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 워터홀컴퍼니(주)

 

마술쇼를 보러 가서 트릭을 알아내겠다며 팔짱 끼고 앉아있는 것처럼 깐깐해질 때가 있다. 'B급 유머, 재기발랄'이란 키워드로 영화가 호평받을 때다. 특히 B급 유머는 주성치의 영화로 졸업했다고 생각한 내게 올해 3월에 처음 공개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는 깐깐하게 평가할 조건에 부합했다.

그럼 허점을 발견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마술쇼를 보러 간 깐깐한 평론가는 어떻게 됐을까.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 워터홀컴퍼니(주)

 

실패한 에블린을 위한 '버스 점프'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에블린(양자경)은 세무 당국의 조사에 시달리는데,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의 이혼 요구와 삐딱하게 구는 딸 조이(스테파니 수)로 인해 대혼란에 빠진다. 그 순간 에블린은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 수만의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모든 능력을 빌려와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는데.

멀티버스가 소재인 만큼 배우로 성공한 에블린, 철판요리사 에블린, 가수가 된 에블린, 광고판 돌리는 에블린 등 다양한 우주의 에블린이 등장한다. 그런데 알파 웨이먼드는 멀티버스의 붕괴를 막기 위해 현재 에블린을 찾아왔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된다. 삶의 기로에서 가장 잘못된 선택만 해온 탓에 모든 일에 실패한 에블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세계관을 지탱하는 '버스 점프'의 개념이 더해지면 알파 웨이먼드의 선택이 왜 최선이었는지 납득할 수 있게 된다.

버스 점프는 과학자로 활동하던 알파 에블린이 발견했다. 개연성 없는 돌발행동을 하면 현재 우주에 균열이 생기고 다른 우주로 버스 점프가 가능해진다. 다른 우주로 버스 점프 한 후에는 그 우주에 살고 있는 '나'의 기억과 능력을 복사할 수 있다. 신발 반대로 신기, 립글로스 씹어먹기처럼 비교적 간단한 돌발 행동도 있지만 종이에 손 베이기, 진심을 담은 사랑 고백 등 의외성이 더 높은 행동을 하면 더 멀리 위치한 우주에 있는 내게 도달할 수 있다.

성장을 위해 어떤 일을 꾸준히 해서 경험을 쌓고 전문가가 되는 것. 이는 곳 어느 우주에서나 통용되는 성공의 주요한 조건이다. 반대로 버스 점프를 위한 돌발성은 단발적이고 무용한 행동들이다. 다른 사람의 조롱이나 지탄을 받기도 하는 실패의 지름길이다.

반면 멀티버스의 파괴자 투바키는 개연성의 총체다. 전 우주를 넘나들며 모든 걸 경험한 투바키는 시공간을 마음대로 다루는 능력까지 갖췄다. 불확실성이 제거된 그에게 남은 유일한 가능성은 죽음뿐이다. 자기 죽음 말고는 어떤 가능성도 남지 않은 투바키는 결국 모든 걸 무(無)로 돌리는 허무의 베이글을 만든다. 이토록 위험한 투바키를 탄생시킨 건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가장 성공한 에블린일 가능성이 높은 알파 에블린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 워터홀컴퍼니(주)

 

인형눈알이 바라보는 다정함의 주인

무능력했던 에블린은 수없는 버스 점프를 하며 모든 우주의 에블린을 만나 능력을 복사하고 투바키처럼 초월적 존재가 된다. 초월적 에블린도 허무에 빠지고 일상에서 가장 귀찮고 번거로운 것부터 파괴하려고 한다. 본인이 운영하는 세탁소와 세금을 징수하는 국세청 공무원이다. 버스점프로 건너온 알파 아버지는 투바키의 통로가 되는 조이를 없애라고 다그친다. 파괴와 단절 그리고 외면은 에블린이 제일 피하고 싶은 동시에 따라 하기 싫은 아버지의 문제 해결 방법이다.

어쩌면 에블린은 투바키를 만나거나 능력을 얻기 전부터 본인의 우주를 스스로 파괴했을지도 모른다. 조이에게 모진 말을 퍼붓고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숨기는 바람에 상처를 받고 집을 떠나게 만든 것도, 지속해서 대화를 시도하는 웨이먼드를 바쁘다는 핑계로 무시하다가 결국 이혼합의서를 보고서 홧김에 서명하는 것도 에블린이다. 급기야 세금공무원의 지적을 받았지만 영수증을 본인의 방식대로 분류하다가 결국 세탁소가 압류될 위기에 처한다.

다행인 건 멀티버스가 에블린의 선택으로 팽창한다는 사실이다. 웨이먼드는 파괴를 종용하는 아버지와 다른 선택지를 제공한다. 세탁소가 압류되려는 위기의 순간 웨이먼드는 국세청 직원을 설득해 세금신고 기간을 연장한다. '저 사람은 나 아니었으면 굶어 죽었을 거'라 말할 정도로 무능력해 보이던 웨이먼드는 나름의 방식으로 삶이란 전쟁터에서 버텨내고 있었다.

웨이먼드가 가진 무기는 다정함이었다. 다정함은 피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피하지 않는가. 바로 자신의 진심이다. 웨이먼드는 난장판이 된 세탁소에서 국세청 직원을 붙잡고 에블린의 아버지가 아프고 딸과는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이혼 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그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에블린이 애써 모른 척하던 자신의 현재 상황과 감정들을 웨이먼드는 피하지 않았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 워터홀컴퍼니(주)

 
잊지 말아야 할 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우주가 에블린의 우주라는 점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멀티버스는 선택에 따라 확장된다. 웨이먼드에게는 웨이먼드의 선택에 따라 만들어진 우주, 조이에게는 조이의 선택에 따른 우주가 있다. 투바키가 파괴하는 우주는 모두 에블린의 선택으로 생성된 우주다. 에블린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웨이먼드와의 사랑을 택해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냉정했을지 모르지만, 자신에게는 다정했던 에블린은 딸을 낳고 먹고사는데 바빠 그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다정함을 잊었을 뿐이다. 그 사이 에블린의 우주는 점점 붕괴했다.

에블린의 아버지가 제시한 파괴와 외면, 웨이먼드가 보인 다정함 중에 후자를 택한다.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에게 다정해지자는 선택이다. 이제 에블린은 자신의 감정에 집중한다. 모진 말로 상처를 줬던 조이에게 애정 어린 마음을 전하기, 국세청 직원에게 솔직하게 현재 문제들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기, 언제나 자신을 믿고 지지해줬던 웨이먼드처럼 자신도 웨이먼드가 지켜온 삶의 태도와 방식을 인정하기로 말이다.

투바키의 최종목적은 에블린과 함께 허무의 베이글에 빨려들어가는 걸로 밝혀진다. 모든 우주에서 모든 경험을 했지만, 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끝내 본래의 자신마저 잃어버린 투바키처럼 베이글의 가운데는 뻥 뚫려있다. 에블린이 이마에 붙인 인형눈알은 베이글과 정확히 반대의 모습이다. 겉은 하얗지만, 안은 단단한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마치 자기 내면으로 향하는 시선처럼 말이다.

알파 우주에서 온 인간들을 무력화시키는 건 다른 우주에서 가져온 에블린의 능력이 아니라 알파 우주인들의 소망을 들어주는 방향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향기가 그리운 사람에겐 수류탄 대신 아내의 향을 담은 향수를, 피학적 성욕이 있는 사람에겐 가학적인 터치를. 다정하라는 웨이먼드의 충고 덕분이었을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사람은 일단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어야 타인에게도 진실할 수 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 워터홀컴퍼니(주)

 

모든 것, 모든 곳, 모든 순간을 거쳐 도달하는 영화의 정점

시나리오 작법서 스테디셀러 중에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이 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결국 20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도 예외는 아니다. 거칠게 요약하면 부부/부모 간의 갈등과 해결을 그린 가족드라마다. 스토리 라인만 전해 듣는다면 다중 우주를 넘나드는 스케일에 비해 어찌 보면 시시하고 지루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그렇게 평가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가치는 한 줄의 스토리라인이 아니라 영상과 음성, 편집과 연출이 동시간에 전달되는 '영화'라는 장르적 특징에서 발견된다. 소설이나 시나리오는 동시에(All at once) 존재하는 소시지 손을 가진 에블린, 웨이먼드를 포기한 에블린, 시력을 잃었지만 가수로 성공한 에블린, 라따구리를 라이벌로 둔 철판요리사 에블린, 심지어 돌덩이가 된 에블린의 세계를 동시에 그릴 수 없다. 

모든 것(Everything), 모든 곳(Everywhere), 모든 순간(All at once)을 거친 영화에 빠진 게 하나 있다. 바로 누구(Who)다. 삼라만상의 천변만화를 지나 움직이지 않는다는 규칙을 깬 돌덩이를 따라 인형 눈알을 붙인 돌덩이가 함께 절벽을 구를 때. 우주의 중심이 나라는 당연해서 잊고 사는 사실이 행성 충돌처럼 다가오는 엔딩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다정하게 기획한 2022년 최고의 영화적 체험, 아니 영화적 마술의 완성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양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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