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은 한국야구가 프로야구 선수들로 최정예 멤버를 구성하여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첫 해였다. 박찬호-김병현 등 해외파 선수들까지 가세한 대표팀은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압도적인 전력차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실상 한국판 '야구 드림팀' 전설의 시작이었다.

이후 한국야구는 지난 20년간 국제대회에서 여러 차례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냈다. 2006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 WBC 준우승, 2015 프리미어12 우승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아시안게임에서는 최근 5번의 대회 중 4번이나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만큼 절대강자의 위상을 자랑했다. 야구대표팀의 선전은 곧 KBO리그의 흥행으로도 이어졌다.

하지만 드림팀 1기로부터 어느덧 20년이 흐른 현재, 2018년의 야구대표팀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그때와 많이 달라졌다. 최근 야구대표팀과 관련한 기사의 댓글이나 SNS를 살펴보면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기원한다'는 문장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아시안게임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인 한국에게 은메달을 기원한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로 저주에 가깝다. 이밖에도 대체로 야구대표팀에 관련된 보도가 나올 때마다 대중의 반응은 주로 부정적인 의견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개막을 앞두고 야구대표팀만 다른 종목과는 달리 유독 팬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을 향한 싸늘한 시선

 오지환/박해민

오지환/박해민 ⓒ 연합뉴스


논란의 시작은 바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주어지는 '병역혜택'에서 비롯됐다. '몸과 시간'이 곧 재산인 많은 프로스포츠 선수들에게 병역 문제는 항상 민감한 부분이다. 국제대회 입상에 따라 주어지는 병역혜택은 선수들이 합법적으로 군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자 국제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이 다른 팀에 비하여 더욱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부여의 근원이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WBC 등을 통하여 많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혜택을 받았고, 박찬호-추신수-이대호의 경우처럼 해외에서의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이어가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방콕 아시안게임부터 시작된 야구 드림팀의 탄생도 결국 병역혜택이라는 확실한 당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나라를 대표한다는 자부심과 명예가 우선이 되어야할 국가대표팀에게, 우승의 가치나 과정보다 부가적인 포상인 병역혜택 여부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점점 잦아지면서 여론이 싸늘해졌다. 물론 병역혜택이란 제도 자체를 만든 국가 또한 비판의 목소리를 피하긴 어렵다.

특히 다른 종목에 비하여 대회 수준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우승 가능성이 높은 아시안게임을 두고 대표팀을 둘러싼 '병역미필자 선수들에게 안배'와 야구계의 '집단 이기주의'가 도마에 올랐다. 아시안게임이 사실상 프로야구 선수들의 '합법적 병역기피'를 위한 창구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야구대표팀을 향한 싸늘한 여론은 어느날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조금씩 누적되어온 결과다. 프로야구는 '국민스포츠'로 불리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정작 최근 야구계에 불거진 각종 사건사고들로 부정적인 시선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하여 병역혜택을 얻은 추신수는 이후 FA 자격 취득이나 소속팀의 반대를 핑계로 이런 저런 대표팀 소집에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나지완(KIA 타이거즈)은 부상을 숨기고 대표팀에 승선한 사실을 뒤늦게 고백하여 엄청난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나지완은 아시안게임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지만 동료들의 활약에 힘입어 금메달을 따내면서 본인도 함께 병역혜택을 얻었다.

한국 야구계의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선동열 감독,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 야구국가대표팀 선동열 전임감독이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KBO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참가할 24명의 선수를 발표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8.6.11

▲ 선동열 감독,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 야구국가대표팀 선동열 전임감독이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KBO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참가할 24명의 선수를 발표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8.6.11 ⓒ 연합뉴스


선동열 감독이 이끄는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의 뜨거운 감자는 오지환(LG 트윈스)과 박해민(삼성 라이온즈)이다. 두 선수는 이미 병역을 이행해야할 시기가 지났지만 상무나 경찰청에 입대를 하는 대신 아시안게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만일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두 선수는 올시즌 후 현역으로 입대해야하는 상황이다. 사실상 태극마크를 이용하여 병역기피를 하려든다는 비난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난 6월에 발표된 아시안게임 최종명단에서 병역미필자는 7명으로 지난 인천 대회(13명)의 절반 수준이고 역대 대표팀과 비교해도 미필자의 비중이 높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오지환과 박해민의 국가대표 자격 논란이 이슈가 되면서 선동열호는 다시 병역 미필자 안배에 대한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됐다. 특히 대표팀 발탁직후부터 '포지션 활용논란'에 휘말렸던 오지환은 소속팀에서도 최근 부진한 모습을 보여 비난 여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실 야구계에서 아시안게임은 그리 수준 높은 대회가 아니다. 사실상 경쟁자는 일본과 대만뿐인데 일본은 전통적으로 사회인 선수들을 출전시키고, 대만도 몇몇 해외파를 제외하면 항상 1.5군에 가까운 전력이었다. 아시안게임에 매년 프로 최정예멤버를 출전시키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 동메달에 그친 2006년 도하 대회의 참사처럼 일본과 대만의 전력을 마냥 무시할 수준은 아니라고 하지만, 방심하지만 않으면 전력상 최강이 한국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냉정하게 말하여 병역혜택이 아니었으면 더이상 한국야구도 굳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연연할 이유는 없다.

한국야구에 아시안게임은 이제 '잘해야 본전' 수준도 아닌,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 계륵같은 대회가 되어버렸다. 설사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또다시 금메달을 추가한다고 해도 일부 프로 선수들의 병역혜택이라는 의미 외에는 사실상 박수받을 수 없는 분위기가 된 지 오래다. 일각에서는 아시안게임에서 프로야구 선수들의 참여를 금지시키거나, 아예 시대에 뒤떨어진 국제대회 병역혜택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금메달만 따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팬들도 다시 좋아해주겠지하는 착각은 금물이다. 왜 수많은 대중들이 유독 야구에만 자국대표팀의 은메달을 간절히 기원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되어버렸는지, 야구계도 진지한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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