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프랑스에서도> 영화 포스터

▲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프랑스에서도> 영화 포스터 ⓒ (주)제이씨엔터웍스

 
좀비를 소재로 삼은 공포 영화 < Z >를 찍는 촬영 현장. 히라구시(로망 뒤라스 분) 감독은 주연 배우 치나츠(마틸다 안나 잉그리드 루츠 분)와 켄(피네건 올드필드 분)이 원하는 만큼의 연기를 하지 못하자 31번째 컷을 외치며 화를 낸다. 격한 분위기를 가라앉히려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도중, 어디선가 진짜 '좀비'가 나타나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치나츠와 켄, 메이크업 담당 나츠미(베레니스 베조 분)의 대화는 어색하게 이어지고 카메라를 쳐다보는 등 행동도 어설프기 짝이 없다. 심지어 카메라가 배우를 잡지 못한 채로 멈춰버리고 카메라에 묻은 피를 닦는 손까지 보인다. 급기야 히라구시 감독은 카메라를 향해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라고 외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프랑스에서도> 영화의 한 장면

▲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프랑스에서도> 영화의 한 장면 ⓒ (주)제이씨엔터웍스

 
이미 존재하는 '원작'을 사들여 인물과 이야기를 활용하여 다시 만드는 '리메이크'는 세계 영화사에서 흔히 벌어졌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스페인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2017)를 리메이크한 <자백>(2020), 캐나다/독일 영화 <리멤버: 기억의 살인자>(2015)를 리메이크한 <리멤버>(2020)가 개봉한 바 있다(중국 영화 <바람의 소리>와 <유령>(2022)은 동일한 원작 소설 <풍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리메이크라 보긴 곤란하다). 우연하게도 <자백>과 <리멤버>는 리메이크의 두 가지 방향을 상징하고 있다. 전자가 관객의 언어적, 문화적 접근성을 높인 '복사'로 보인다면 후자는 고유한 소리와 색깔을 입힌 '재해석'에 가깝기 때문이다.

2012년 <아티스트>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하며 일약 세계적인 감독으로 떠오른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이 연출한 프랑스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프랑스에서도>(2002)는 일본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독특한 서사 구조, 영화 제작 과정에 대한 애정과 풍자, 웃음을 자아내는 병맛 코미디로 2018년 전 세계 영화제를 강타했고 일본에서 제작비의 1000배 이상을 벌어들이는 흥행을 기록했다.

근래 일본 영화가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는 사례가 드문 가운데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어느 가족>(2018),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 흰색까마귀상을 수상한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2020),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드라이브 마이 카>(2021),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유바리 판타랜드 대상을 거머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국제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제작비 1000배' 일본 흥행작의 재탄생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프랑스에서도> 영화의 한 장면

▲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프랑스에서도> 영화의 한 장면 ⓒ (주)제이씨엔터웍스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프랑스에서도>는 원 컷으로 구성된 (영화 속) 허구의 영화를 보여주는 1막, 한 달 전으로 가서 '원 컷, 생방송'을 목표로 한 허구의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 2막, 허구의 영화를 촬영하는 현장을 담은 3막으로 이어지는 원작의 전제와 전개를 그대로 따른다. 분명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1960)를 '똑같이' 만든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싸이코>(1996)처럼 '복사'의 길을 걷는다. 그렇기에 원작이 지닌 서사 구조의 마법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프랑스에서도>가 신선하진 않을 것이다.

상영 시간은 원작(95분)에 비해 17분(112분)이나 늘어났지만, 눈에 띄게 새로운 건 없다. 생방송 중 음악을 연주하는 작곡가, 일본인 제작자 앞에서 진주만 공습을 언급하는 멍청한 실수, 더 노골적인 화장실 유머와 인종, 여성과 관련한 바보 같은 농담 등이 추가된 정도다. 외형적으론 규모(일본 원작은 2만 5000달러로 제작하고 대부분 무명 배우가 나오는 데 반해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프랑스에서도>는 400만 달러로 들이고 프랑스의 A급 배우, 감독, 제작진이 참여했다)만 커진 게으른 리메이크라 느껴진다.

흥미롭게도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프랑스에서도>만의 고유함은 '리메이크'에 주목하면서 비로소 보인다. 원작이 좀비 채널에서 개국 기념으로 '원 컷, 원 테이크, 생방송'을 목표로 한 좀비 영화 <원 컷 오브 더 데드>와 그것의 준비 과정을 다뤘다면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프랑스에서도>는 일본에서 '원 컷, 원 테이크, 생방송'을 콘셉트로 크게 히트한 좀비 영화 <원 컷 오브 더 데드>를 리메이크하는 상황을 그린다. 리메이크(영화 속 허구의 영화 <원 컷 오브 더 데드>를 < Z >로 리메이크)에 대한 리메이크(<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프랑스에서도>로 리메이크)인 셈이다. 그 속에서 원작이 묘사한 영화 제작의 어려움에 '리메이크' 작업에서 부딪히는 벽을 더한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프랑스에서도> 영화의 한 장면

▲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프랑스에서도> 영화의 한 장면 ⓒ (주)제이씨엔터웍스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프랑스에서도>가 2022년 제75회 칸 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사실도 눈길을 끈다. 2019년 제72회 칸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짐 자무쉬 감독의 <데드 돈 다이>(2019)를 상영했던 걸 떠올린다면 '좀비 영화'란 장르를 과감히 선택했다고 보긴 힘들다. 그것보단 코로나19와 연결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전 세계 영화 제작 현장은 어려움에 부닥쳤다. OTT가 활성화되면서 극장가도 위기에 봉착한 상황이다. 이런 위기 속에서 영화 제작의 즐거움을 말하고 꿈과 열정을 다해 작품을 만드는 영화인들이 등장하는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프랑스에서도>가 가진 시대적 의미는 각별하다. 게다가 동아시아의 영화를 유럽에서 리메이크한 드문 사례이기에 인종, 대륙, 문화 간 대화와 교류란 상징성도 크다.

영화가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을 보여주는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프랑스에서도>를 통해 칸 영화제는 코로나19 이후 나아진 새로운 공동체의 개막을 희망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본다면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프랑스에서도>는 시의적절한 때 도착한 리메이크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프랑스에서도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로망 뒤리스 베레니스 베조 피네건 올드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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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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