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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영화계 생활, 정당 가입 처음... 조국에 직언하겠다"

[인터뷰] 제도권 정치 도전 선언한 영화인, 조국혁신당 문화특보 정상진 대표

등록 2024.03.17 11:48수정 2024.03.1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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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조국혁신당 당사에서 열린 입당 기자회견에 참석해 조국혁신당에 입당한 정상진 영화수입배급사협회장을 반기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유성호


국내 주요 영화수입배급사 대표이자,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운영자.

한국영화계에서 엣나인필름 정상진(56) 대표는 독특한 위치의 인물이다. 덴마크 영화의 거장 라스 폰 트리에, 캐나다 출신 신성, 자비에 돌란 감독 등 세계 유수 감독들과 유대해왔고, <벌새> <우리들> 같은 반짝거리는 한국독립영화들을 발굴하면서도 <남영동1985> <자백> <삽질> 같은 사회고발성 영화를 배급 혹은 제작해왔다. 이런 행보 탓일까? 박근혜 정부 하에서는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최근엔 국회 청문회 증인으로 호명되기도 했다.


영화계에서 정 대표는 주로 '암약'해왔다. 그랬던 그가 돌연 정치계 입문을 선언했다. 조국혁신당 입당과 함께 문화특보로 임명된 그는 지난 9일 비례대표에 지원함으로써 사실상 예비 정치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약 30년 가까이 영화계에서만 있던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지난 14일 오후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정상진 대표를 만났다. 그는 지난 15일 조국혁신당이 발표한  4·10 총선 비례대표 출마 후보자 20명(남녀 각각 10명)에 이름을 올렸다. 

자기 검열에서 벗어나다

그가 작성한 A4 용지 3장 분량의 의정활동계획서엔 문화예술계 약자를 위한 입법과 행정감시라는 주제로 꽤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방법론으로 들어가면 입법과 상임위 활동, 문화예술 외교 활동으로 나눠 구체적 방안이 기록돼 있었다. "영화 일을 하며 단 한 번도 정치 쪽은 꿈도 꾸지 않았는데, 계획서를 작성하면서 이미 고민이 꽤 깊었고 생각들이 제법 정리돼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고 그가 운을 뗐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첫 다큐) <다이빙벨>을 제작했고, <그대가 조국>도 했지만 무대 위에 오르거나 마이크를 한 번도 잡지 않았다. 자기 검열을 했던 것 같다. 여론에서 나에게 어떤 프레임을 씌우는 걸 막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내가 아닌 콘텐츠로만 평가받고 싶기도 했다. 근데 모든 게 훅 정해졌다. 조국혁신당이 창당한 지 한 달도 안 됐지 않나. 전혀 가보지 않은 길인데 마치 신내림을 받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최근까지 정지영 감독님, 문성근 선배 등 많은 영화인들의 연락을 받았다. 용기 내서 고맙다고들 해주시는데, 이게 용기를 낼 일인가 싶다. 막상 하기로 했을 땐 큰 고민은 없었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다들 추정하잖나. 그런 문서가 있었을 것이라고. 근데 내 경우엔 김기춘 비서실장 페이퍼에 명단이 적혀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분명한 증거가 있었지만 매체 인터뷰를 한다거나 나서지 않았다. 나의 억울함을 말하면서 스스로도 위축될 것 같았고, 지지하고 연대하던 사람들도 정상진이란 사람도 저렇게 구석에 몰려 있음을 보고 뒤로 물러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잃을 게 있는 분들은 분명 겁이 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일각에선 그가 이미 당원 활동을 했거나 하고 있는 걸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정당에 가입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데 왜 조국이었을까.

"법무부 장관을 그만 둔 뒤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나도 50대인데 누군가가 좋다고 한들 그를 인생의 선배나 귀인으로 생각하긴 어렵잖나. 같이 식사하거나 시간을 보낼 때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어른의 모습이랄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작년 가을 무렵인가.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이태원 해밀톤 호텔 쪽에 차를 잠깐 세워달라고 하시더라. 1차 공판으로 언론엔 부도덕한 사람으로 낙인 찍혔으니, 해명하고 싶어도 팔다리가 잘린 상태라 어찌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뵐 수 있었겠나. 누군가는 정치 행보라며 분명 비난할 텐데 말이다.

알고 보니 당신 딸도 그날 이태원에 가기로 했었다더라. 그곳에서 딸의 친구를 잃었다며 슬퍼하는데 본인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분노와 죄책감이 느껴졌다고 하더라. 그래서 제가 권했다. 그러면 유가족을 뵙고 위로를 전하면 어떻겠냐고. 근데 그렇게는 할 수 없다더라. 이후 본격적으로 창당 행보를 걷기 시작하면서 시청에 있는 분향소를 방문하셨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믿음이 생겼다. 조국은 국민들 편에 설 수 있는 사람이고, 누군가 그에게 돌을 던지면 내가 대신 맞을 수도 있겠다고."
 

"즐겁고 재밌는 정당 만들기에 일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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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혁신당 문화특보이자 비례대표 지원을 결심한 정상진 엣나인필름 대표. ⓒ 조국혁신당


입당과 동시에 그는 조국혁신당 창당대회를 비롯해 미디어 관련 분야를 담당하며 당 이미지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3월 3일 열린 창당대회를 두고 정상진 대표는 "당원과 함께 하는 창당대회를 해보고 싶었다"며 당시 기획을 설명했다.

"대체 창당대회라는 건 왜 하는 걸까 몇몇 정치인을 위한 행사로 전락하는 걸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을 경험하면서도 주요 내빈 소개나 그들의 연설을 듣는 게 불편할 때가 있었다. 시간이 충분했으면 각 지역별로 당원을 소개하고 싶었는데, 창당 및 당원 모집 등이 급박하게 진행돼서 그러진 못했다. 대신 1시간으로 창당대회 진행 시간을 제한했다. 그래도 마치고 나니 제법 재밌었다는 평이 많더라."

비례대표에 지원하며 그가 내세운 슬로건 중 하나는 '표현의 자유가 사라진 대한민국'이다. "최근 카이스트에서 벌어진 경호원 입틀막 사건이 상징적"이라며 그가 말을 이었다.

"대통령은 자유를 강조하며 당선됐는데, 결국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데 말이다. 아예 자기 말을 잘 들어줄 사람만 앉혀놓고 연설하든가. 그 학생이 끌려나갈 때 대부분 가만히 앉아만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섬뜩하기도 했다. 그들의 잘못이라기 보단 대통령 탓이라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와 함께 그가 내세우고 있는 각론을 보면 꽤나 급진적이다. 현재 약 2% 대인 문화예술 관련 예산을 5%로 늘리고, 생활동반자법을 통해 문화예술 정책과 시스템을 보완한다는 복안이 있다. "당 이름에 혁신(rebuilding)이 들어가잖나. 지금까지의 정당정치로 보여주지 못한 걸 새롭게 하고 싶다"며 "좀 엉뚱하거나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을 텐데 마음 열고 같이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핵심은 대중과 온 국민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정책이다. 그런 차원에서 문화예술을 단순히 산업적으로만 바라보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국가예산의 5%를 문화예술 예산으로 책정하자는 건 아마 당장은 힘들 수 있지만 어느 정도 협상 여지는 있다고 본다. 제가 문화계 비례대표지만, 생활동반자 법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사실혼, 친구와 동거, 혹은 반려동물과 사는 젊은 세대들을 사실상 문화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지금의 정책들을 보면 결혼을 촉진하고, 출산을 촉진하자는 법안들 뿐인데 20, 30대가 혼자 살거나 반려동물과 살거나 동거만 하는 건 이제 하나의 흐름이다. 당장 내 딸들만 해도 결혼 생각이 없다. 근데 대한민국에선 결혼을 해야만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잖나.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뭘 해줄 수 있나 국회에서 연구해야 한다. 이들의 삶을 문화예술적으로 접근하자는 얘기다. 우리 다음 세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보려면 그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칸막이 행정 아닌 연계 행정 필요"

정책의 현실성 여부와 별개로 정상진 대표가 기성 정당에서 찾아보기 힘든 문화예술계 인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는 계속해서 문화예술적 시각을 강조했다. 현재 각 부처별로 용처가 나뉜 예산을 문화예술 관련해선 통합해서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도 그가 일관되게 주장한 내용 중 하나다. 

"우선적으로 전 칸막이로 나뉘어 있는 문화예술모태펀드를 통합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문체부와 함께 조직을 정비해서 해당 펀드를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운영하는 기구를 만드는 거다. 그 안에서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든 중요한 지원이 필요한 사안이든 효율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지.

조심스럽지만 지금의 영화진흥위원회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달라지고, 직원들은 자기들 생각을 주장하지도 못한다. 국가 예산을 두고 9인 위원회가 결정하고 이끌어야 하는데 기획재정부나 문체부의 방침에 발맞추기만 한다면 위원회가 무슨 소용인가. 제가 존경하는 김동호 위원장이 문화융성위원장 시절 만든 '문화가 있는 날'을 확대하고, 영화, 연극, 스포츠 관람권 등에 붙는 10%의 부가세를 통폐합해 모태펀드위원회에 환급해서 운영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그 위원회에 들어와서 조율하며 예산을 짜는 식으로 말이다."


다양한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함께 정책을 고민하고 추진한다면 시너지가 생길 것이라는 게 정 대표의 생각이다. 

"(최근 조국혁신당에 입당한) 가수 리아씨를 보자. 가수가 왜 후쿠시마에 가서 물을 퍼오고, 그런 행위 예술을 하냐고 비판하는 건 질문이 잘못된 것이다. 이건 분야로 한정할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기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게 맞잖나. 나를 두고도 영화 쪽만 바라본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영화인이면서 회사를 경영하는 대표기도 하다. 세상과 다양하게 접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김동호 위원장님도 관련 성명서를 받아오시는 걸 보면 영화 만이 아닌 클래식, 오페라, 연극 등 다양한 예술인들을 설득하신다. 고 이선균 특별법 때도 문화계 많은 인사들이 연대했잖나."
 

정 대표는 현 정권, 그리고 유인촌 문체부 장관을 향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지금의 대통령이 본인과 합이 맞는 사람이라고 앉힌 분이 유인촌 장관이잖나. 이명박 정권 때처럼 그분은 여전히 영화계에 어떤 감정이 있는 것 같다. 학생 시절 제 스승이기도 했던 그분에게 묻고 싶다. 왜 그렇게 영화계를, 특히 독립영화인들을 싫어하시는지 말이다." 

제도권 정치로 나가보겠다고 나선 이상, 그의 행보 또한 주목을 받게 됐다. 정상진 대표는 "제 당선 가능성은 일단 차치하고, 문화정책을 적극 제안하겠다"라며 "조국 당대표의 입을 통해 국민에게 전달되는 게 더 큰 의미가 있다. 사회적 연대를 위해 여러 직언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정상진 대표 약력
- 1968년생
- 중앙대 연극영화과
- 1990년 광고 대행사 씨에이엔대표
- 1996년 엣나인필름 설립
- 2004 년 멀티플렉스 씨너스 개관
- 외화 <님포매니악>, <세 얼간이>, <아이 킬드 마이 마더>, <마미> 등 수입
- <남영동1985>, <만신>, <우리들>, <자백> <공범자들> <삽질> <그대가 조국> 제작 및 배급.
- 영화수입배급사협회 회장, 독립예술영화관 아트나인 대표  
- 2020년 ~ 2022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

 

 

주요 지리정보

#조국혁신당 #영화계 #정상진 #문화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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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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