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왼무릎 연골 수술을 받으며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출전이 좌절되긴 했지만 정근우(한화 이글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KBO리그의 대표 2루수다. 리그에서의 꾸준한 활약은 물론이고 국가대표로서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WBC 준우승, 2015년 프리미어12 우승 멤버로 활약하며 한국야구가 걸어온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다.

프로 12년 동안 기록한 통산 .303의 타율도 대단하지만 정근우의 기록 중에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바로 2006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11년 연속 20도루다. 이는 KBO리그에서 오로지 정근우 밖에 정복하지 못한 고지로 그만큼 오랜 기간 주전 선수로 꾸준히 활약했다는 뜻이다.정근우는 172cm(실제로는 더 작다는 게 중론이다)의 작은 체구에서 오는 약점을 빠른 스피드와 탁월한 순발력으로 극복하며 일류 선수가 됐다.

이렇게 체구가 작은 내야수들은 정근우나 김선빈(KIA 타이거즈)처럼 발이 빠를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기 쉽상인데 실제로는 모든 키 작은 내야수들이 빠른 발을 소유한 것은 아니다. 정근우의 포지션 직계 후배라 할 수 있는 SK 와이번스의 2루수 김성현은 체구가 작고 발이 느린 내야수도 얼마든지 프로에서 통할 수 있는 것을 증명한 좋은 사례다.

9년 만에 차지한 주전 자리, 돌아온 건 실책왕 오명

 유격수로 나선 2년 동안 김성현은 수비에서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유격수로 나선 2년 동안 김성현은 수비에서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 SK 와이번스


김성현은 광주일고 시절 황금사자기 우승과 봉황대기 준우승 멤버로 활약하며 화려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물론 김성현 본인도 주전 유격수로서 한 몫을 했지만 당시 광주일고에는 나승현(은퇴)과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같은 초고교급 선수들이 즐비했기 때문에 동료들의 덕을 보기도 했다. 김성현은 작은 체구의 약점을 딛고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3라운드(전체20순위)로 SK에 지명됐다.

김성현은 입단 초기 1군에서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당시 SK 내야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2루와 3루에는 팀에서 전략적으로 키우려 했던 정근우와 최정이 있었고 유격수 자리는 2007년 트레이드를 통해 들어온 나주환의 차지가 됐다. 결국 김성현은 입단 후 3년 동안 1군에서 고작 14경기 밖에 뛰어보지 못하고 상무에 입단해 군복무를 마쳤다.

2011년 팀에 합류한 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 유격수' 박진만(은퇴)이 합류하고 만만치 않은 멀티요원 최윤석(한화)까지 내야 경쟁구도에 뛰어들면서 김성현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김성현은 2012년 박진만이 부상과 노쇠화로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점차 1군에서 자리를 잡아갔다. 특히 2012년 6월 27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오늘날 95억 투수가 된 차우찬(LG트윈스)으로부터 데뷔 첫 홈런을 터트리기도 했다.

2013년까지 백업내야수로 활약하던 김성현은 2014년 정근우의 이적과 나주환의 2루 전환으로 SK의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했다. 김성현은 122경기에 출전해 오지환(LG,20개)에 이어 실책 2위(18개)를 기록했지만 타격에서는 타율 .284 113안타5홈런43타점으로 일취월장한 기량을 뽐냈다. 전체적으로 오랜 무명 시절을 이겨낸 선수의 풀타임 첫 시즌 성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김성현은 2015년에도 SK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며 타율 .297 118안타8홈런48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김성현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인 쪽으로 쏠리고 말았다. 리그에서 가장 많은 23개의 실책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게다가 10월7일 넥센과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는 윤석민의 내야플라이를 떨어트리는 끝내기 실책을 저지르며 SK의 가을야구를 허무하게 끝내는 역적(?)이 되고 말았다.

2루수 변신 첫 해 3할 150안타, 수비도 탄탄

 보기엔 전형적인 똑딱이 유형 같지만 김성현은 의외로 한 방 능력을 갖춘 타자다.

보기엔 전형적인 똑딱이 유형 같지만 김성현은 의외로 한 방 능력을 갖춘 타자다. ⓒ SK 와이번스


2015 시즌을 끝으로 SK는 더 이상 '유격수 김성현'을 기다려 주지 못했다. SK는 2016 시즌 새 외국인 선수로 빅리그 81경기 출전 경험이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유격수 요원 헥터 고메즈를 영입했다. 김성현은 외국인 선수에게 유격수 자리를 내주고 2루수로 변신했다. 2016 시즌 고메즈가 무려 25개의 실책을 저지르면서 SK내야의 재편성은 성공적이라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김성현의 2루수 변신은 대성공이었다.

상대적으로 수비부담이 덜한 2루로 자리를 옮긴 김성현은 2루수로 886이닝을 소화하며 실책을 9개로 줄였고 .984라는 매우 준수한 수비율을 기록했다. 물론 유격수로는 199.2이닝 동안 7개의 실책을 저지르며 여전히 불안한 부분을 노출했지만 적어도 2루 수비에서는 크게 흠잡을 곳이 없었다. 요약하자면 리그에서 가장 수비가 불안하던 유격수가 리그 정상급의 수비를 자랑하는 2루수로 변신한 셈이다.

타격에서의 성장은 더욱 놀라웠다. 김성현은 작년 시즌 타율 .319 153안타 8홈런65타점을 기록하며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3할 타율을 돌파했다. 9번 타자로 시즌을 시작한 김성현은 6번으로 올라왔다가 시즌 후반기에는 중심타선에도 종종 이름을 올렸다. 실제 타격 성적은 하위타선도 중심타선도 아닌 2번타자로 나왔을 때 가장 좋았다(36타수 15안타 타율 .417 2홈런8타점).

SK는 올 시즌 외국인 타자로 내야 유틸리티 요원 대니 워스를 영입했다. 빅리그 6년 동안 151경기에 출전한 선수로 빅리그에서 유격수로 323.1이닝을 소화하면서 단 하나의 실책도 저지르지 않은 뛰어난 수비수로 알려져 있다. 워스가 타격에서만 순조롭게 적응해 주면 김성현이 유격수 수비를 신경 쓸 일 없이 붙박이 2루로 활약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고정 포지션이 선수에게 미치는 효과는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172cm 72kg의 날렵해 보이는 체격을 가진 김성현은 프로 11년 동안 통산 도루가 19개에 불과한 '반전의 사나이'다. 그 때문에 팬들에게 나무늘보라는 장난 섞인 놀림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김성현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다른 곳에서 만회할 수 있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선수다. 시즌 타율 3할에 150개의 안타를 칠 수 있는 내야수라면 다리가 좀 느리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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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SK 와이번스 김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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