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개막 후 15연승을 달리며 독주체제를 이어가던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는 외국인 선수 야스민 베다르트의 허리 부상 이후 위기가 찾아왔다. 야스민 이탈 이후 첫 8경기에서는 6승2패로 비교적 선전했지만 황연주 등 베테랑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진 최근 5경기에서는 1승4패로 하락세가 완연하다. 현대건설은 외국인 선수를 이보네 몬타뇨로 교체하며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아직 몬타뇨는 야스민 만큼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 10일 최하위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에게 당한 2-3 패배는 현대건설에게 대단히 뼈아플 수밖에 없다. 현대건설은 지난 시즌부터 V리그에 참가한 페퍼저축은행을 상대로 9전 전승으로 절대적인 우위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페퍼저축은행은 새 외국인 선수 몬타뇨까지 뛰었던 선두 현대건설을 상대로 짜릿한 승리를 따내면서 어떤 팀을 상대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물론 페퍼저축은행은 이번 시즌 27경기에서 3승24패 승점 9점으로 여전히 독보적인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아직 산술적으로 탈꼴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치열한 중위권 경쟁과 페퍼저축은행의 객관적인 전력을 고려하면 페퍼저축은행이 두 시즌 연속 최하위를 기록할 확률은 매우 높다. 현대건설을 꺾으며 상승세를 탄 페퍼저축은행은 남은 9경기에서 몇 승을 더 추가하며 다음 시즌을 위한 희망을 높일 수 있을까.

지난 시즌 3승에 이어 이번 시즌 개막 10연패
 
 FA로 영입한 이고은 세터는 이번 시즌 페퍼저축은행이 치른 100세트 중 97세트를 소화했다.

FA로 영입한 이고은 세터는 이번 시즌 페퍼저축은행이 치른 100세트 중 97세트를 소화했다. ⓒ 한국배구연맹

 
페퍼저축은행의 김형실 초대감독은 V리그에 처음 참가하는 2021-2022 시즌을 앞두고 '시즌 5승'을 목표로 잡았다. 아무리 공식적으로 창단한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신생팀이라 해도 페퍼저축은행에는 1순위 외국인 선수 엘리자벳 이네 바르가(KGC인삼공사)를 비롯해 하혜진,이한비 등 V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정규리그 36경기에서 5승 정도는 충분히 거둘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실제로 페퍼저축은행이 1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IBK기업은행 알토스를 꺾고 창단 첫 승을 거둘 때만 해도 시즌 5승은 충분히 가능한 목표로 보였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각 라운드별로 1승씩만 따내도 시즌 6승까지는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은 창단 첫 승 이후 4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다시 기업은행을 상대로 두 번째 승리를 거둘 때까지 무려 17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결국 페퍼저축은행은 코로나19로 시즌이 조기 종료될 때까지 31경기에서 3승28패 승점 11점의 성적으로 V리그에서의 첫 시즌을 마쳤다. 남은 5경기를 정상적으로 소화했다면 목표했던 시즌5승에 달성했을지 모른다는 가정은 할 수 있지만 페퍼저축은행과의 경기를 치르지 못하고 시즌을 마친 나머지 5팀도 쉬운 1승을 놓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기존 팀들과 신생구단 페퍼저축은행의 전력 차이는 분명했다.

첫 시즌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페퍼저축은행은 2021-2022 시즌이 끝난 후 외국인 선수를 엘리자벳에서 브라질리그 득점왕 출신의 니아 리드로 교체했고 FA시장에서 이고은 세터를 영입했다. 여기에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V리그 역대 최장신(195cm) 선수인 몽골 출신의 염어르헝을 지명했다. 김형실 감독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보강된 전력과 한 시즌을 치르며 쌓인 경험을 토대로 시즌 10승을 목표로 잡았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V리그를 주름 잡기를 기대했던 외국인 선수 니아 리드의 초반 활약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고 거액을 들여 영입한 이고은 세터도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는 데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신인 센터 염어르헝은 2경기에서 단 1득점도 올리지 못한 채 무릎수술을 받으며 일찌감치 시즌을 마감했다. 결국 페퍼저축은행의 김형실 감독은 개막 후 10연패에 빠진 작년 11월 29일 자진 사퇴했다.

개막 17연패 후 최근 5경기서 2승
 
 미들블로커 최가은은 이번 시즌 블로킹 8위,속공 9위를 달리며 페퍼저축은행의 중앙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미들블로커 최가은은 이번 시즌 블로킹 8위,속공 9위를 달리며 페퍼저축은행의 중앙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페퍼저축은행은 김형실 감독이 물러난 후 이경수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선임했다. 페퍼저축은행에는 GS칼텍스 KIXX와 인삼공사, 그리고 여자대표팀을 이끌었던 베테랑 이성희 코치도 있었지만 구단에서는 젊은 선수가 많은 팀 색깔을 고려해 만 43세의 이경수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낙점했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은 이경수 감독대행 체제에서도 7연패를 추가로 당했고 어느덧 연패숫자는 '17'로 늘었다.

그렇게 2012-2013 시즌 인삼공사가 세웠던 V리그 역대 최다연패(20연패)에 가까이 다가가던 페퍼저축은행은 2022년의 마지막 날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를 세트스코어 3-1로 꺾고 시즌 첫 승을 따냈다. 페퍼저축은행은 새해 들어 다시 4연패를 당했지만 지난 1월 23일 GS칼텍스를 3-1로 제압하며 홈팬들에게 짜릿한 첫 승리를 선물했다. 물론 순위경쟁에서는 일찌감치 멀어졌지만 페퍼저축은행에게는 매우 값진 두 번의 승리였다.

그리고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10일 이번 시즌 21승5패의 성적으로 시즌 개막 후 단 한 번도 선두 자리를 빼앗긴 적이 없는 현대건설을 만났다. 대부분의 배구팬들이 현대건설의 완승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끈질기게 현대건설을 물고 늘어진 페퍼저축은행의 3-2 승리였다. 지난 시즌부터 현대건설을 상대로 9번의 패배 끝에 따낸 승리였다. 패배에 대한 두려움 없이 과감하게 정면으로 부딪힌 것이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이변을 가져온 것이다.

페퍼저축은행은 오는 15일 기업은행에게 패하며 선두등극에 실패한 2위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를 상대로 창단 첫 연승에 도전한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은 이번 시즌 두 번의 승리 이후 항상 다음 경기에서 무기력한 0-3 패배를 당한 바 있다. 결과를 떠나서 경기내용 자체가 승리한 경기에서 보여준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흥국생명과의 경기 역시 직전 경기 승리에 도취돼 안일한 플레이를 한다면 순식간에 패배를 당할 수도 있다.

페퍼저축은행이 김형실 전 감독이 이번 시즌 목표로 내세웠던 10승을 채우려면 남은 9경기에서 7승을 거둬야 한다. 페퍼저축은행의 전력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워 보이는 목표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이 승리했던 3경기에서 보여준 투지와 마음가짐으로 잔여시즌을 임한다면 앞으로 충분히 더 많은 승리를 챙길 수 있다. 그리고 페퍼저축은행이 잔여시즌 동안 따내는 승리만큼 미래를 향한 팬들의 희망과 기대도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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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도드람 2022-2023 V리그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 이경수 감독대행 두려움 없는 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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