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월화 드라마 <20세기 소년 소녀>, tvN 월화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2017년을 살아가는 2030대 여성들을 드라마의 '주체'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동일한 이야기다. 하지만 두 드라마의 성과는 전혀 다르다.

한예슬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은 <20세기 소년소녀>는 화제성이 무색하게도 2%대(20회 2.8%,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의 시청률로 고전하고 있다. 반면 남자 주인공, 표절 등 여러 잡음으로 시작부터 삐걱거렸던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켰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10회 4.2% 닐슨코리아 유료 플랫폼 가입 기준).

공중파와 케이블 채널의 시청률을 수치상으로 비교하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20세기 소년소녀>의 부진은 명확해 보인다. 동시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은 똑같은데 왜 두 드라마는 다른 온도 차를 보일까? 아마도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현실감' 때문일 듯 싶다.

 <20세기 소년소녀>

ⓒ MBC


내 얘기 같아 마음 아프고 마음이 가는 <이번 생은 처음이라>

<20세기 소년소녀>는 1983년 함께 학원 봉고차를 타고 다니면서 우정을 쌓았던, 이제는 서른 중반이 된 동갑내기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다. 이는 앞서 복고 열풍을 견인했던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감성을 고스란히 이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 시절 풋풋했던 첫사랑의 정서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2017년 현실의 사랑을 그릴 때도 여전히 로맨스 드라마의 클리셰를 답습하는 모습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20세기 소년소녀>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는 이유다.

알고 보니 '모태솔로'인 톱스타 사진진(한예슬 분), 늘 유니폼의 옷 매무새를 고심하는 '66반' 사이즈 승무원 한아름(류현경 분), 초짜 변호사 장영심(이상희 분)의 처지는 그럴 듯하다. 그러나 이들이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본 장면들 뿐이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 tvN


반면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등장인물들은 현실 그 자체다. 오갈 데가 없어 계약 결혼을 감행한 전직 드라마 작가 윤지호(정소민 분)와 대기업 대리로 생존하기 위해 '비혼'을 선택한 우수지(이솜 분), 꿈은 현모양처지만 현실은 옥탑방 동거 신세인 양호랑(김가은 분)은 매회 사랑, 우정, 결혼의 뼈아픈 현실과 맞닥뜨린다. 시청자들은 "너무 내 얘기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호소한다.

윤지호는 우여곡절 끝에 남세희(이민기 분)와 결혼에 골인했다. '집이 필요한 세입자'와 '세입자가 필요한 집주인'은 계약 관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결혼을 선택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결혼'이라는 제도에 진입하며 두 사람은 관계의 변화를 겪는다.

극중 남세희는 연복남(김민규 분)으로부터 윤지호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달려간다. 물론 이는 복남을 스토커로 오해하면서 벌어진 해프닝이었지만 이후 윤지호는 남세희를 집주인이 아닌 남편으로 좋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랑이 시작됐다고 덜컥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정석 코스를 밟지 않는 게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장점이다.

결혼, 제도를 넘어선 변화에 대한 미시적 고찰

 <이번 생은 처음이라>

ⓒ tvN


정작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지점은 결혼 제도권 내 편입된 윤지호가 겪는 심경의 변화다. 동창 모임은 이미 '감배 모임'으로 변질됐다. '감배 모임'은 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의 사생활에 "감 놔라 배 놔라"하는 '아줌마'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간 친구들과 소원했던 윤지호는 '감배 모임'에서 묘한 동질감과 함께 안온함을 느낀다. 반면 '비혼주의자' 수지는 '감배 모임'에 "재수 없다"고 말하고 결혼을 꿈꾸는 호랑은 상실감에 시달린다.

그런가 하면, 시어머니의 부름을 거절할 수 없어 달려간 시댁 제사에서 윤지호는 "딸내미 같다"는 칭찬에 일을 다 떠맡는다. 이에 스스로 '착한 며느리 병'이라고 진단했던 윤지호는 "수비 잘하는 분이 왜, 적당히 둘러대서 오지 말지"라는 남세희의 평가에 다시 혼란스러워 한다.

앞서 많은 드라마들이 결혼에 얽힌 여성 혹은 부부를 상투적으로 그린 것과 달리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제도에 편입된 지호를 '미시적'으로 들여다 본다. 지호는 "감놔라 배놔라해서 싫다"는 수지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그 소속감이 싫지 않았고, "적당히 거절할 수 있지 않았냐"는 세희의 비난에 '착한 며느리병'인가 고민하면서도 세희에 대한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 지호의 고민은 그래서 시청자들에게 생각할 지점을 남긴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 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착한 며느리병'을 통해 짚어보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의 정서적 결합으로서의 '결혼'까지, 그 미묘하고도 복잡한 결혼의 사회학을 섬세하게 살핀다.

또 심원석(김민석 분)과 호랑의 현실도 그렇다. 심원석은 결혼이 꿈인 호랑을 위해 2년 동안 자신이 해오던 일을 접고 취직을 감행했다. 그러나 옥탑방에서 결혼 골인까지는 여전히 멀고 아득해 보인다. 세희, 지호의 고민과 또 다른 지점의 고민을 하고 있는 원석, 호랑을 통해 드라마는 88만원 세대의 현실을 또 한 번 짚어낸다. 연애는 하지만 손해 보고 싶지는 않은 수지의 '계약 연애' 역시 또 다른 현실이기는 마찬가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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