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결국 9연패 2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프로야구 KBO리그 한화이글스와 LG트윈스의 경기. 경기종료 후 인사를 마친 한화 선수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 한화, 결국 9연패 2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프로야구 KBO리그 한화이글스와 LG트윈스의 경기. 경기종료 후 인사를 마친 한화 선수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흔히 역사는 승자만을 기억한다고 한다. 하지만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듯이, 일등이 있으면 꼴찌도 존재하는 게 세상의 이치다.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도 넘는 세월 동안 언제나 그 자리를 꾸준히 지키고 있는 꼴찌라면, 일등이나 승자 못지 않게 역사의 기억에 남을 자격이 있다.
 
'꼴찌의 전설'을 다시 쓰고 있는 독수리 군단이 또 하나의 진기록을 세웠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6월 2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2시즌 KBO 리그 원정 경기에서 5-6으로 패하며 10연패 기록을 세웠다.
 
10연패는 올시즌 프로야구 최다 연패이자, 10개 구단을 통틀어 최초의 두 자릿수 연패 기록이다. 또한 한화는 2020시즌(18연패)과 2021시즌(10연패)에 이어 KBO리그 사상 최초의 단일 구단 3시즌 연속 두 자릿수 연패라는 희대의 진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여기에는 단일시즌 기록에서는 빠져 있지만, 2021시즌 후반기부터 2022시즌 개막 초반까지 두 시즌에 걸쳐 달성한 12연패도 있다.
 
40년 역사의 KBO리그에서 2시즌 이상 연속으로 두 자릿수 연패에 빠졌던 팀은 한화를 포함하여 모두 3팀뿐이었다. 한화 이전에는 1992~1993년의 태평양 돌핀스, 2002~2003년의 롯데 자이언츠가 있었지만 모두 두 시즌 연속에서 그쳤다. 한화는 암흑기의 시작이었던 2009년과 2010년에 이미 타이 기록을 세운 데 이어, 12년 만에 불명예 신기록을 경신하며 유일하게 2연속 시즌 두 자릿수 연패를 두 번이나 달성한 구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연패에 관한 한화의 기록 행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화는 빙그레 시절이던 1993년 10연패를 시작으로 2009년(10연패, 12연패), 2010년(11연패), 2012~2013년(14연패), 2020년(18연패), 2021년(10연패), 2021~2022년(12연패), 2022년(10연패, 현재진행중)까지 통산 9차례나 10연패 이상을 기록하며 'KBO리그 역대 최다 두 자릿수 연패' 기록까지 보유하고 있다. 특히 2020년의 18연패는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가 세운 KBO리그 역대 최다 연패와 타이기록이었다.
 
짧은 전성기를 누렸던 1990년대부터 2000년대-2010년대-2020년대까지 무려 4개의 시대(Decade)에 걸쳐 빠짐없이 두 자릿수 연패를 달성한 팀은 KBO리그에서는 오직 한화 뿐이다. 그만큼 한화가 오랜 세월에 걸쳐 얼마나 '꾸준하게' 부진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한화의 기록들

연패 못지않은 굴욕은 꼴찌 기록이다. 한화는 68경기를 치른 현재 22승 1무 45패(승률 . 328)로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KBO리그에서 현재 유일한 3할대 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팀이며, 불과 한 계단 위의 9위 NC 다이노스(27승 2무 30패, 승률 .409)과도 어느덧 5.5게임 차이로 벌어졌다. 객관적인 전력이나 팀분위기상 반등이 쉽지 않은 것을 감안할 때 올해도 꼴찌가 유력하다.
 
한화가 만일 올시즌에도 꼴찌를 기록한다면 2019시즌과 2020시즌에 이어 3년 연속이 된다. 한화는 지난 2012-2014시즌에도 구단 역사상 최초로 3년 연속 꼴찌를 기록한 바 있다. KBO리그 연속 꼴찌 기록은 롯데 자이언츠가 2001-2004시즌에 걸쳐 기록한 4년 연속이다. KT 위즈도 창단 첫해인 2015시즌부터 2017시즌까지 3년 연속 꼴찌를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3연속 꼴찌를 2회 이상 기록한 팀은 KBO리그 역사에서 아직까지 전무하다.
 
KBO리그 최다 꼴찌 기록은 롯데가 보유한 9회다. 프로 원년부터 참여해 1983년에 처음 꼴찌를 했던 롯데는 1990년대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암흑기를 보내며 자주 꼴찌를 경험했다. 가장 최근에는 2019시즌에 꼴찌를 기록한 바 있다.
 
현재 롯데의 기록에 가장 근접한 팀이 바로 한화다. 지난 시즌까지 총 8회나 꼴찌를 기록하며 역대 2위였던 한화는 올시즌 드디어 롯데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졌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롯데가 약 36년에 걸쳐 이룬 기록을 한화가 따라잡는 데 걸린 시간은, 그 1/3 정도밖에 안되는 불과 14년이라는 시간이면 충분했다는 것이다.
 
1986년 빙그레로 출범한 한화는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 번도 꼴찌를 기록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출범 24년 만인 2009시즌 창단 첫 꼴찌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2010년대부터 본격적인 암흑기에 접어들며 무서운 속도로 꼴찌 기록을 추가해왔다.
 
심지어 단일리그제가 아닌 전후기리그제로 치러진 1986년 창단 첫 해 승률 최하위(전기 7위, 후기 6위, 당시는 7개구단 체제)에 그친 것도 사실상의 꼴찌로 친다면, KBO리그 역사상 최초의 '두 자릿수 꼴찌'라는 초유의 기록이 눈앞에 있다. 반면 이 기간 한화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것은 2018년 단 1회 뿐이다.
 
한화보다 역사가 오래된 삼성은 원년부터 40년간 암흑기에도 단 한 번도 최하위로 떨어지지 않았다. 두 자릿수 연패도 2004년 10연패를 한 차례 당한 것이 유일했다.
 
프로야구 역사에서 시대별로 약팀과 암흑기는 항상 존재했다. 1980년대 삼미-청보-태평양, 1990년대의 쌍방울, 2000년대에는 롯데-LG-KIA 등이 돌아가면서 꼴찌 계보에 이름을 올리며 수난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어떤 팀도 한화만큼 오랜 세월에 걸쳐 꾸준하게 만년 꼴찌 자리를 '장기 독점'하지는 못했다.
 
KBO리그 초창기의 꼴찌팀들은 프로구단다운 시스템이나 선수층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고, 모기업의 지원이나 재정 상태가 안정적이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다. 롯데나 LG는 최대 암흑기를 보내며 놀림받던 시절에도 최소한 투자는 꾸준히 이어졌고, 부진하다고 해서 매년 꼴찌만 기록했던 것도 아니었다. 또한 아무리 약팀들도 짧으면 4~5년에서 길어도 10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노하우가 쌓이고 리빌딩과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반등하곤 했다.
 
그에 비하여 한화의 행보는 21세기 KBO리그의 최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대기업 구단인 한화는 삼미나 쌍방울처럼 구단 운영이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프로야구 총연봉 1위를 기록했던 시절도 있었다.
 
암흑기를 보내는 김인식-김응용-김성근같은 KBO리그 역대 최고의 명장에서부터, 스타 출신인 한대화, 구단 레전드인 한용덕, 심지어 외국인 감독인 카를로스 수베로까지 데려오는 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봤다. 돈을 써서 외부 FA를 데려오거나, 유망주를 내부 육성하는 길도 선택해봤다. 물론 성과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결과적으로 지금까지도 꼴찌권에서 크게 반등할 조짐은 요원한 실정이다.
 
'장기적인 운영'에서의 무능

결국 가장 큰 원인은 한화 구단이 장기적인 비전이나 운영에서 무능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한화는 2000년대 중반까지 구단의 소극적인 투자와 인프라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세대교체에 실패하며 암흑기를 초래했다. 2010년대는 뒤늦게 문제점을 인식하고 변화에 나섰지만 비효율적인 투자와 잘못된 감독 선임, 일관성없는 프런트의 행보로 오히려 돈은 돈대로 쓰고 혼란만 초래했다.
 
202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전면적인 리빌딩에 나섰지만 갈길이 멀다. 지난 2년간 내부 FA 최재훈을 잡은 것 정도를 제외하고 외부 영입을 통한 전력보강은 전무했다. 일찌감치 올해도 최약체 전력으로 예상된 한화는, 설상가상 올시즌 초반부터 믿었던 외국인 선수들의 줄부상과 코어 유망주들의 성장세가 정체되며 빠르게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주장이었던 하주석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전력에서 제외되고, 수베로 감독도 경기중 구설수에 오르는 등,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으며 왜 한화가 당연한 꼴찌일 수밖에 없는지만 증명하고 있다.
 
흔히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독수리군단은 정작 날개를 언제 펴본 적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삼미의 최다 연패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때도, 감독 교체의 악순환이 이어졌을 때도, 이보다 더 최악의 순간은 없을 것 같았지만, 한화는 항상 팬들의 기대치를 뛰어넘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창조해내는 기적을 보여주고 있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현실은 <스토브리그>같은 짜릿한 드라마와는 거리가 멀다. 한화에게 당장 기적적인 반등을 기대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발자국이라도 미래를 위하여 더 옳은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희망조차 제시하지 못한다는 게, 한화의 보살팬들을 더욱 맥빠지게 만드는 게 아닐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한화이글스 10연패 KBO리그 꼴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