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팬서를 엄마가 더 좋아하는 거 같은데?"

고등학생인 둘째가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영화 <블랙팬서>. 고등학생인 둘째가 보고 와서는 재미있다며 초등학생 막내에게도 보여주라고 했다. 히어로 영화라니. 내 눈엔 유치하지만 막내에게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영화를 예매했다. 사실 마블의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은 없었다. <캡틴 아메리카>나 <스파이더맨 홈커밍>도 그렇고 언제나 미국이 세상의 중심에서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식의 서사가 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보고 나면 마음이 항상 불편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집에 온 나는 <블랙팬서> 영화 관련 동영상을 찾아서 계속 보고 있다. 그런 내가 의외였는지 둘째가 물은 것이다. 마블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왜 이 영화는 재미있을까?

나를 사로잡은 세 명의 여인

영화 속 세 명의 여자 때문에 이 영화에 매력을 느꼈다.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첫 등장부터 머리 스타일이 남달라 정체가 뭘까 궁금증을 자아낸 티찰라의 여동생 슈리(레티티아 라이트)다. 슈리는 와칸다 왕국의 공주였지만 공주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는 인물이다. 첫 등장서부터 왕에 오를 오빠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올려서 욕을 날린다. 물론 엄마 몰래 오빠만 보게 한 행동이었지만 이 한 장면으로 그녀가 보여줄 캐릭터에 대한 기대를 한껏 갖게 되었다.

기대했던 대로 슈리는 그냥 공주가 아니었다. 와칸다 왕국의 최고의 과학자로, 블랙팬서의 슈트와 무기를 개발하는 천재 과학자였다. 오빠 티찰라(채드윅 보스만)가 슈리의 연구실에 찾아왔을 때 슈리는 왕인 오빠에게 예우를 갖춰 대한다. 그러자 오빠인 티찰라가 평소처럼 대하라고 하면서 힙합식 손 인사를 한다. 그 모습에서 현실 남매의 장난스러운 모습이 느껴져서 보기 좋다.

부산에서 추격 신이 벌어지면서 오빠 티찰라가 와칸다 연구실에 있는 동생 슈리를 호출하자 슈리는 신나서 환호성을 지르며 차에 올라탄다. 온실 속의 와칸다 공주가 아니라, 접전지역의 출동에도 머뭇거림이 없는 모습은 슈리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슈트가 총알을 많이 맞으면 에너지가 충전된다고 알려주는 장면에선 과학자로서의 면모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영화 <블랙팬서> 스틸컷

영화 <블랙팬서> 스틸컷. 티찰라의 연인 나키아와 티찰라의 동생 슈리.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또 다른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는 나키아(루피타 뇽)다. 첫 장면에서 티찰라는 나키아가 속한 무리의 여성들을 구출하러 간다. 티찰라의 최고 무사인 오코예(디나이 구리라)는 티찰라에게 "긴장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사랑하는 나키아를 만나더라도 정신 차려서 구출 임무를 잘 완수하라는 말이었는데 역시나 티찰라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다. 그에 반해 나키아는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낸다. 보통 갖고 있는 성별 고정화된 타입에서 벗어난 두 남녀의 모습이 신선했다. 오코예에게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오코예는 와카다 왕국의 최고의 무사다. 오코예의 파워를 보여주는 가장 화려한 장면은 부산 전투 신에서 나온다. 그녀는 비브라늄 창을 던져 적의 차를 전복시킨다. 오코예는 누구보다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냉철한 인물이다.

감정이나 인연 때문에 자신의 임무를 저버리는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에릭 킬몽거(마이클 B. 조던)가 티찰라와의 싸움에서 이겨 왕위에 오른 뒤 나키아는 티찰라의 어머니와 슈리를 데리고 왕궁을 떠나자고 오코예에게 제안한다. 하지만 오코예는 자신의 임무를 버릴 수 없다고 미안해하며 에릭 킬몽거 곁을 지킨다. 인연보다 임무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주로 영화 속에선 여성보다는 남성의 역할이었다. 그런 면에서 오코예의 캐릭터는 더욱 신선했다.

 영화 <블랙팬서> 스틸 컷

영화 <블랙팬서> 스틸 컷. 와카다 왕국 최고의 무사 오코예.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또한,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 오코예는 사랑하는 연인 와카비(다니엘 칼루야)와 다른 편에 서게 된다. 에릭 킬몽거의 편을 드는 와카비는 오코예가 사랑하는 자신을 배신하지 못할 것이라 기대하지만 오코예는 사랑에 흔들리지 않았다. 기존의 영웅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여성 캐릭터가 세 명이나 들어 있어서 <블랙팬서>를 더욱 풍성하게 해 주었다.

마지막 장면, 티찰라가 선택한 와칸다 왕국의 미래 역시 나키아의 의견이 많이 반영이 되어 있었다. 자신들만의 와칸다 왕국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인류를 위해서 힘을 보태는 것에 동의하고 또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와칸다 왕국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벌써부터 <블랙팬서2>가 기다려진다. <블랙팬서2>가 그리는 와칸다 왕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와칸다 왕국이 세상을 위해서 어떤 공헌을 할지 궁금하다. 중년 아줌마가 어쩌다가 마블 영화 <블랙팬서>의 팬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블랙팬서 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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