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은 KBO리그 구단들이 대단히 바쁜 시기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상위권 팀들은 가을야구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최종목표를 위해 가지고 있는 전력을 모두 쏟아 붓는다.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팀들 역시 한 시즌을 정리하면서 다음 시즌을 위한 구상을 하는 시기다. 그리고 정규리그가 끝난 후 각 구단이 가장 먼저 단행하는 것은 바로 선수들에게 가장 잔인한 시간인 방출선수 발표다.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KBO리그 최초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개막전부터 한 번도 1위를 빼앗기지 않고 우승)'을 차지한 SSG 랜더스는 지난 7일 10개 구단 최초로 8명의 방출선수를 발표했다. 8명의 방출선수 중에는 통산 102홀드에 KBO리그 한 시즌 최다 홀드 신기록(2019년,40개)을 보유하고 있는 김상수도 있다. 한국시리즈 직행에 기뻐하는 순간에도 한 편에서는 미래를 위한 선수단 정리를 단행한 것이다.

10일에는 올 시즌 46승2무96패로 역대 최다패 신기록을 세운 최하위 한화 이글스가 두 번째로 방출 선수 명단을 발표했다. 한화는 투수 4명과 포수1명, 외야수1명을 웨이버 공시했고 투수2명과 내야수1명, 외야수 3명 등 6명의 육성선수를 말소대상에 포함했다. 그리고 올 시즌을 끝으로 한화를 떠나게 된 선수 중에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던 사이드암 신정락의 이름도 포함돼 있다.
 
 한화이글스에서 방출된 신정락.

한화이글스에서 방출된 신정락. ⓒ 한화이글스

 
전면 드래프트 최초의 1순위 지명선수

202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시속 160km에 육박하는 불 같은 강속구를 던지는 서울고의 김서현이 한화, 고교최고의 좌완으로 불리는 충암고의 윤영철이 KIA 타이거즈에 지명됐다. 서울연고의 고등학교를 다니는 김서현과 윤영철이 대전과 광주를 홈으로 쓰고 있는 한화와 KIA에 지명될 수 있었던 이유는 2023년 신인 드래프트가 지역연고제를 배제한 전면 드래프트로 실시됐기 때문이다.

한국야구위원회는 2000년대 이후 한국야구의 미래를 이끌 유망주들이 수도권에 집중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난 2010년부터 지역 연고를 없애고 전면 드래프트를 실시했다(2014년 지역연고 부활). 고려대 출신의 신정락은 KBO리그 역사상 첫 전면 드래프트였던 201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역사적인 첫 번째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신인이었다.

고려대 시절 4년 동안 공식경기에서 단 하나의 홈런도 맞지 않았을 정도로 대학야구 최고의 사이드암 투수로 명성을 떨치던 신정락은 2010년 계약금 3억 원을 받고 LG에 입단했다. 신정락은 프로 데뷔 후 4번째 경기에서 4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슈퍼루키'의 등장을 알렸다. 하지만 4월까지 평균자책점2.25로 호투하던 신정락은 5월부터 제구가 흔들리면서 1패2홀드6.31의 실망스런 성적으로 루키시즌을 마쳤다.

신정락은 2년 차 시즌에도 1.02의 뛰어난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만 11경기에서 17.2이닝을 던지는데 그쳤고 2012년에는 1군에서 단 1경기 밖에 등판하지 못했다. 하지만 신정락은 LG가 11년 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한 2013년 자신의 첫 번째 전성기(?)를 보냈다. 선발 21경기를 포함해 26경기에서 122.2이닝을 던진 신정락은 9승5패4.26의 준수한 성적으로 류제국, 레다메스 리즈, 우규민에 이어 LG의 4선발로 활약했다.

하지만 신정락은 2014년 단 3경기 만에 1군에서 자취를 감춘 후 전반기를 통째로 날렸고 7월 말에 복귀한 후에도 2013년의 구위를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1년 전 10승 문턱까지 갔던 신정락은 1년 만에 1승3패6.66으로 부진했고 시즌이 끝난 후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했다. 단 그 해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7이닝10탈삼진1실점 호투로 승리투수가 되면서 전역 후 활약을 기대케 했다.

신정락의 '경험'을 원하는 팀이 나올까

군복무를 마친 후 2017 시즌 팀에 복귀한 신정락은 2017년 불펜투수로 활약하며 3승5패10세이브12홀드5.34로 팀 내 세이브1위, 홀드2위를 기록하며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2018년 마무리 자리를 정찬헌에게 내준 신정락은 중간계투로 49경기에 등판해 3승7패5홀드 5.86으로 인상적인 활약을 하지 못했다. 결국 신정락은 2019년 7월 송은범과의 1:1 트레이드를 통해 고향팀 한화로 이적했다.

2019년 LG에서 23경기에 등판해 1승1패4홀드9.47로 부진했던 신정락은 한화 이적 후 불펜으로만 21경기에 등판해 4승1홀드3.16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신정락은 그렇게 고향팀에서 선수생활의 터닝포인트를 만난 듯 했지만 2020년 16경기에서 1패9.00으로 부진하면서 2019년 후반기의 좋은 활약이 빛을 잃었다. 신정락은 작년에도 20경기에서 승리 없이 2패2홀드8.55에 그치며 명예회복에 실패했다.

신정락은 반등이 절실했던 올 시즌 44경기에 등판해 2승1패1세이브4홀드4.02의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9승을 올렸던 2013년(4.26)과 10세이브12홀드를 기록했던 2017년(5.34)의 평균자책점보다 뛰어난 투구내용이었다. 하지만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과 호세 로사도 투수코치는 시즌 내내 신정락을 좀처럼 필승조로 활용하지 않았고 결국 신정락은 시즌이 끝난 후 방출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1987년생 신정락은 어느덧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노장 투수지만 아직 선수생활을 접어야 할 정도로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삼성 라이온즈의 우규민이나 NC 다이노스의 원종현, LG의 김진성, 진해수 등 신정락과 비슷하거나 나이가 더 많은 여러 투수들이 여전히 각 팀의 필승조로 활약하고 있다. 신정락 역시 올 시즌에 보여준 구위만 유지한다면 사이드암 투수가 부족한 팀에서 충분히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불펜 자원이다.

작년부터 각 구단들은 유망주를 키운다는 명분으로 방출시장에서 베테랑 선수의 영입을 꺼려 왔다. 하지만 SSG에 테스트를 받고 입단한 노경은은 올 시즌 12승5패1세이브7홀드3.05의 성적을 기록하며 베테랑 투수의 가치를 한껏 끌어 올렸다. 이제는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도, 한 때 '마구'로 불리던 꿈틀거리던 변화구도 많이 무뎌졌지만 여전히 풍부한 경험을 자랑하는 신정락은 내년 시즌에도 '현역'으로 마운드에 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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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한화 이글스 신정락 방출 사이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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