지 개스콘 검사장이 그의 아내 파비올라 크람스키와 함께 헌법 사본을 들고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2020.12.7 ⓒ 연합뉴스

 
​선출되고 퇴출되는 검사장

"40년 전 젊은 경찰관으로 첫 발자국을 뗀 나는 오늘 로스앤젤레스의 43대 지방검사로 취임합니다. 청년 경찰로 내가 겪었던 수많은 상황과 경험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11월, 미국 카운티 중 가장 큰 LA 카운티는 대통령 선거와 함께 검사장 선거를 치렀다. 인구 1천만의 LA 카운티 새 검사장이 된 이는 육군 제대 후 30년간 LA 경찰서에서 일하다 샌프란시스코 지검에서 근무했던 조지 개스콘이다. 12월 8일 그의 첫 취임 일성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차별적 법적용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은행 계좌에 가지고 있는 돈의 액수가 지역사회에 가하는 위험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수백 명의 사람이 감옥에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위험을 더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를 살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개스콘 새 LA 지검장은 취임 자리에서 '현금 보석 제도'를 없애겠다고 했다. 부자에게 유리하고 가난한 대부분의 재소자에겐 부당하고 안전하지 않은 제도라는 이유다. 이 제도 존속 여부 역시 11월 선거에 함께 부쳐졌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현금 보석제도 유지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CEO와 넷플릭스 공동창업자 배우자를 비롯한 억만장자들이 기부로 지원했지만 당선자 개스콘 지검장의 입장은 명확했다.   

​이와 더불어 그의 선거 캠페인 공약이었던 사형제 폐지도 바로 시행될 예정이다. 개스콘은 사형제 폐지를 앞두고 2만여 개 이상 사건에 대한 재검토가 진행될 것이라 말했다. 

개스콘과 맞붙었던 이는 2012년부터 재직하며 3선을 바라보던 재키 레이시였다. 8년의 임기 동안 청소년 기소를 절반으로 줄이고 구금보다 재활 기회를 확대하는 등의 변화를 추구했지만 올해 급증했던 BLM(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에 대한 LA 경찰의 공권력 남용을 묵인했다는 등의 이유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잃었다. 지역의 흑인단체들이 정치인들에게 레이시 검사장에 대한 지지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정치인들의 지지철회가 잇따랐다. 
 

LA 카운티 검찰청의 재키 레이시 검사장이 지난 2016년 12월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에서 열린 '2016 과학수사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6.12.2 ⓒ 연합뉴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뉴저지 주의 경우, 주지사가 21개 카운티의 검사장 임명을 결정하고 주 의회가 통과시킨다.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크리스 크리스티에 이어 2017년 주지사가 된 민주당 필 머피는 주 법무장관과 각 카운티의 지검장을 임명했다.

그런데 2017년 주지사 선거 당시 현 주지사 측 고위 선거 스태프의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이 발생한 허드슨 카운티는 피해 여성의 고소에 제대로 된 수사도 하지 않고 불기소했다. 문제가 되자 다른 카운티에 조사를 의뢰했지만 역시 같은 불충분한 조사에 같은 결론이었다. 하지만 피해 여성과 지역 언론의 끈질긴 노력과 <월스트리스저널> <뉴욕타임스> 등의 보도로 사건 발생 3년 만인 올해 5월 비로소 사건이 마무리됐다.

뉴저지 주와 주지사가 직접 피해자 측에 100만 불을 지불하기로 한 것이다. 사건 발생 초기 카운티 지검장이 자신의 임명권을 쥔 주지사의 측근 여부를 따지지 않고 제대로 된 수사와 기소를 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공방과 비용이었다. 

주지사와 카운티 검사장의 관계는 2015년 뉴저지주 유니온 카운티의 검사 대행이었던 그레이스 박의 인터뷰에 잘 나타난다. 왜 2년이나 검사장 '대행'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대답했다. "검사장 임명은 곧 정치이기 때문입니다." 정의를 요구하는 주민보다 임명하는 주지사의 관계를 더 살펴야하는 시스템에 대한 지적이다.

​기소권을 갖고 있는 검사장의 임명이 "선출"과 "지명"이었을 때 어떤 다른 결과로 나타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검사 출신 고위 공직자'의 포부를 가진 검사들

앞서 얘기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전 뉴저지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는 2009년부터 두 번에 걸쳐 주지사로 재임했다. 2016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낙선한 후 가장 먼저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가지 못하고 올해 대선에서 다시 트럼프 선거 운동을 가까이에서 돕다 코로나에 걸리기도 했다. 

크리스티는 2012년 초강력 태풍 샌디가 동부지역을 휩쓸었을 때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와의 원활한 일처리로 공화당 유력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브리지게이트' 이후 대통령의 야망을 접어야 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은 워싱턴 브리지를 고의로 막아 자신에게 협조하지 않은 민주당 지역구를 골탕 먹이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 일로 지금까지 재판을 받고 있는 크리스 크리스티는 연방 검사 출신이다. 

이밖에도 검사 출신 정치인으로 루돌프 줄리아니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사로 요즘 매일 TV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그는 뉴욕 남부 연방 감사 출신으로 뉴욕시장을 역임했다. 민주당 유력 대통령 후보였다가 뉴욕 주지사 재임 중 섹스 스캔들로 물러난 엘리오트 스피처도 6년간 맨해튼 지방검찰청 검사였다. 부통령 당선자 카멀라 해리스도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포담 로스쿨의 제드 슈게르만 교수는 2017년 7월 <프리즌 폴리시 이니셔티브>(Prison Policy Initiative, PPI)에 <뉴 데이터: '검사 정치인'의 등장>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슈게르만 교수는 검사라는 직군이 '윗선으로 가는 발판'이 되기 쉽다고 주장한다. 높아진 검찰의 기소와 구속률 그리고 몇 년간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켜 대규모 시위의 원인이 된 사건에 대해 검찰이 가해 경찰에게 유죄를 선고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퍼거슨 사건 (2014년 8월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18세 흑인 남성이 경찰의 총에 맞고 사망)이나 에릭 가너 사건 (2014년 7월 뉴욕에서 불법 담배를 팔던 흑인 남성을 경찰이 질식사시킨 사건)에서 검찰의 소극적 기소는 대중들의 분노를 일으켜 사회 혼란을 가중시켰다. 

슈게르만 교수는 '검사 출신 고위 공직자'의 포부를 가진 검사들은 정의보다 여론과 개인적 이득을 우선시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이들이 미국의 형사사법체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한 이 논문은 범죄에 대해 엄격하다는 평판을 위해 검찰은 더 많은 체포와 기소를 하지만 흑인들을 사망하게 한 경찰관들에 대해선 기소조차 못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지난 여름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우리가 보호하고 봉사하기로 맹세한 커뮤니티에 대한 의무를 잊었을 때 발생한 끔찍한 사례입니다. 이는 한 세대를 일어서게 했고 시스템에 반대하는 대중들의 분노를 높였습니다. 대중들은 우리 검·경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LA 카운티의 새 검사장 조지 개스콘은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이야기한다. 커뮤니티  봉사를 위해 검사들에게 제공된 독점적 정보와 힘과 권한을 남용했을 때 가져온 파장의 결과는 올여름 모든 미국인들이 똑똑히 목도했다. 코로나 여파 속에 미국을 뒤덮은 'BLM' 시위는 결국 정의롭지 못한 공권력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분노와 외침이었다. 

올 한해 미국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정의없이 평화없다(No Justice, No Peace)"라는 말. 자신들에게 주어진 파워를 출세와 영달의 도구로 이용하는 이들, 바로 그들에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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