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방영한 KBS <살림하는 남자들> 한 장면

지난 24일 방영한 KBS <살림하는 남자들> 한 장면 ⓒ KBS


매주 화요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영하는 KBS <살림하는 남자들>. 기획의도는 좋다. 맞벌이 가구가 늘어나고 가정 내 성평등 운동이 서서히 제기되는 시점에서 "살림하는 남자들이 세상을 바꾼다" "살림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당당히 외치는 <살림하는 남자들>은 그 역시 남초예능이면서도, 남초예능 같지 않은 기획력이 눈에 띈다.

하지만 <살림하는 남자들>은 인기 예능과 거리가 멀다. 작년 11월 8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평균 2~3% 시청률에 머문다. 인터넷 상에서도 화제가 되지 못하는 인기 없는 예능이다. 때문인지 <살림하는 남자들>은 2월 7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시즌2를 위한 재정비에 들어간다고 한다.

프로그램 재정비에 들어가면, 포맷과 함께 출연자중 일부가 교체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제기된다. 최근들어 유키스의 일라이가 고정멤버로 합류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보인다. 원래 김승우-김정태-김일중-문세윤-봉태규와 여성MC(손태영), 그리고 일일게스트 체제로 진행되는 <살림하는 남자들>의 출연진 조합은 최상의 라인업은 아니었지만,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방송 초기만해도 "살림은 전적으로 여자의 몫"이라는 자세를 취했던 김일중이 보는 이의 속을 종종 뒤집어 놓긴 했지만 그역시 <살림하는 남자들>을 촬영하며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고, 이미 살림 고수를 넘어선 김정태, 봉태규, 문세윤의 가사 노하우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런데 남자 연예인들의 살림을 보여주는 콘셉트로 진행한 <살림하는 남자들>은 몇 회가 지나니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었다. 물론 살림은 해도해도 끝이 없고, 그 종류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카메라로 보여줄 거리는 많았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진 것은 출연진들에게 살림 노하우를 배우고자 함이 아니라 연예인이 집에서 살림하는 모습, 그게 전부다.

살림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은 많다. 인터넷만 조금만 들춰봐도 살림 노하우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인터넷만 연결되어있으면, 전문적인 살림 노하우를 빠른 시간 내에 터득할 수 있는데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연예인에게 살림을 배운다는 것은 일종의 시간낭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살림하는 남자들>이 보여줘야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제작진의 고민은 깊어진다.

열심히 해도 시청률이 오르지 않으니, <살림하는 남자들> 제작진이 고안한 묘책은 출연진들 간의 커플 촬영과 잘생긴 유부남 아이돌(일라이)의 고정 출연진 합류다. 최근들어 <살림하는 남자들>에서는 살림 고수 김정태와 살림 하수 김일중 혹은 요리 솜씨가 서툰 김승우와 살림에 능한 봉태규나 문세윤이 함께하는 촬영이 부쩍 늘었다.

 KBS <살림하는 남자들> 한 장면

KBS <살림하는 남자들> 한 장면 ⓒ KBS


가사 노동이 익숙하지 않은 살림 초보가 살림을 잘하는 사람에게 배우는 콘셉트 자체는 좋다. 문제는 이런 에피소드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3주 전, 김일중이 살림을 배우기 위해 김정태가 살고있는 부산에 내려간 이후, 그 에피소드가 2주 분량으로 끝나고 새로운 에피소드가 시작된 지난 17일에도 김정태는 김일중 집의 소파 리폼을 도와준다는 명분 하에 또 같이 나왔다. 지난 24일에는 아예 출연진 전원이 김정태의 부산 집으로 내려가 함께 명절 음식을 준비한다. 설 연휴가 다가오는 만큼, 모든 출연진들이 오순도순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장면 자체는 그럴 싸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명절음식 준비 에피소드가 끝나면? 앞으로 <살림하는 남자들>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살림하는 남자들>의 부족한 콘텐츠 고민은 일라이와 관련된 에피소드에서 그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해외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한국과 외국을 바쁘게 오가는 일라이는 김정태, 문세윤, 봉태규처럼 살림을 아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열심히 하려고 하고 노하우만 귀띔해주면 금세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낸다. 잘생기고 착실한 어린 새 신랑은 그 존재만으로도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일라이만으로 부족했는지, 일라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나오면 이례적으로 그의 아내, 아이까지 우르르 등장한다.

 KBS <살림하는 남자들>에 출연중인 일라이와 그의 부인

KBS <살림하는 남자들>에 출연중인 일라이와 그의 부인 ⓒ KBS


육아도 살림의 일부이기 때문에 일라이의 아이가 나오는 것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지금까지 <살림하는 남자들>에서는 김승우, 김정태, 김일중, 문세윤, 봉태규 혼자 살림하는 모습만 나왔지 그들의 가족이 나온 적은 없었다. 김승우 아내가 톱스타 김남주이고, 봉태규 아내 또한 유명한 사진작가 하시시박이지만 <살림하는 남자들>에서는 그녀들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 <살림하는 남자들> 고정 출연진 모두 자녀가 있고, 김정태의 아들 같은 경우에는 KBS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도 출연한 이력이 있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김정태 아들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라이의 가족들이 카메라 전면에 등장하면서, 가족들이 안 나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규칙인것 같았던 암묵적인 룰은 와장창 깨지게 된다. 그래, 룰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치자. 그런데 일라이와 그의 부인이 등장하면서 프로그램이 일관적으로 유지해왔던 톤이나 기조까지 변하는 것은 상당히 이질적이다.

어쩌면 <살림하는 남자들>이 시청자들에게 별다른 반항을 이끌어내지 못했던 것은 살림에 무관심한 김일중을 제외하곤 모난 캐릭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연예인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면서도 사생활을 늘어놓는 가십을 배제한 것은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매력을 뽐내지 못해 무색무취함에 그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라이 가족들의 등장은 인터넷 연예 뉴스에서 잠깐의 화제를 일으킬 수는 있을지언정, 시청률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남자 연예인의 육아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었던 <슈퍼맨이 돌아왔다>도 부인들의 잦은 출연으로 입방아에 오르긴 했지만,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수많은 논란을 한 방에 잠재우는 귀여운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살림하는 남자 연예인들만 등장하는 <살림하는 남자들>에서 부인의 등장은 프로그램의 기획의도까지 퇴색시켜 버릴 뿐이다.

이렇게 낮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상승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봤지만 실패한 <살림하는 남자들>은 '시즌2'라는 기약없는 약속 아래 쓸쓸히 사라질 위기다. 아무리 시대정서를 관통하는 좋은 기획의도를 갖추고 있다고 한들, 그를 뒷받침하는 콘텐츠가 풍부하지 못하면 좋은 프로그램으로 남을 수 없다는 분명한 사례를 남긴 <살림하는 남자들>. 혹시나 시즌2로 재개하게 되면, 훌륭한 기획의도에 걸맞은 인기있는 프로그램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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