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선발투수 윤대경 5월 3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SSG 랜더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1회말 한화 선발투수 윤대경이 역투하고 있다.

▲ 한화 선발투수 윤대경 5월 3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SSG 랜더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1회말 한화 선발투수 윤대경이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24-3, 핸드볼이나 배구 스코어가 아니다. 야구, 그것도 아마추어나 동네야구도 아닌 국내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였다는 프로 리그에서 기막힌 점수가 등장했다. 뮤지컬 <난타>를 능가하는 더 화끈한 난타쇼가 그라운드를 수놓았다.

5월 26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경기에서 홈팀 한화가 두산에 무려 21점차로 참패했다.
 
승부는 첫 이닝인 1회초에 벌써 갈렸다. 두산은 1회초부터 타자일순하여 무려 10안타로 11점을 몰아내며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다. 한화 선발 윤대경은 시작과 함께 안권수-페르난데스-강승호-양석환-허경민에게 5타자 연속 안타-3연속 적시타를 허용했다. 박세혁의 희생번트로 간신히 첫 아웃카운트를 잡았으나 다시 김재호, 정수빈에게 연속 안타를, 김재환에게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하며 위기는 계속됐다.
 
타선이 일순하여 두 번째로 다시 상대하게 된 안권수를 뜬공으로 잡아냈지만, 페르난데스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자 한화 벤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윤대경을 마운드에서 내렸다. 하지만 교체투입된 주현상도 강승호와 양석환, 허경민에게 연속 안타를 맞아 윤대경이 남긴 승계 주자들이 모두 홈을 밟으며 점수가 11-0까지 벌어졌다.

한화에게 지옥같았던 1회는 투수의 힘이 아닌, 허경민이 무리하게 3루 주루를 시도하다가 아웃되며 간신히 이닝이 종료될 수 있었다. 1회초가 종료되는 데만 걸린 시간은 무려 30분에 이르렀다.

기상천외한 신기록 속출

그러나 한화의 악몽은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한화가 1회말 하주석의 적시타로 한 점을 만회했으나 두산이 2회초 2사 1·2루에서 안권수와 페르난데스의 연속 안타로 3점을 더 달아났다. 3회초에는 양석환의 홈런, 4회에는 김재환과 페르난데스(투런) 홈런까지 더해지며 매 이닝마다 점수차를 더 벌렸다.

자비없는 두산은 이미 승기가 기운 후반에도 6회와 9회에 각각 3점씩을 더하며 7회와 9회에 1점씩을 만회하는 데 그친 한화를 맹폭했다.
 
각종 기상천외한 신기록이 속출한 경기였다. 두산은 1회초 기록한 10개의 안타는 역대 KBO리그에서 1회초 최다 안타 타이 기록이다. 역시 두산(2006년 9월 23일)과 삼성 라이온즈(2021년 10월 3일)가 1회초 10개의 안타를 때린 바 있다. 1회초 11점 기록은 1992년 4월 23일 LG가 잠실 OB(현 두산)전에서 1회말에 13점을 뽑은 데 이어 역대 2위 기록이다.
 
또한 두산이 기록한 27안타는 구단 역사상 한 경기 역대 최다 안타 타이 기록이었다. 3안타 이상을 기록한 타자만 5명으로 안권수가 4안타, 허경민이 3안타 4타점, 양석환이 홈런 포함 3안타 3타점 3득점, 정수빈도 3안타 3득점을 기록했으며, 특히 외국인 타자 페르난데스는 6안타(1홈런) 6타점 7출루로 개인 한 경기 최다 안타-출루 기록을 달성했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양팀의 분위기는 지극히 대조적이었다. 두산은 최근 3연패 포함 10경기에 단 1승(1무 8패)에 그치며 극심한 하락세를 겪고 있었다. 바로 전날(25일)에는 한화에 1-14로 참패를 당하며 이미 최근 4연속 루징시리즈가 확정된 상태였다. 반면 한화는 최근 꼴찌에서 탈출하며 3연승의 상승세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화는 홈팬들앞에서 참사에 가까운 경기력을 선보이며 최근 좋았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모처럼 기분좋게 야구를 즐기러 야구장을 찾았던 홈팬들은 첫회부터 동네야구 수준으로 난타당하며 무너지는 팀의 한심한 모습에 하나둘씩 표정이 굳었고, 일찌감치 꿈도 희망도 없는 경기를 9회까지 곤욕스럽게 지켜봐야 했다.
 
야수의 '투수 투입'이라는 고육책까지

한화 투수진은 최근들어 유독 빈공에 시달리던 두산 타선에게 아낌없이 점수를 퍼주며 타격감을 살려주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선발 윤대경은 0.2이닝 7피안타 2사사구 9실점이라는 최악의 피칭을 남기고 조기 강판됐다. 경기전 5.52였던 평균자책은 7.46으로 치솟았다. 바뀐 투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한화는 8회까지 21점을 내주는 동안 5명의 투수를 올렸는데 신정락(2이닝 무실점)을 제외하면 주현상(1.1이닝 6안타 5실점)-문동주(2이닝 5안타 4실점)-박준영(2이닝 3안타 3실점)까지 모두 3실점 이상을 허용하며 난타당했다.
 
급기야 마지막 이닝인 9회에 한화 수베로 감독은 전문 투수 대신 야수 이도윤을 마운드에 올려야 했다. 이미 패색이 굳어진 상황에서 NC와의 주말 3연전을 앞두고, 더 이상 투수력 소모라도 막기 위하여 야수의 투수 투입이라는 고육책까지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한화 입장에서는 부득이한 상황이었지만 이도윤의 투입은 곧 패배를 인정하는 백기투항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도윤은 1이닝간 7타자를 상대로 4피안타 3실점을 허용하며 이날 투입한 한화 투수들 중에서는 그나마 '평균적'인 성적으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한화는 이날 패배로 여전히 9위(16승 31패)를 유지했다. 주말 3연전에서 '꼴찌대첩'을 펼치게 될 최하위 NC(15승 32패)와는 불과 1게임차이다.
 
리그 최다실점팀인 한화는 47경기 408이닝 동안 무려 265실점을 내줬는데 리그에서 유이하게 200실점을 넘긴 NC(229실점, 47경기 414.1이닝)보다도 적은 이닝을 소화하고도 무려 36점이나 더 내줬다. 팀 평균자책이 5점대(5.32)를 넘긴 팀은 한화가 유일하다. 한화는 올시즌 한 경기 두 자릿수 실점을 허용한 경기가 6회로 리그 최다인데, 그중 5회가 최근 5월 들어서만 달성한 기록이다. 상대팀들에게는 그야말로 타격감 회복이 절실할 때 꼭 찾고 싶은 '점수 맛집'이 따로없다.
 
물론 한화의 전력이 현재 KBO리그 최약체라는 것은 새삼스러운 사실도 아니다. 여기에 시즌 초반부터 외국인 투수 원투펀치와 마무리 정우람까지 부상으로 결장하며 마운드 전력이 더욱 약해졌다. 어느 정도 주전급 선수들을 발굴해낸 야수진에 비하여 투수진 육성은 여전히 갈길이 멀다. 몇 년째 리빌딩을 내세우면서 정작 전력보강에는 소극적이었던 구단의 운영 역시 아쉬움을 자아낸다.
 
경기는 질 수도 있다. 그래도 프로라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수준이 있다. 동네야구도 아니고, 한 경기에 핸드볼급 스코어를 밥먹듯이 내주는 것은 프로로서의 자존심 문제다. 무기력한 참패는 팀의 사기를 한순간에 떨어뜨린다. 그저 잠깐의 탈꼴찌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한화가 추구하는 진정한 '위닝 DNA'를 갖추기 위해서는 이런 식의 경기가 자꾸 나와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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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이글스 두산베어스 KBO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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